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선택 피로가 퍼지는 방식
경계의 대치 이후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경계에서 생긴 증기는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었고 먼저 변한 건 잠이었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데 자고 나면 남는 게 있었다. 그것은 피로가 아니라 무기력이었다.
도시의 관료는 보고서를 펼쳐놓고 첫 장을 한 시간 넘게 바라보다 펜을 내려놓았다.
"내일 하지 뭐."
학교에서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했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해해서가 아니라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상점에서는 작은 짜증이 쌓여갔다. 줄이 조금 길어졌다는 이유로, 잔돈을 조금 늦게 꺼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한숨은 늘어갔고 눈빛이 예민해졌다.
"왜 이렇게 피곤하지?"
"아무 일도 없는데, 그래서 더 피곤해"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책임도 지지 않으니까"
세상은 멀쩡했지만, 아무도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임도 없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실패도 없다.
실패가 없으니 반성도 없었고 반성이 없으니 다음도 없었다.
증기는 '무난함'을 전염시켰다. 무난함이 사람을 가볍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무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무거움은 결국 한 방향으로 수렴됐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면 된다.
사람들은 대신 책임질 누군가를 원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저 사람... 저 사람은 왜 생기가 넘치지?"
"맞아, 저 사람 계속 서 있어!"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 힘찬이 있었다. 그는 쓰러지지 않고 물러서지 않으며 계속 일어나 있는 존재.
사람들은 그 존재를 '희망'이라 부르기보다, 더 현실적인 단어로 붙잡았다.
"우리는 계속 무기력하게 지낼 수 없어"
"저 사람에게 맡기자!"
"저 사람의 결정에 따르자!"
사람들은 힘찬에게 기대하기 시작했다. 증기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방향이 생겼다. 민심이 움직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변화가 발두르에게 닿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