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의 균열

38. 결정은 누군가의 얼굴을 요구한다.

by NaeilRnC

처음에는 불평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요즘 왜 이렇게 하루가 긴 느낌이죠?"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답답하죠?"


사람들은 웃으며 넘기려 했다. 피곤해서 그렇겠지. 기분탓이겠지.

그런데 같은 질문이 다른 입에서 반복되기 시작했다.

반복의 순간, 질문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징후가 된다.


회의도 달라졌다. 안건은 늘 같았지만, 결론이 바뀌었다. 이제 더이상 "조금 더 지켜보죠"는 통하지 않았다.

지켜보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르지 않는 듯한 감각이 사람들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괜찮지 않아."

"결정을 미루는게 불안해."

"그럼 누가 책임질건데요?"


질문은 단순했지만, 모두 침묵했다. 그 답에는 이름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이 불리는 순간, 누군가는 그 이름에 자기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걸어버린다.

며칠 뒤 사람들은 한명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경계에서 버틴 자.

쓰러지지 않은 자.

불을 눌러둔 자.


"힘찬이 결정하면 되지 않아?"

"저 사람은 계속 서 있었잖아."

"저 사람은 이곳 사람도 아니잖아."


기대가 책임으로, 그리고 명령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의 선택은 한가지였다.

힘찬은 그 변화를 가장 먼저 피부로 느꼈다. 사람들이 인사할 때 눈빛이 달라졌다.

환영도 부탁도 아니었다. 그저 '당신이 해라'라는 눈빛, 그리고 그 시선은 곧 '당신이 책임져라'로 변했다.

'아, 발두르의 말이 이걸 의미하는 것이었군'


그날 밤, 힘찬은 발두르를 찾았다. 노인이 된 마왕은 도시의 불빛을 보며 무너진 기둥 옆에 앉아 있었다.

힘찬이 다가오자 발두르는 말했다.

"사람들이 자네를 부르기 시작했군."


힘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해서가 아닙니다. 답답해서입니다."


발두르는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조롱이 아니라 이해였다. 그 이해가 힘찬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생각인가?"


힘찬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발두르는 눈이 아주 미세하게 밫닜다. 그의 계획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곤을 꺠울 생각인가?"


힘찬은 망설였다. 망설임이 길어지면 이 세계는 다시 ‘무난한 정지’로 미끄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망설임을 끊었다.

“예. 노곤을 깨우겠습니다.”


발두르는 말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히, 단 한 문장만 남겼다.

“그럼 잘 듣게. 이제부터 세상이 어떻게 되든, 그 선택은 자네 이름으로 남는다.”


힘찬은 고개를 들었다.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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