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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찬 Jul 16. 2020

불신 증후군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 여러 가지 상황이 얽히고설키며 곤궁에 빠졌었다. 어설펐던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망상에 빠진 어떤 사업가와 잘못 엮이면서부터다. 말이 사업가였지, 수완이 좋지 않아 제대로 된 수익도 못 올리던 사람이었다.


일이 힘들었던 것은 그렇다 치지만, 문제는 그 사업가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약 2년간 알고 지냈던 그 사람의 모든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재무 상태에서부터 개인 신상까지 모든 것이 사실과 달랐고, 제대로 계약하지도 않은 일들을 다 된 듯이 말하며 직원들을 기만했다. 심지어 그가 처갓집 재산을 끌어다가 사업자금으로 탕진한 후 처자식과 연락을 끊었다는 정보를 접하고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비혼자인 줄로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봤자 일이 풀리지 않고 수익이 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깨닫게 됐다.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나는 그제야 그와의 관계를 완전히 끝내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월급을 받으며 그간의 적자를 메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경제활동은 금세 지극히 정상적인 패턴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심리적인 부분은 정상으로 되돌아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른바 ‘화병’이란 게 무엇인지도 처음 느껴봤다. 실제로 한동안 자다가도 분을 참지 못해 종종 깨곤 했다. 나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빼앗아 간 그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런 인간을 걸러내지 못하고 밑바닥까지 추락해야 했던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기도 했다. 그 당시, 사람을 대하는 나의 눈빛이나 태도는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공격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런 시기에 회사 동료의 권유로 한 여성과 소개팅을 하게 되었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종종 술 한 잔을 같이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에 부담 없이 편한 느낌이었다. 예전 같으면 별 의심 없이 그녀가 호감 어린 눈빛을 보낸다고 느꼈을 것이다. 몇 시간 동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녀의 다정한 태도를 보며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이 사람은 나한테 뭘 뺏어 먹으려고 이렇게 상냥하게 구는 걸까?’


난 아직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소개팅 이후로도 두어 번 더 만나서 맥주 한 잔씩 기울이며 수다를 나누긴 했지만 더 이상 진전은 없었다. 어설프게 열린 척 닫혀 있는 내 마음의 문을 상대방이 못 느꼈을 리가 없다.

불안(Angst), 1896 -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거짓과 기만은 사람을 이런 식으로 망가뜨렸다. 인간에 대한 불신이 비정상적으로 차올라 있었다. 영혼을 모두 갉아먹히고 난 뒤, 남은 뼛조각까지 깊은 구덩이에 함몰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앞에 언급한 그 사업가도 그랬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비정상적으로 사람들을 경계하고 의심하는 태도를 느낀 적이 많다. 타인을 믿지 않기에 자신의 진실도 드러내지 않았으리라.


무언가를 자꾸 감추고 사람을 불신하는 그의 행태를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니, 나 또한 나를 드러내기 싫어졌다. 불신으로 가득 찬 그를 내가 신뢰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난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도 커져갔다. 솔직하게 다가가면 이용만 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나를 물들였다. 난 그로 인해 불신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만일 내가 이런 상태로 만나는 사람들을 계속 의심하고 산다면?’


끔찍했다. 그런 삶도 싫지만, 그런 인간이 되는 것 자체가 너무 끔찍했다. 타인의 거짓과 기만 때문에 고생한 것도 억울한데, 나의 성향 자체가 바로 그 증오하는 인간처럼 바뀌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적어도 앞으로는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보상이 될 것 아니겠는가.


나 자신과 싸우기 시작했다. 내 안에 너무 크게 자리 잡은 부정적인 나를 없애기 위해 지독하게 싸워야만 했다. 공격적인 성향이 튀어나왔다고 느낀 날은, 혼자서 산을 뛰어다니며 땀을 흘려 내보냈다. 몸 안에 축적된 나쁜 세포들을 날려 보내야 한다. 무작정 걷는 날이 많아졌다. 걸으면서 이 도시를 훑어본다. 원래 이 도시에 있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나와 도시를 분리해 걸었다. 기억을 왜곡해서라도 병든 나를 내쫓아내기 위함이다.


차츰차츰 난 치유되기 시작했고, 어느덧 한 여성과 연애도 시작하고 있었다. 여유가 생긴 것일까? 나중에는 이 사건들을 재가공해서 연극으로 제작하기까지 했다. 꽤 오래 걸렸지만, 다행히 그 끔찍한 기억들을 새로운 정서감으로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공격적인 성향도 누그러졌다.


하지만 거짓과 기만을 행하는 자에 대한 분노의 감정은 씻겨 나가지 않았다. 그것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 전염병인지 겪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도 생존을 위해 거짓과 기만을 휘둘러야 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고, 뒤틀린 심리는 폭력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이 욕하던 자들과 닮아간다.


그 당시 형성된 분노의 감정은 이제 유사한 부류의 인간이 접근해 올 때 항체처럼 반응한다. 항체는 욕심을 줄일수록 강해졌다. 만일 이 항체가 사라진다면 또다시 감염될지도 모를 일이다.



사기꾼은 욕심이라는 숙주에 빌붙는 기생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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