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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Aug 17. 2024

인생에는 적절한 충동과 산만함이 필요해요.

(마지막 연재)

고전 소설에도 ADHD가 강하게 의심되는 주인공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던 책이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주인공인 조르바의 명언을 잠시 감상하겠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글우글 한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 확 부숴 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조르바는 자유 빼면 시체인 인물로서 거칠면서도 충동적이었다. 결혼을 했으면서도 충동적으로 또 결혼을 하고, 기타 비스름한 악기를 연주하는데 손가락 하나가 방해가 되자 손가락 하나를 잘랐으며


남의 사업에 끼어들어 사업이 망하는데 일조를 해놓고도 사업이 부도나자 술과 맛있는 것을 먹고 해변에서 춤을 추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의 조르바는 충동성에 개인적인 성향(노빠꾸, 무책임)이 더해진 것이라고 본다.


이 책은 너무 몰입해서 읽으면 혈압조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눈을 반쯤 뜬 채 뇌 주름을 살짝 펴놓은 상태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개저씨'라는 말이 환청처럼 들리면 중간중간 고개를 저어야 한다.


나는 내가 조르바와 결혼하지 않은 것에 안도했지만 조르바는 산만하고 충동적인 이유로 장점도 많았다. 일단 조르바 자신은 행복했을 것 같고 조르바는 사람을 평등하게 대했다. 불의라고 생각하면 용기 있게 나서는 진정성 있는 남자이기도 했다.


그 외 많은 문학과 동화에서도 충동적인 주인공들이 나온다.


'흥부와 놀부'에서는 놀부가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고 각종 충동적인 행위를 하는데, 이것은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오로지  ADHD 특성이라고 볼 수 없다.


'제크와 콩나무'에서 제크는 수차례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거인의 집에서 금은보화를 훔쳐서 들고 나오다가 결국 거인에게 걸리자 콩나무를 잘라서 거인을 살해하였다.

이것은 제크의 충동성이나 모험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촉법소년의 주거침입과 상습절도, 특수재물손괴, 거인살해 등의 범죄행위로써 반사회적인 성향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겠다.


ADHD인들은 '진정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순수하고 솔직한 면이 있다. 이 때문에 사회성이 부족해 보이는 듯한 인상을 줄 수는 있겠지만, 이것은 한 사람으로서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방향만 잘못되지 않았다면 충동성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나는 충동적으로 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금전적으도 그렇지만 채소가게를 지나다가 감자 한 상자가 싸면 적은 돈으로도 많은 감자를 살 수 있고 무료급식소 같은 곳에서는 한 끼 반찬에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한 소소한 선행 몇 가지는 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충동적으로 그린 그림과 글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브런치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하고 나의 이미지를 생각하였다면 쓰지 못했을 글도 많지만, 나는 충동적으로 선택했던 것들 덕분에 내 삶이 더 좋은 경험으로 채워졌다고 생각한다.


충동적으로 결정해서 놀았던 기억과 충동적인 결정으로 올랐던 한라산 등반, 여행, 모임들이 이성적인 상태에서 지내는 날들을 살만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다가 떠오른 북한음식 인조고기밥과 농마국수를 점심에 먹기로 결정함으로써 내일이 되면 나는 북한음식 인조고기밥을 먹어본 여자가 될 것이다.


어떤 목적이나 큰 뜻이 없이 다소 충동적으로 결성했던 글터디 모임에서는 내가 쓴 책 포함 3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그중 정혜진 변호사님이 쓰신 책은 현재까지 8쇄를 찍었고,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드라마로 제작되었었다.


산만해야만 볼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이 있고

힘 빼고 느슨하게 보아야 생기는 통찰력도 있다.


연재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동안 매주 미루고 싶었지만 하필 제목을 '성실한' ADHD로 하는 바람에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한 주도 쉬지 않았다.


나의 두서없는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제발 두서없는 분들이 시기를 바라며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글들을 이제 마친다.


그리고 지금 이문장을 읽고 계신 분들에게 내 영혼을 담아서 바란다. 원하시는 일이 이루어지고, 평온하시고, 어려운 일은 해결되시고 행운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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