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의 기록

왠지 가기 싫었어

by NaeilRnC

배경 : 나는 연평도 포격사건의 최초제보자였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긴박함 속에서 현장을 사진을 전달했지만 나는 그때 언론과 방송의 실체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이 글은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깨닫게 된 언론의 본모습에 관한 이야기다.


□ 왠지 가기 싫었어

2010년 11월 22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어업자원실에서 근무하던 나는 다음날 연평도에서 최종보고를 진행해야 했지만 풍랑주의보로 인해 해군사령부가 여객선 출항을 전면 금지시켰다. 옹진군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최종보고를 무조건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우리는 마지못해 화물선을 타고 연평도에 들어가기로 했다.


인천항으로 향하면서 뭔가 불길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해군사령부의 출항 금지 조치가 해제되지 않은 그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인 경고처럼 느껴졌다. '아! 왠지 가기 싫은데'라는 불길한 육감은, 단순한 망설임이 아니라 재난 직전의 섬뜩한 예감처럼 내 몸을 휘감았다. 그렇게 우리는 그 불길함 속으로, 느린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 내 생애 첫 화물선

당시 백령도까지 가는 화물선이 연평도를 경유했기에, 저녁에 배를 탄다면 최종보고 당일인 23일 새벽에는 연평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화물선의 느린 속도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중간에 잠이 깨면 망망대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에, 일단 인천항에서 저녁을 든든히 먹고 무조건 오래 자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다.


그렇게 인천항에서 화물선을 타고 새벽 5시쯤 연평도에 도착했는데, 이 날따라 섬이 유난히 시끄러웠다. "해상훈련이 있으니 조업을 나가지 말라"는 방송이 섬 전체에 반복해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51124_222826163.jpg 당시 제보사진으로 받은 감사패(제보했던 사진은 잃어버렸다 ㅠㅠ)

□ 연평도 포격과 최초제보

최종보고를 마친 후 인천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하던 중 뒤편에서 마치 천둥이 땅을 때리는 듯한 '콰앙!'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건물 한 채에서 회색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고 불과 몇 초 뒤,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섬 초입에 서 있던 교회 건물이 파편과 함께 폭발하며 시야 가득 흙먼지와 잔해가 치솟았다. 그것은 '오발'이 아닌, 명백한 '공격'이었다.


사고다. 처음에는 오늘 해상훈련이 있을 것이라는 방송이 생각났고, 그다음에는 오발사고로 생각했었다. 선착장에서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일단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하자, 휴가 가려던 해병대원들에게 복귀명령이 떨어졌고, 그들이 섬으로 다시 돌아가며 선착장은 적막이 감돌았다. 저 멀리 보이는 배는 중간에 멈춰 있었다. 혹시 모르니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MBC 제보 번호로 "연평도 포격"이라는 문구와 함께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보냈다.


□ 미디어의 본모습

잠시 후, 그전까지 유서처럼 문자를 보냈던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가 빗발쳤고, 모든 방송사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군지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무작정 사진을 요구했다. 그 순간, 방송국들의 전화는 재난 보도의 사명감이 아닌, 시청률 경쟁의 첨병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안전하신가요?'보다 '사진 더 없어요?'를 외쳤다. 국민의 안전과 생존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고, 오직 자극적인 '특종 사진'만이 그들이 쟁취하려는 전리품 같았다. 그때, 내 가슴속에서 언론에 대한 깊은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내가 보낸 사진이 모든 매체에 걸리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사진이 벌써 올라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궁금함보다, 서로를 쳐다보며 간첩이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MBC제보 번호를 알려주었고, 각자 찍은 사진을 문자로 보내면 된다고 안내했다.


그날 이후 MBC에서 방송 출연 요청이 있었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 그들에게는 단지 시청률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며칠 후 받은 감사패는 지금도 집안 어딘가에 먼지가 쌓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연평도에서 깨달은 교훈은 선명하다.


재난 보도의 본질은 '자극'이 아닌 '안전'이어야 하며, 그들의 시청률이 누군가의 트라우마가 되는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 내가 보낸 몇 장의 사진이 뉴스가 되기 전, 그것은 생존을 희망하는 절박한 기록이었고 외침이었음을 이 경험담을 통해 기록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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