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오늘은 씁쓸해도 괜찮은 이유
맥주는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 아니라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낼 선택.
도수가 낮아 기대도 낮고
그래서 실망도 적지만
치킨 옆에 놓이면
죄책감이 덜어지고
피자 옆에 놓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간다.
기름진 음식과 곁들이는
오늘의 씁쓸함이
왜 그렇게 잘 어울렸는지
나는 굳이 이유를 알 수 없다.
맥주는
기쁨을 증폭시키지도
슬픔을 지워주지도
과하게 만들지도 않게
그저 오늘을 삼키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크게 축하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는
적당한 날에
내일보다 오늘을
이유보다 느낌을
후회보다 다짐을
맥주잔에 담아본다.
그래, 오늘은
많이 기쁘지도
많이 아프지도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