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ly Jun 12. 2023

수녀 - 폐쇄된 사회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끔찍한 본성

영화 '수녀'의 포스터



수녀(La Religieuse)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계몽주의 철학자인 디드로가 1760년에 집필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인간이 어디까지 사악해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폐쇄된 수녀원에 살고 있는 쉬잔느 수녀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마녀사냥에 필적하는 집단 광기를 보여준다. 당시 수사들이나 수녀들이 모여 살던 수도원에서는 이런 광기 어린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21세기인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나 군대, 직장, 어디든 인간이 모인 곳에서는 괴롭힘과 가혹행위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사악함은 인간의 본성이다.    

 

주인공 쉬잔느 시모앵은 십대 후반의 소녀이고 그녀의 아버지는 변호사다. 쉬잔느에게는 언니가 두 명 있는데 어릴 때부터 가족들 모두 이상할 정도로 쉬잔느만 미워했다. 사실 쉬잔느는 그녀의 어머니가 간통을 저질러서 낳은 사생아였다. 언니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자 부모는 쉬잔느를 수녀원으로 보내버린다. 어머니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존재인 쉬잔느를 곁에 두기 싫어했다. 부모의 재산은 전부 언니들의 결혼 지참금으로 물려주었다.     


쉬잔느는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수녀원에서 꺼내 달라고 간청한다. 비참하고 어리석은 수녀로서의 삶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태생적으로 구속이나 불합리를 참지 못할 만큼 명석했다. 그러나 신앙심은 매우 깊었다.     


‘아닙니다. 그저 은둔 생활을 증오하는 이유밖에는 없어요. 지금도 증오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증오할 거예요. 저는 날마다 되풀이되는 비참한 수녀 생활에 순응할 수가 없어요. 그런 유치한 짓거리를 경멸하니까요. 순응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아무리 해도 그럴 수가 없었어요. 바보스럽게 그 생활을 받아들이는 제 동료들을 부러워하고, 저도 그들처럼 단순하게 살 수 있게 해주십사고 기도도 수없이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앞으로도 제게 그런 단순성을 허락하시지 않으실 거예요.’     


수녀원의 원장은 감언이설로 그녀를 설득한다. 쉬잔느가 수녀가 되어야만 부모가 수녀원에 맡기고 간 5천 프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돈 때문에 그녀들은 평생 거짓말을 하고 순진한 젊은 처녀들에게 4,50년 간의 절망과 그리고 어쩌면 사후의 영원한 불행까지도 배태하게 될 일을 하도록 시키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쉬잔느는 수녀원에 감금되어 있는 미친 수녀를 보게 된다.     


‘산발한 머리에 옷도 거의 걸치지 않은 채 발에는 쇠사슬을 매달고 있는 그녀는 초점없는 눈을 치뜨고 자기 머리카락을 잡아뜯으며 주먹으로는 가슴을 마구 두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싸잡아 무서운 저주를 퍼붓더니 창문을 열고 아래로 뛰어내리려 하였습니다. 저는 공포에 사로잡혀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습니다. 그 불행한 여인을 보면서 저는 저 자신의 운명을 보는 것 같아서 그 즉시 죽었으면 죽었지 저렇게 되지는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수도자 서원식 날이 되자 주교 신부 등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쉬잔느는 공개적으로 서원을 거부한다. 수녀원에서는 그녀를 파리의 부모님 집으로 돌려보내버렸다. 가족들은 쉬잔느의 청을 매정하게 거부하고 그녀를 다른 수녀원으로 보내버렸다. 이 수녀원의 원장 수녀는 고매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쉬잔느는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원장 수녀는 곧 임종을 맞게 되었고 새로 부임한 원장 수녀는 전임 원장과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새 원장 수녀는 편협하고 미신적이었으며 전임자가 아끼던 수녀들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녀는 곧바로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수녀원은 삽시간에 증오와 중상모략으로 혼란스러워졌다. 새 원장 수녀는 이상한 종교 의례를 강요했고 말총 내의를 입으라고 하거나 채찍질을 하게 하는 등 고행을 강요하였으며 신구약 성경을 빼앗아버리고 이상한 이론을 강요했다. 새 원장 수녀의 미움을 산 쉬잔느는 이때부터 박해를 당한다.     


‘먼저 동료 수녀들에게 저를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이 내려져서 저는 외톨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함께 있다 들킨 저와 저의 친구들을 온갖 나쁜 말로 매도하였으며 저에게 인간으로셔 견디기 힘든 모진 형벌을 부과하였습니다. 몇 주인 간이나 성당 한가운데서 외따로 무릎을 꿇고 미사를 보는 일, 빵과 물만으로 연명하는 일, 계속된 감금, 그리고 수녀원 일 중에 가장 천한 일만을 도맡아 하는 일 등이 저에게 부과된 벌이었으며 저의 공범자로 몰린 제 친구들도 저에 못지 않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저에게서 잘못을 찾을 수 없을 때면 억지로 잘못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서로 상충되는 지시를 하고는 제가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벌을 주었으며 제가 모르게 미사나 식사시간 같은 것을 당겨놓는 등 일과 시간을 임의로 조정하여 그것을 모르는 저는 날마다 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꽤 용기가 있는 편이지만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고독과 박해를 견뎌낼 힘은 없었습니다. 저에 대한 박해는 점점 심해져서 급기야는 수녀원 전체의 오락이 되고 말았습니다. 50명의 여자들이 겨냥하여 저를 노리개처럼 괴롭힌 그 세세한 사연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잠을 못자게 하고, 깨어 있지 못하게도 하며 기도조차 못하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제 옷을 훔쳐 갔으며, 제 방 자물쇠를 비틀어놓기도 하고, 제가 일을 못하도록 방해하며, 제가 마쳐 놓은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또한 제가 하지도 않은 언행을 가지고 저를 벌하는 등 저의 하루하루는 위반과 누명과 처벌의 연속이었습니다.’     


‘저의 건강은 이처럼 오래 계속된 모진 형벌을 견뎌내지 못하여 나날이 쇠약해져 갔고 그와 함께 우울증 또한 깊어졌습니다. 처음에 저는 괴로울 때면 성당으로 갔고 제단 밑에서 위로를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정신은 체념과 절망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때로는 제 운명에 끝까지 순응하리라 결심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런 운명에서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정원 깊숙한 곳에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 곁을 배회한 것이 무려 몇 번이었던가요! 또 무려 몇 번이나 그 속을 들여다보았던가요!’     


‘그것은 제가 자주 가는 우물가로 가는 것을 제 적들이 잘 알고 있었으며 언젠가는 제가 충동적으로 그것을 단행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쪽으로 가면 그들은 그곳에서 물러나 짐짓 다른 곳을 쳐다보는 척하였습니다. 제게 대한 박해가 극에 달하여 정신이 돌 지경이 된 날이면 이상하게도 보통 때 같으면 잠겨 있어야 할 시간에 정원문이 열려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물이라는 탈출구가 적들에 의해 열려져 있다는 것, 그들이 저를 그쪽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 저는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러던 차에 저는 지난 제 생애를 돌이켜보며 수도 서원을 취소할 생각을 하게 되엇습니다. 처음에 그것은 막연한 공상이었을 따름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외톨이가 의지할 사람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도움도 없이 어떻게 그런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생각만으로도 저는 어느 정도 안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 정신은 냉정을 되찾고 자제력을 회복하였으며 가능하면 벌을 받지 않으려 노력하고 벌을 받을 때에도 전에 없이 참을성을 보였습니다. 저들은 저의 변화를 알아채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여러 가지 핑계로 제 방을 들락거렸습니다. 그들은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제 침대 휘장까지 들춰 보고서야 방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수녀원에도 쉬잔느를 가엾게 여기는 동료 수녀가 있었다. 쉬잔느는 기도 중에 몰래 그 수녀에게 종이뭉치를 건네주었다. 그 종이는 쉬잔느가 자신의 삶에 대해 기록한 글이었다. 종이에는 수녀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도 함께 적혀 있었다. 동료 수녀는 쉬잔느를 돕기 위해 믿을 만한 변호사에게 그 글을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수녀들이 쉬잔느를 괴롭히기 위해 쉬잔느가 해놓은 일을 망쳐놓으면 조용히 수습을 해놓는 등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그녀를 도왔다.      


‘그동안 저들은 옛날 제 방을 샅샅이 수색하였습니다. 배개와 매트리스를 뜯고 가구를 옮기고 마루를 검사하였으며 제가 갔던 곳이면 고해실, 성당, 정원, 우물, 할 것 없이 수녀원 전체를 이 잡듯이 뒤졌습니다.’    

  

‘제가 팔을 내밀자 총신들이 와락 달려들어 팔을 잡고 베일을 벗기고 거리낌 없이 제 옷을 모두 벗겼습니다.’     

‘그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헐렁한 셔츠 한 장을 제게 던져주더니 양말을 벗기고 부대자루를 머리에서부터 거꾸로 뒤집어씌운 다음 복도로 끌고 갔습니다. 저는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방 바깥으로 아무도 나오지 말라는 원장님의 명령이 내린 뒤였습니다. 제가 하느님을 부르며 땅바닥에 쓰러지자 그들은 저를 질질 끌고 갔습니다. 그리하여 층계 밑에 이르렀을 때, 저의 발은 피투성이가 되고 다리는 온통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처참한 제 몰골에는 목석이라도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동안 그들은 어두운 지하 감방문을 열고, 저를 반쯤 썩은 자리 위로 밀어 던졌습니다.’     


‘저의 첫 반응은 저 자신을 해치려는 자해의 충동이었습니다. 저는 손으로 목을 붙잡고 이빨로 옷을 찢으며 야수와도 같은 무시무시한 고함을 질러대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를 벽에 짓이기는 통에 얼굴에는 곧 선혈이 낭자해졌습니다. 이렇게 아우성을 치던 저는 곧 기진맥진해져서 쓰러졌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사흘을 보내었습니다. 제게는 그 사흘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침마다 감시하는 수녀 한 명이 와서 제게 말하였습니다. “원장님께 복종해. 그러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     


그러던 중에 변호사가 쉬잔느를 만나러 왔다. 쉬잔느는 부모의 재산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사리사욕 때문에 수녀원을 나가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수녀 신분으로 쓴 각서는 자유인이 되면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그녀의 말을 전혀 믿지 않을 것이며 설령 믿는다 하더라도 언니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무일푼이 된 동생이 세상에 나와 있을 경우 사람들의 이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만일 동생이 우리에게 적선을 하러 오면 우리가 거절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결혼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그 남편이 어떤 사람일지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아이라도 생기면......? 그러므로 어떤 수를 써서라도 그애의 위험한 기도를 막아야 해.’     


수녀원에서는 쉬잔느를 사흘 동안 세워놓고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기도를 읊조렸다. 나흘째 되는 날 벌인 의식은 원장 수녀의 이상한 면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미사가 끝나자 그들은 쉬잔느를 성당 중앙에 설치된 관속에 들어가게 한 다음 수의를 입혔다.     


‘수녀 두 명이 제 수의를 벗긴 다음 수녀들이 뿌린 물로 뼛속까지 젖은 저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촛불을 껐습니다. 저는 갈아입을 옷이 없었기 때문에 입은 채로 옷을 말려야 하였습니다.’     


‘모든 수녀들에게 저와의 일체의 접촉이 금지되어 제게 말을 걸어서도, 저를 도와주어서도, 저에게 접근하여서도, 또 심지어 제가 사용한 물건을 만져서도 안 되게 되었으며 이 명령은 매우 엄격히 지켜졌습니다. 수녀원 복도는 상당히 좁아서 곳에 따라서는 두 사람이 비켜 지나가기 어려운 곳도 있었습니다. 제가 복도를 지나갈 때, 다른 수녀가 반대편에서 오게 되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고, 또 행여 제게 닿을까 하여 베일과 옷자락을 거머쥐고 벽에 붙어서는 수녀도 있었습니다. 제게서 받을 것이 있으면 땅에 그 물건을 내려놓게 하여 수건에 싸서 집어 들었고, 제게 줄 것이 있으면 던져주었습니다. 혹시 잘못하여 저와 닿기라도 하면 몸이 더럽혀지기라도 한 듯이 원장님께 달려가서 고해를 하고 사면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하루종일 굶주릴 때가 많았다. 어쩌다 무언가를 던져줄 때는 재와 오물이 섞인 음식을 주었다.      


‘변호사조차도 저를 만나려면 때때로 위협을 해야 할 정도였으며 면담시에는 언제나 수녀 한 명이 저를 감시하다가 제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할 양이면 불평을 하고, 면담이 길어지면 화를 내었으며, 제 말을 가로막고, 부정하고, 반박하며 원장님께 가서는 제 말을 고자질하고, 왜곡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제가 하지 않은 말까지 만들어 내는 등 별별 농간을 다 부렸습니다. 저에 대한 박해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저의 물건을 훔쳐가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제 의자와 이불과 매트리스가 없어지고 세탁물이 돌아오지 않아서 단 한 벌뿐인 옷은 찢어지고, 양말과 신발조차도 없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또한 물을 주지 않아서 이미 말씀드린 그 우물에 가서 직접 물을 길러야 할 때도 있었으며, 제 그릇을 부숴버려서 물을 방으로 떠올 수가 없게 되자 저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마셔야 하였습니다.’     


‘창문 밑을 지날 때 멀리 돌아가지 않으면 오물을 뒤집어 쓸 위험이 있었으며 몇몇 수녀들은 제 얼굴에 대고 침을 뱉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사실을 고해 신부님께 고해 바칠까봐 두려워하여 제게는 고해조차 금지되었습니다.’     


‘제 방 자물쇠를 걸어놓아서 미사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문은 제가 늦었을 때면 언제나 그랬언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저는 벽에 등을 기대고 가슴에 손을 모은 채 땅바닥에 길게 드러누웠습니다. 그러자 제 몸의 나머지 부분이 길을 막은 꼴이 되었습니다. 미사가 끝나 밖으로 나오던 수녀들이 저를 보고 문간에 멈춰섰습니다. 원장님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의아해 하시다가 사정을 깨닫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밟고 지나 가거라. 송장이나 다를 바 없으니까.”

몇몇은 그 말대로 저를 발로 밟았고, 나머지는 차마 그러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저를 일으켜 주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밤중에 자연의 요구를 해결하러 밖으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아침이면 미쳐서 방황하느라 다른 사람의 잠을 깨웠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 문이 없었으므로 밤중에 아무나 제 방에 들어와 소리를 지르고, 침대를 잡아당기고, 창문을 부수는 등 온갖 흉측한 짓을 자행하였으며 그 소리는 아래 위층에 전파되어 모의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은 제 방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고 수근대었습니다. 무시무시한 목소리와 외치는 소리, 그리고 철그덕거리는 쇠사슬 소리를 들었으며, 제가 유령 및 악령과 함께 대화하며, 그들과 계약을 맺은 것이 틀림없으므로 절대로 제 방 앞에 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나돌았습니다. 어느 수녀원이든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대부분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남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제 방 앞을 지나가지도 못하였으며 저를 흉측한 괴물이나 되는 듯이 생각하여 저를 만나면 성호를 긋고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고 소리치며 달아나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나이 어린 수녀 한 명이 복도 끝에 있다가 저를 보았습니다. 마침 제가 그쪽 방향으로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저를 피할 방법이 없자 그 수녀는 극도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얼굴을 벽쪽으로 돌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하느님! 하느님! 예수님! 성모 마리아님! 하느님! 예수님! 성모 마리아님......!”

제가 그녀 근처에 이르르자 그녀는 저를 보지 않으려고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저를 향해 돌진해왔기 때문에 그녀는 곧 제 품에 안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소리쳤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는 이제 파멸이에요! 쌩뜨 쉬잔느 수녀님, 제게 나쁜 짓하지 말고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러나 그녀는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기절하여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뛰어와 그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이 사건으로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큰 범죄나 되는 것처럼 제가 음란한 마귀에 씌여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행위를 했다고도 하고, 또 제가 이상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도 하며 그 젊은 수녀의 혼란된 상태가 바로 그 증거라고들 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제가 기도중에 이를 갈고 성당 안에서 전율하였다고 증거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성체를 받들 때 제가 팔을 비비꼬았다고도 하였으며 예수상을 발로 짓밟고 묵주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누군가가 훔쳐갔기 때문인데 말입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신성 모독적인 말을 했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두들 제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기정 사실로 생각하고 부주교님께 보고를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그것은 그대로 실행되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성당에 가기 위해서 방을 나왔을 때 저는 복도 한가운데에 부젓가락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햇빛에 눈이 부신 저는 그것이 빨갛게 달아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저는 격렬한 아픔에 그것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부젓가락에는 제 살갗이 떨어져 눌러붙어 있었습니다. 또 밤이면 제가 지나다닐 만한 곳을 골라 발치나 머리 높이에 장애물을 가져다놓았고, 바닥에는 유리조각을 뿌려 놓았기 때문에 저는 수없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불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손을 앞으로 내밀고 두려움에 떨면서 다녀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런데도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았나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화장실에 가면 문이 잠겨 있어서 아래 위층을 오르내리며 열린 곳을 찾아야 했고, 찾지 못할 때는 정원으로 나가야 했는데 정원 문마저 잠겨 있을 때면......’     


그 뒤 소송이 시작되었다. 소송은 쉬잔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쉬잔느가 자기 가족을 너무 욕되게 하는 내용을 넣지 못하게 했고 수녀원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차마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유리한 사실은 첫 번째 서원식에서 이의를 제기한 것뿐이었다. 반면 상대편에서는 온갖 거짓말을 총동원하여 중상모략을 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게다가 매너리즘에 빠진 재판관들은 감춰진 사실을 파헤치려고 하지 않았으며 제가 이 재판에서 이기면 다른 수녀들이 떼를 지어 서원을 취소할까봐 저어하기까지 하였기 때문에 승리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하였습니다.’     

결국 쉬잔느는 재판에서 지고 말았다. 동료 수녀들은 그녀가 모욕감을 느끼는 모습을 조금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뒤 그녀는 사흘 동안 공개 사죄를 해야만 했다. 이틀에 하루 금식해야 했고 매주 금요일마다 저녁 미사 후에 고행해야 했다.     


‘수녀원 전체가 제 방 앞에 두 줄로 늘어서 있는 가운데 몇몇 수녀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제 목에 밧줄을 걸고 한 손에는 횃불을, 또 한 손에는 채찍을 쥐어준 다음 밧줄을 끌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끌려 양 옆에 도열해 있는 수녀들 사이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제 목의 밧줄을 풀고 허리까지 옷을 벗긴 다음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기고 왼손에 들고 있던 채찍을 오른손으로 바꿔들게 하였습니다.’     


‘저는 곧 그들의 뜻을 알아차리고 고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방에 돌아온 저는 발에 격심한 통증을 느끼고 발바닥을 살펴보았습니다. 발바닥은 온통 피투성이었습니다. 길에 유리 조각이 뿌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공개 사죄는 사흘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유일하게 그녀 편이 되어준 동료 수녀는 쉬잔느가 아플 때마다 열심히 간호를 해주었다. 쉬잔느가 건강을 되찾아갈수록 그 수녀는 점차 창백해졌다. 결국 쉬잔느의 유일한 친구마저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소송에서 패하기는 했지만 쉬잔느는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되었다. 새로 옮겨간 수녀원의 수녀들은 쉬잔느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그녀의 시련은 계속되었다. 이 수녀원의 원장 수녀는 젊고 아름다운 수녀들을 대상으로 음란한 짓을 벌이곤 했기 때문이었다. 쉬잔느는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곧 원장 수녀의 총애를 한몸에 받게 되었다. 처음에 그녀는 원장 수녀가 왜 자기를 따로 부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일로 원장 수녀의 사랑을 받고 있던 떼레즈라는 수녀가 쉬잔느를 시기하게 되었다.      


어느 날 원장 수녀는 쉬잔느를 불러 전에 있던 곳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쉬잔느는 겪었던 일들을 전부 털어놓았다. 원장 수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욕설을 내뱉거나 비명을 지르는 등 크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러나 그런 사연을 다 듣고도 쉬잔느를 불러들여 애무를 하는 등 성적인 착취를 멈추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어떤 여자 죄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여자는 바깥세상에 있을 때 온갖 고통을 다 당하다가 참을 수가 없어서져 정당방위로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정당방위는 입증되지 않았고 실형을 선고받고 말았다. 감옥에서도 그녀는 죄수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감옥 안이라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고 매일매일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힘 있는 죄수가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알고 보니 그 죄수는 레즈비언이었다. 그 죄수는 그녀를 노리개로 삼았으며 온갖 변태적인 행위를 강요했다고 한다. 약자의 운명은 이런 일들의 끝도 없는 반복인 것이다.     


쉬잔느가 고해 성사에서 원장 수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자 주임 신부는 원장을 멀리할 것을 명령한다. 쉬잔느가 원장 수녀를 피하자 원장 수녀는 정염에 몸부림치면서 지옥 불에 떨어질까 두려워 정신이 이상해져버렸다. 맨발에 속옷 바람으로 머리를 산발한 채 소리를 지르고 다녔고 입에 거품을 뿜으며 손으로 귀를 막고 몸을 벽에 부딪히곤 했다. 형벌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정신 착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람들은 원장 수녀를 감금해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상태에서 원장 수녀는 숨을 거두었다. 떼레즈 수녀도 1년 뒤에 원장 수녀와 운명을 같이 했다. 강제로 수도원에 감금하는 이런 비인간적인 제도 때문에 사람들이 히스테리를 일으키곤 했던 것이다.      


수녀원을 담당하는 신부 중에는 쉬잔느의 처지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신부는 자기도 성직자가 되기 싫었지만 가족들이 자신을 억지로 성직자로 만들었다고 했다.     


“신부님께서는 그것이 소명의식이 없이 수녀가 된 사람들의 공통된 운명이라고 보시나요?”

“아니,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야. 그리 되기 전에 죽는 사람도 있고, 성격이 유연해서 결국에는 적응을 하는 사람도 있고, 막연한 희망으로 한동안 버티는 사람도 있지.”

“수녀에게 무슨 희망이 있어요?”

“무슨 희망이냐고? 우선 수녀가 되기로 한 서원을 취소한다는 희망이 있지.”

“그 희망이 없을 경우에는요?”

“언젠가 문이 열리리라는 희망이 있지. 젊디젊은 사람들을 무덤 속에 가둬두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여 수녀원을 폐지하는 일도 있을 수 있고, 불이 날 수도 있고, 담장이 무너질 수도 있고, 누군가가 구하러 올 수도 있지. 이런 모든 생각을 머릿속에 굴리면서 살기 때문에 우리는 정원을 산책하다가 무의식적으로 담장 높이를 가늠해 보기도 하고, 방에 있을 때면 무료를 달래기 위해 창살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창이 길쪽으로나 있을 경우에는 길을 내려다보지. 누군가 길을 지나가는 소리가 나면 가슴이 뛰지. 누가 자기를 구하러 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바깥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괜히 희망을 갖고, 또 병이라도 걸리지 않나 기대를 하지. 그러면 남자 의사를 볼 수 있을 거고 또 어쩌면 온천에 보내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맞아요, 정말 그래요.”

저는 큰 소리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꼭 제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것 같군요. 그런 공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요. 또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있고요.”

“정신이 들어 그것이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 처지의 비참을 직시하게 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모두 미워하게 되지. 울고 신음하고 고함을 치고 절망의 심연 앞에서 발버둥치고...... 개중에는 원장에게 달려가 하소연으로 위안을 찾는 사람도 있고, 자기 방이나 성당에서 기도로 신의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있고, 옷을 찢고 머리칼을 쥐어뜯는 사람도 있고, 깊은 우물이나 높은 창문에서 목맬 끈을 찾아 죽음을 택하는 사람도 있지. 또 오랜 고통 끝에 넋이 빠져 바보처럼 멍청하게 일생을 보내는 경우도 있고, 몸이 허약한 경우에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도 하고, 정신이 혼란해지고 머리가 혼미해져 미치게 되는 경우도 있어. 가장 행복한 것은 끊임없이 그런 환상 속에서 살 수 있는 경우지. 죽을 때까지 하나의 환상이 깨지면 또 다른 환상으로 대치하면서 사는 그들의 생은 착각과 절망이 교차되지만 그래도 그것이 제일 나은 셈이야.”     


새로 부임한 원장은 쉬잔느가 전임 원장을 유혹했다고 그녀를 비난했다. 그 뒤 그녀의 고통은 다시 시작되었다. 담당 신부도 상급자로부터 박해를 받고 떠났다. 그는 차라리 쉬잔느에게 수녀원에서 탈출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리하여 몇몇 사람의 도움으로 그녀는 수녀원 담장을 넘게 되었다.      


물론 속세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탈출을 도와준 이의 주선으로 쌩뜨 까트린느의 작은 여인숙에 머물게 되었다. 여인숙 주인은 다정한 얼굴을 한 중년 여성이었는데 여인숙에 묵고 있는 또래 남녀와 어울리기를 권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방탕한 남자들이 묵는 곳이었고 포주들이 여자를 구하는 곳이었다. 쉬잔느 수녀는 다시 도망쳐 세탁소에서 빨래하는 중노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도망쳤다는 소문이 파리 전역에 퍼지면서 더 이상 그곳에도 머물 수 없게 되었다.      


이 소설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은 쉬잔느 수녀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글로 적어 한 후작에게 보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크루아마르 후작은 덕망이 높기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었는데 쉬잔느는 자신을 불쌍히 여겨 남의 집 몸종이나 가정부, 하녀 등의 일자리를 알아봐줄 것을 부탁했다. 여기까지는 허구지만 사실 이 편지는 작가인 디드로가 자기 친구인 크루아마르 후작에게 장난을 치기 위해 쓴 편지였다. 물론 이 수녀의 실제 모델이 있기는 했다. 마르그리뜨 드라마르라는 한 수녀가 수녀 서원 취소 소송을 냈는데 이것이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이다.      


가짜 편지를 읽고 난 크루아마르 후작은 쉬잔느 수녀(실제로는 디드로)에게 답장을 보냈다. 후작은 쉬잔느를 임시로 보살피고 있다는 마뎅 부인(디드로가 편지를 받아오도록 미리 손을 써둔 부인)에게 ‘그녀를 어미 없이 자라는 제 딸 곁에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라고 썼다. 이때 이미 후작의 나이는 노년기에 접어든 상태였다. 여기서부터는 소설이 아니라 실화다. 나이든 남자가 젊고 아름다운 소녀를 자기 집에 고용하는 것이 정말 순수한 호의에서였을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편지 곳곳에 쉬잔느의 미모에 대한 묘사가 가득한데 그 때문에 원장 수녀가 그녀를 노리곤 했던 것이다. 만약 이 소설이 실화라면 그토록 모진 고초를 겪은 여자가,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자신의 사연을 글로 써서 알렸건만 죽을 때까지 농락만 당할 운명이었던 듯하다. 이 소설의 실제 모델인 마르그리뜨 수녀는 여든이 넘도록 결국 수녀원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수녀원에서 나왔더라도 죽을 때까지 괴롭힘당하고 고통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부모한테서마저 버림받은 약자를 지켜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자신의 고초를 외부세계에 알림으로써 탈출하려 한 쉬잔느 수녀의 행동은 현명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수녀원을 나오고 나서도 그녀의 비참함은 덜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기적인 세상에서 약자의 운명은 사실상 정해져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최대한 알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쉬잔느 수녀의 모델이 된 마르그리뜨 같은 사람들이나 디드로 같은 작가들이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업 인 디 에어 - 월터 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