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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un 11. 2023

자기 앞의 생 - 로맹 가리

정의로운 사람들의 얄팍한 선의

영화 '자기 앞의 생' 중에서


    

세상에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과 제도가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오히려 약자를 괴롭히고 구속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법과 제도는 정말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것일까. 아니면 사회문제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까. 보기 싫은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불행한 사람들의 우울한 삶을 행복한 사람들에게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그들의 기분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한정된 구역 안에 몰아넣고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둬버린 것은 아닐까. 심지어 그들의 불행마저도 물질적, 정신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령 안락사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 덕분에 병원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생명을 존중하고 있다는 정의감에 도취 되어 뿌듯한 기분을 느낀다. 여기서 배제된 것은 환자와 그 가족들의 고통뿐이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그런 우울한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는다. 설령 법과 제도가 선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만큼의 삶의 무게를 감당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 기준에서 진정성 없게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가 너무 많다. 에밀 아자르는 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이와 같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모모는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 자기가 몇 살인지 모른다. 파리 빈민가의 엘리베이터 없는 7층에서 로자 아줌마, 다른 고아들과 함께 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 근처 비송 거리에는 기본적인 위생 시설이나 난방 시설조차 없는 빈민촌이 있다. 그곳에는 주로 흑인들이 살고 있었다. 로자 아줌마는 95kg나 되는 몸을 이끌고 매일 7층을 오르내려야만 했다. 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의 똥냄새가 진동하면 손에 든 짐을 끌어안은 채 소파에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로자 아줌마는 유대인이었다. 아줌마는 젊은 시절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살아 돌아왔다. 그 뒤로는 창녀들의 아이를 기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없는 아이라도 어머니가 매춘부일 경우 양육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기 아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창녀들은 로자 아줌마에게 양육비를 주고 아이를 맡겼다. 로자 아줌마는 가짜 출생증명서를 만드는 사람과도 친분이 있었다. 아줌마와 창녀들은 시에서 조사라도 나올까 봐 늘 전전긍긍하는 처지였다. 모모의 출생증명서도 위조된 것이었지만 출생증명서에 기재된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달라 보인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모모에게 지식을 가르쳐준 사람은 길거리에 앉아 양탄자 장사를 하는 하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코란과 함께 빅토르 위고의 책을 들고 다녔다. 모모는 자기도 어른이 되면 ’불쌍한 사람들(빅토르 위고의 책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어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한다.     


어느 날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는지 물어본다.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박하차만 마실 뿐이었다. 모모가 다시 한 번 묻자 할아버지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그렇다’고 대답한다. 모모는 울음을 터뜨렸다.     


로자 아줌마는 자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깰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인가는 꿈과 현실을 착각한 나머지 옷장 아래 숨겨둔 열쇠를 꺼내 건물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니 방공호 같이 생긴 지하실이 있었다. 그 지하실에는 아줌마가 마련해놓은 임시 거처가 있었다. 당장 버려도 아깝지 않을 낡아빠진 고물 침대와 매트리스, 감자 자루가 몇 개 있었고 버너와 양철통, 정어리 깡통이 든 상자까지 있었다. 로자 아줌마는 그 낡은 소파에 앉아 쉬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교활한, 심지어는 정복자 같은 미소’였다. 아줌마는 더 이상 무서워 할 게 없다는 듯 방으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들처럼 다시 나란히 누워 편안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했던 말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틀린 것 같았다.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로자 아줌마는 침대 밑에 히틀러의 사진을 넣어두고 있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면 그 초상화를 꺼내서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큰 걱정거리 하나는 덜었다 싶은지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 로자 아줌마네 집에 가끔 초인종이 울릴 때가 있었는데 그 소리는 전혀 반가운 소리가 아니었다. 빈민구제소에서 조사를 나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빈민구제소로 가게 될까 봐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그만큼 당시 프랑스의 고아원은 끔찍한 곳이었던 듯하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게 자기의 친엄마가 누구인지 묻고 또 물었다. 로자 아줌마는 그럴 때마다 화를 내고 신세 한탄을 했다. 애정 결핍 비슷한 증상을 보이던 모모는 개라도 한 마리 키우게 해달라고 아줌마를 졸랐다. 아줌마는 개 키울 데가 어디 있냐고, 먹이긴 또 뭘 먹이며 누가 개새끼를 위해서 돈이라도 주느냐고 투덜거렸지만 막상 모모가 잿빛 털이 곱슬거리는 푸들 한 마리를 훔쳐 왔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모는 그 개를 끔찍이 사랑하게 되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에게 줘버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나는 녀석에게 멋진 삶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내가 살고 싶었던 그런 삶을.’ 모모가 개를 데리고 걷고 있을 때 어떤 귀부인이 다가와 개를 팔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부인은 운전기사가 딸린 자동차까지 가지고 있었다. 모모는 오백 프랑에 개를 팔았다. 돈을 하수구에 처넣어버린 뒤에는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로자 아줌마 집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돈 한 푼 없는 늙고 병든 아줌마와 함께 사는 우리는 언제 빈민구제소로 끌려가게 될지 모르는 처지였다. 그러니 개에게도 안전하지 못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로자 아줌마는 모모가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다며 동네 의사인 카츠 선생님에게 데려간다. 카츠 선생님은 모모가 감수성이 예민하고 특별한 아이일 뿐이라며 로자 아줌마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준다. 아줌마는 집에 돌아와서 신경안정제를 털어 넣고 저녁 내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만 보아도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다. 당장이라도 그런 예를 들 수 있다. 쉬르쿠프 거리에서 창녀의 아이들을 돌보는 소피 부인이나, 백작의 미망인이라서 백작 부인으로 불리는 어떤 여자는 하루에 열 명까지도 돌봤는데, 그 여자들은 우선 아이들에게 신경안정제를 먹인다는 것이다.’ 신경안정제를 먹이면 소란을 피우던 아이들이 약에 취해 쓰러져 잠들고 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편히 쉴 수 있게 된다. ‘로자 아줌마의 경우는 정반대였다. 흥분할 일이 생긴다거나 아이들 중 누군가가 아주 고약하게 굴면 –그런 경우는 늘 있게 마련이다- 아줌마 자신이 신경안정제를 잔뜩 털어넣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가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치고받고 난리를 쳐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약을 먹은 로자 아줌마를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이 한 가지 있었다. 초인종 소리였다. 아줌마는 독일인들을 아주 무서워했다. 아직도 아우슈비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초인종 소리는 아줌마의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고 있었다. 아줌마는 서서히 건강을 잃었다. 치매가 진행되고 있었다. 불행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날 때도 된 것이다. 사는 동안 겪는 모든 일에는 결과가 따르게 마련이다. 아줌마가 계속 무서워해서 모모는 아줌마에게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물어보았다. ‘무서워하는 데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모모는 그 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모모 앞으로 오는 송금이 끊겨버렸다. 모모는 빈민구제소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끔찍한 곳이었다. 또 로자 아줌마의 병세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창녀들은 더 이상 그녀에게 아이를 맡기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남은 아이들마저 모두 떠나고 모모와 아줌마만 남게 되었다. 먹고 살 돈도 바닥나자 흑인 이웃들이 차례차례 돌아가며 이들을 도와주고 돌봐주었다. 로자 아줌마의 건강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고 아줌마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가파른 7층 계단은 그녀의 심장을 망가뜨렸다. 아줌마의 가슴과 배는 엉덩이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 커다란 드럼통 같았고 머리숱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배를 곯아가며 지냈지만 95kg에 육박하는 로자 아줌마에게 살을 빼라고 말하는 건 가혹한 일이라고 모모는 생각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모모는 천으로 우산에 옷을 만들어 입히고 모자를 씌운 다음 아르튀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우산은 모모의 상상 속 친구였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튀르를 들고 거리에 나가서 광대짓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간혹 동전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거리의 아이들을 잡아가는 경찰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 놓고 그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모모는 교회라는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은 진정한 신앙생활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모모는 백화점에 심부름을 갔다가 서커스 모형을 구경하게 되었다. ‘이 서커스의 세계는 인간 현실과는 동떨어진 행복의 세계였다. 철사줄 위에 있는 광대는 절대 떨어질 리가 없었다. 열흘 동안 나는 그가 떨어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가 떨어지더라도 하나도 아프지 않으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별세계였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손 닿는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서커스를 구경하고 있는데 누군가 모모의 어깨를 붙잡았다. 스물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그 여자에게서는 달콤하고 상쾌한 향기가 났다. 그녀는 모모에게 왜 울고 있냐고 물었다. 모모는 그녀가 사회복지위원회 사람일까 봐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별일 아닌 듯 접근해서 행정조사를 벌이곤 했다. 행정조사는 끔찍한 것이었다. 로자 아줌마는 행정조사를 떠올리기만 해도 불안해했다. 약자를 돕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법이 오히려 약자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그 여자는 모모가 자기가 본 아이들 중에 가장 예쁘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모는 갑자기 희망이 샘솟는 걸 느꼈다. ‘희망이란 것에는 항상 대단한 힘이 있다. 로자 아줌마나 하밀 할아버지 같은 노인들에게조차도 그것은 큰 힘이 된다. 미칠 노릇이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모모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짓고 떠났다.     

 

로자 아줌마는 심장이 안 좋았고 숨 쉬는 것조차 보통 사람보다 네 배는 힘들었다. 그러나 병원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병원에서는 주사는 안 놔주면서 죽을 때까지 붙잡아두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한 번 병원에 가면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억지로 살아 있게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고문을 무서워하는 로자 아줌마는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차라리 자살해버리겠다고 말하곤 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처럼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아온 노인네를 억지로 살려두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은 대개 더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인생이 달콤하기 때문에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는 내내 꿀을 빨아온 사람들이 이제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평생 꿀을 빨리고 살아온 사람의 등에 마지막으로 빨대를 꽂는다. 그런 삶을 살아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평생 위선적인 얼굴을 하고 로자 아줌마를 괴롭혀온 사람들이기도 했다. 나치 대원은 국가의 법과 제도를 준수하는 사람들이었고 사회복지위원회 사람들도, 병원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로자 아줌마가 개였다면 사람들은 진작에 안락사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사람에게보다 개에게 더 친절한 탓에 사람이 고통 없이 죽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정해진 법 때문에 자기 뜻대로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할 적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인정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노망이 나서 화장을 하고 교태를 부리는 걸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집을 뛰쳐나왔다.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사람이 아프면, 눈이 커지면서 표정이 풍부해진다. 로자 아줌마의 눈은 점점 커져서 이제는 이유도 모른 채 매를 맞으면서 자기를 때리는 사람을 바라보는 개의 눈 같아졌다.’ 통증 때문에 로자 아줌마의 눈은 놀란 것처럼 커져 있었다. 이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서 화살을 맞은 사람처럼 부릅뜬 그런 눈이었다.     


모모는 어른이 되면 테러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비행기를 납치하고 인질극을 벌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을 요구해야 좋을지는 알 수 없었다. 쉽지 않은 것, 진짜 그럴듯한 것을 요구해야 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평온하게 죽어갈 수 있는 집을 사고 싶다고 생각한다. ‘창녀의 자식들을 그애들의 엄마와 함께 니스의 호화별장에 보내서 편하게 살게 하고 싶다. 그러면 그들도 나중에 파리를 방문하는 국가 원수가 되든지 다수당의 국회의원이 되든지 성공한 회사 중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모는 지난번의 그 금발머리 여자가 주차를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모모는 자기도 모르게 그 여자를 뒤쫓아 가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영화 촬영장에서 목소리를 더빙하는 성우였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놀란 나머지 모모는 그들이 일하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금발 머리 여자는 모모를 보고 내 친구가 왔다면서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나딘이었다. 나딘은 아르튀르를 보고 친구냐고 물었다. 모모는 저능아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 우산이 어떻게 친구가 되느냐고 대답한다.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저능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모가 생각하기에 저능아란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자라지 않기로 마음 먹은 아이들이었다.     


동시녹음이 잘못되어 목소리가 제때 나오지 않으면 배우들은 연기를 다시 해야 했다. ‘그러면 멋진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서 살아 있을 때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단추를 누르자 모든 것이 뒷걸음질쳐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거꾸로 달리고 개들도 뒤로 달리고, 무너졌던 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시체에서 총알이 튀어나와 기관총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살인자들은 뒤로 물러서서 뒷걸음질로 창문을 훌쩍 넘어 나갔다. 비워졌던 잔에 다시 물이 차올랐다. 흐르던 피가 시체의 몸으로 다시 들어가고 핏자국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으며 상처도 다시 아물어버렸다.’     


‘거꾸로 된 세상, 이건 정말 나의 빌어먹을 인생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멋진 일이었다. 나는 튼튼한 다리로 서 있는 생기 있는 로자 아줌마를 떠올렸다. 나는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 아줌마를 아름다운 처녀로 만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났다.’     


로자 아줌마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아줌마는 이제 대부분의 시간을 착란 상태에 빠져 있었다. 카츠 선생님은 로자 아줌마가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식물과 같아질 것이고 그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창녀들이 젊었을 때는 성가시게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단 늙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모모는 생각한다. 젊은 창녀에게는 포주가 있지만 늙은 창녀에게는 아무도 없다. 모모는 할 수만 있다면 늙은 창녀들만 맡는 포주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늙고 못생기고 쓸모없어진 창녀들만 맡아서 포주 노릇을 하겠다고. 세상에서 가장 힘센 포주가 되어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아파트에 버려진 채 울고 있는 늙은 창녀가 다시는 없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밀 할아버지도 점차 치매끼가 발동하여 온전한 정신이 아닌 날이 많았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를 불렀다.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모모는 어느 집 대문 그늘 아래 앉아서 상상한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경찰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가 아버지처럼 억센 팔로 내 어깨를 감싸주는 상상을 한다.’ 모모는 삶이 너무 힘겨워서 자신을 보호해줄 어른의 존재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때 모모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제일 좋은 방법은 현실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밀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것은 시인들이라고 했었는데, 나는 그가 나를 빅토르라고 불렀던 것이 갑자기 떠올라 웃음이 났다. 어쩌면 신이 할아버지를 통해 시인이 되라는 계시를 내게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어쩌면 내면의 상상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그 상상을 의식화하고 내면화하는 것이다. 원래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다. 그것은 뇌라는 필터에 의해 한 번 굴절된 세상이다. 인식의 폭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객관적인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한들 찰나의 순간에도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 전에 인식했던 그 세상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모모는 비송 거리 모퉁이의 카페에 들어가서 흑인들과 게임을 즐긴다. 카페 주인이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미성년자 보호법에 걸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었다. 모모 같은 열 살짜리 아이는 마약 문제로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사람들이 나 같은 아이를 볼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바로 그런 문제들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미성년자들을 극진히 보호한다. 너무 보호하는 나머지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은 감옥에 처넣을 정도로.‘     


로자 아줌마와 모모를 물심양면 도와주는 흑인 왈룸바 씨는 자기 고향인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을 존중하고 보살피는 일이 훨씬 수월하다고 말한다. 파리는 도로와 층계와 구멍이 많기 때문에 노인을 잃어버리기 딱 좋다는 것이었다. 또, 프랑스 같이 크고 아름다운 나라에서는 노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노인들은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노인들은 더 이상 일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방치해둔다는 것이다. 왈룸바씨는 아프리카에서는 종족 단위로 모여사는데 노인들은 인기가 많다고 말한다. 죽어서도 종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노인들은 주소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보잘 것 없는 소굴에 모여 살게 되는데, 그들이 거기, 엘리베이터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아파트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고, 그들이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해 소리쳐봤자. 너무 힘이 없어서 아무도 듣지 못한다고 했다. 왈룸바 씨의 생각으로는 정부가 아프리카에서 일손을 많이 데려와서 매일 아침 여섯시에 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몸이 나빠진 노인들은 치워버려야 할 거라고 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노인들이 살아 있는지 어떤지 아무 관심도 없다가, 이웃에서 악취가 나니 가보라고 경비원에게 말할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모모의 아버지가 로자 아줌마의 아파트를 찾아오게 되었다. 다행히 아줌마가 잠깐 정신이 돌아왔을 때였다. 그 남자의 직업은 포주였는데 아이샤라는 창녀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그러다 정신착란을 일으켜 아내를 살해했고 11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병원에서 아들을 볼 수 있도록 잠시 내보내주었다는 것이다. 로자 아줌마는 마침 집에 놀러와 있던 유대인 아이 모세가 당신 아들이라며 거짓말을 한다. 출생증명서를 헷갈리는 바람에 아랍 아이를 유대인 아이로 키우고 말았다는 것이다. 남자는 유대인은 자기 아들이 될 수 없다며 소리를 지르다 제풀에 발작을 일으키고 죽어버렸다. 정황상 그 남자는 모모의 아버지가 분명했다. 그러나 로자 아줌마는 자기 부모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모모가 실망할까 봐 연기를 한 것이었다. 모모 역시 아줌마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모모는 자기 나이가 10살이 아니라 15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모는 나딘의 영화 촬영장에서 본 것처럼 모든 것을 뒤로 돌아가게 할 수 있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로자 아줌마도 다시 젊고 아름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우리 둘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은 지켜야 했다. 아주 못생긴 사람과 살다보면 그가 못생겼기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로 못생긴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 상태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내 말을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 유태인 노인네의 눈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 눈은 하밀 할아버지가 이건 최고로 아름다운 양탄자란다 라고 말하던 양탄자만큼이나 아름다웠다. 하밀 할아버지는 아름다운 양탄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으며 알라신도 양탄자 위에 앉아 있었다고 믿었다.’     


마침내 모모는 카츠 선생님에게 로자 아줌마를 안락사시켜달라고 부탁한다. 카츠 선생님은 안락사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그 법을 지키지 않으면 중벌을 받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문명국가에 살고 있으며 너는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하지만 모모는 ’벌 받을 일을 하지 않은 사람 중에 중벌을 받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벌을 받는 건 언제나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뜻이다.     


‘선생님이 인정머리 없는 늙은 유태인이 아니고 심장이 제자리에 붙어 있는 진짜 유대인이라면, 좋은 일 한 번 해주세요.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런 생에서 구해주세요. 생이란 것은 아줌마를 엉덩이로 걷어차버렸어요. 그놈의 알지도 못하는 하느님 아버지란 작자 때문이에요. 그 작자는 어찌나 잘 숨어 있는지 낯짝도 안 보여요. 그 낯짝을 재현시키는 것조차도 안 된대요.;     

‘나는 절대로 정상은 안 될 거예요, 선생님.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나는 정상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예요 선생님.‘     


그러나 모모는 정상인들이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 속에 살아가고 있는 힘없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는 계속해서 모모와 그 이웃들을 괴롭힌다. 아버지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창녀는 양육권을 가질 수 없다는 법, 고아는 모조리 끔찍한 빈민구제소에 들어가야 한다는 법, 존엄사를 처벌하는 법. 이러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사회의 정상인들이다. 정상인들이란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누가 아프다고 누가 소리를 지르면 왜 소란을 피우냐고 나무라는 점잖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타인의 일에 그다지 깊이 신경 쓰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만 바랄 뿐이다. 그래서 모모는 그렇게 얄팍하고 냉담하고 고지식한 정상인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카츠 선생님은 로자 아줌마를 저대로 두면 생명이 위독해질 거라고 말한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으니 당장 병원에 연락해서 입원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모모는 아줌마가 기계장치에 의지해 몇십 년을 연명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임기응변을 쥐어 짜낸다. 이스라엘에 사는 로자 아줌마의 친척들이 며칠 안에 그녀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고 말했던 것이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지하실이 쓸모가 있다는 것을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아줌마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을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초인종 소리와 세상의 정상인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장소가.     


모모는 그 날부터 로자 아줌마와 같이 지하실에서 생활하게 된다. 아줌마가 숨을 거둔 뒤에도 모모는 시체에 향수를 부어주고 색조 화장을 해주었다. 모모는 아줌마를 그리워하며 그 옆의 매트리스에 누워 잠을 자면서 꼬박 3주를 보냈다. 냄새 때문에 주민들이 지하실로 문을 박차고 쳐들어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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