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옥철을 타야만 한다. 이미 승차장은 발 디딜 틈도 없다. 적어도 열차 한두 대는 그냥 보내야만 할 것 같은 예감.
첫 번째 열차가 도착했다. 객차 안 사람들의 표정은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시멘트를 닮았다. 스르륵 출입문이 열리지만, 도저히 사람이 더 들어갈 수는 없어 보인다. 객차 안의 몇몇 승객들은 자칫 방심하다 열차 밖으로 밀려날까 봐 안간힘으로 버틴다.
그때! 아아, 위대한 푸쉬맨이여. 당신은 인간계의 존재가 아닌가 보구려.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설을 믿기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승객들이 꾸역꾸역 들어가는가 싶더니, 막판 닫히는 출입문의 악력을 못 이겨 밀려 나오는 이들도 있다. 집에서 나오기 전 급하게 먹어치운 샌드위치가 떠오른다. 허둥지둥 물을 마시며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 때, 딸기잼 한 덩이가 삐져나와 방바닥으로 추락했었지.
그래도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이 열차에 올랐다. 얼핏 줄을 보니 다음 열차엔 나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두 번째 열차가 도착했다. 앞의 열차보다 조금은 빈틈이 있길 기대했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스르륵 문이 열리는데 객차 안의 승객과 눈이 마주쳤다.
‘아아, 그냥 다음 열차를 타 주시면 안 될까요?’
난 사팔뜨기인 척 눈을 내리깔았다. 이게 실수였다. 승차장 바닥이 시야에 들어오자, 방바닥에 떨어졌던 딸기잼이 다시 떠올랐다. 그냥 몇 분 지각해서 민망함을 감수할 것이냐, 딸기잼의 운명을 받아들일 것이냐 결심해야 한다.
인간은 고귀한 존재라고 여겨왔던 나의 패착이다. 딸기잼보다는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옆으로 비켜서고 만다. 그렇게 난 잠시 여유로운 관찰자로 돌아와 열차를 배웅할 준비를 마쳤다.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출입문에서 물러서 주십시오.”
그윽하고 평온한 안내 멘트가 울려 퍼진다. 그때! 객차 안에서 팔 한 짝이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자유형 스토르크다. 다시 보니 양팔을 휘저으며 한 여성이 소리치고 있었다.
“저 여기서 내려야 한다니까요!”
힘껏 팔을 내밀어 보지만 역부족인 듯 꼬르륵꼬르륵 가라앉기 시작한다. 물길을 터줘야 하는 승객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돌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십 명의 사람이 돌부처가 되어 묵언 수행을 시작한다. 인간들이 한꺼번에 저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니...
저들의 표정을 보건대, 분명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세계에 몰두해 있다. 이 시대의 데미안들이다.
출입문이 닫히고 팔을 휘젓던 딸기잼은 결국 끔찍하게도 익사해 버렸다. 열차는 그렇게 침묵과 딸기잼을 버무린 샌드위치가 되어 저세상으로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