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란 Apr 08. 2024

아이의 학폭, 네덜란드 한인 입양인에게서 답을 찾다

"이곳에서 절대 폭력은 용납되지 않아"

이전 이야기 읽기 (네덜란드에서 맞고 온 우리 아들)


아이가 내게 맞고 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속이 많이 상했다. 당장 문제 해결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아들에게 계속해서 괴롭힘을 하면 한 번 맞서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나 맞서

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것은, 때린 그 아이도 고작 4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라는 것이다. 지나친 미움은 가질 필요가 없었다. 오직 생각한 것은 이런 일을 막는 것이다.


실내놀이터의 '화산'을 올라가는 김화란의 두 아들들


상황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은 공립학교 한 학년당 반이 몇 개씩 있다. 그러나 아들이 다니는 기독교 공립학교는 전교생이 120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학교이다. 한 반의 아이들이 8년 동안 별 일이 없으면 같이 생활하게 된다. 아이가 맞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구들과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작정 부모가 나서 진상을 부린다면, 폭력은 멈추어지겠지만 아이와 아이들 간의 관계, 아이와 교사의 관계, 부모와 부모와 교사의 관계, 부모의 관계 등은 최악으로 치달아 갈 것이다.


일단 학교 앱을 통해 교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갈고닦은 네덜란드어 실력을 총 동원하여 몇 번씩이나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대략 메시지의 콘셉트는


'아이가 이 일로 괴로워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지 방식을 존중하며 원만하게 해결되길 바란다는 것'


이었다. 이런 마음은 나의 진심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 아이에게 아주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배려해 준다. 한국에서 온 것을 짓궂게 장난으로 반응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한국에서 왔기에 더 따뜻하게 배려해 주려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진심이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되었다. 용기 내어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우리 아이가 지난주부터 C라는 아이에게 며칠간 지속적으로 맞아 왔습니다.

아이가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도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지난번과 다른 2학년의 아이 3명도 우리 아이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가 아직 네덜란드말이 서툴어 선생님께 전달이 쉽지 않습니다.

이 일이 지속적인 괴롭힘이 아니길 바랍니다만,

선생님께서 아이들이 밖에서 놀 때 잘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부활주일 주간 보내세요.


아이아빠 김화란 드림.


교사에게 답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네덜란드에서 소위 학교 폭력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조사를 해 봤다.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친절하게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홈페이지에서 설명을 해 두었다. 절차는 1) 학교 교사에게 이야기하기 2) 해결되지 않으면 학교의 내부 혹은 외부 감찰관에게 이야기하기 3) 해결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기 등의 수순이었다. 모든 학교는 학교 폭력을 대응하기 위한 방법인 프로토콜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에, 학교 내부 감찰관에게 이야기를 하면 조사와 함께 대응 프로토콜이 시작된다.


일단 마음은 든든해졌다. 외국인이지만 학교에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를 발견한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손에 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고생하고 있는 교사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우리 아이 때문에 교사가 곤란을 겪는 상황은 주고 싶지 않았다. 네덜란드 학부모 포럼등에서는 교사에게 이야기하는 것 이외에 의외로 한 번 강하게 맞서서 싸우길 독려하는 글들도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해 반론도 적지 않았다.


나는 최후의 카드로 이곳에서 영웅과 같이 살고 있는 한인 입양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이들은 입양의 트라우마, 40년 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인종차별과 맞서 삶을 지켜온 대단한 사람들이다(입양 이야기는 추후에 하도록 하겠다). 네덜란드에 와서 알게 된 한인 입양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3년 전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반의 학생으로 이들을 알게 되었고, 이들 중 몇 명은 같이 마음을 나누면서 도움도 주고받는 귀한 사이가 되었다.


그중 유럽 전역에 한국 라면 및 한국 식품을 수출하는 40세의 입양인 M의 사무실에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M 씨,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한국에서는 부모가 너무 자주 교사에게 연락을 하면 교사가 많이 힘들어하거든요"


"화란, 네덜란드와 한국은 많이 달라. 네덜란드 선생들도 힘이 들기는 하지만, 부모와의 대화에는 아주 열려 있어"


"그래요?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로 이야기를 했는데요?"


"여기에선,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더 이상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 그래서 한 달 간격이든, 두 달 간격이든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는 문제 제기를 해주어야 해"


"아... 한국과는 많이 다르군요"


"그렇지, 특별히 아이가 밖에서 놀 때는 교사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부모가 이야기해 주는 것도 중요해"


"아이들이 이곳에서 서로 치고받고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이를 워낙 강하게 키우려 하다 보니"


"그렇지 않아. 학교에서의 폭력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단다. 부모가 문제를 제기하면 학교는 아주 심각하게 이를 받아들이게 되어 있어"


이 이야기를 듣고 나의 마음은 큰 안도를 하게 되었다.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문화를 알게 된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인들은 생각 외로 그리 친절하지 않는데, 반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보다는 그리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교사에게 문제를 이야기해도, 교사가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만큼 심리적인 압박감을 안은채 문제를 대하지 않는다. 감정보다는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한 것이 네덜란드라는 나라의 문화다.


이곳에서 한국인들과 많은 교류는 없지만, 한인 커뮤니티에 보면 가끔씩 인종차별 관련 문제와 학폭 이슈가 떠오른다. 해결책을 차분히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노와 절망 그리고 우울 섞인 공감을 하는 '한국식 설루션'이 댓글로 달리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런 식의 공감도 필요하지만, 이곳에서 문제도 해결하고 관계도 망치지 않는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더치들은 다 그래', '얘네들은 어차피 백인 우월주의자들이야', '노예무역을 괜히 했겠어' 등의 고전적인 반응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다행히 나에게는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는 한인 입양인들이 곁에 든든히 서있다. 누구보다 어려운 시절을 겪은 이분들은 초보 아빠를 귀엽게 생각하며 "같은 한국 사람이잖아요"라며 도움을 주려 한다.


아이의 교사는 답을 보내왔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네덜란드에서 맞고 온 우리 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