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마음
발두르의 불은 뜨겁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고 안정적이었다. 머무르기 좋은 온도였다.
그런데 그 온도는 사람을 앞으로 보내지 못했다. 눕히는 온도였기 때문이다.
증기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알게 됐다. 평화라고 믿었던 상태가 사실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태를 오래 견디면 견딜수록 사람들은 결국 한 가지를 원한다.
대신 결정해 줄 누군가.
대신 책임져 줄 누군가.
그 시선이 힘찬에게 쏠리기 시작하자, 발두르는 가장 먼저 감각으로 느꼈다. 불의 힘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게 해 달라"는 기도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이제 민심이 변하기 시작했군.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때였다. 힘찬이 발두르 앞에 섰다.
“드디어 민심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래도 당신이 평화를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발두르는 대답 대신, 아주 짧은 침묵을 택했다. 그런데 그 침묵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처럼 보였다.
마치 지금 여기서 내가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가를 판단하기 위한 정적.
그리고 돌발.
발두르가 남은 에너지를 모아 힘찬에게 달려들었다.
격분처럼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시선은 힘찬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크아앗!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존재했을 뿐이야"
힘찬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물로 불을 덮었다. 그러나 꺼뜨리지 않았다. 불을 꺼뜨리면 어떤 일이 생겨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힘찬은 불을 잠재웠다. 불은 타오르지 않는 상태로 고요히 눌렸다.
순간 발두르의 그림자가 흔들렸다. 형태가 무너졌다. 힘찬은 손에 들린 발두르의 그림자를 보며 낮게 말했다.
"이제 당신의 그림자가 돌아갈 곳은 여기뿐입니다."
그림자는 노곤의 꿈으로 끌려갔다. 깊고 고요한 곳, 다시 봉인되는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세상을 비추지 않았다.
그림자를 잃은 발두르는 다시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대가 나를 밀어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