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된다
배경 : 얼마 전 무분별한 낚시로 인해 고통받는 어업인에 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취미이고,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걸린 낚시, 그 취미와 쾌락의 경계를 현명하게 구분할 수는 없을까? 오늘은 낚시와 쾌락, 그리고 공존에 관한 이야기이다.
□ 기다림의 미학
누군가는 낚시를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근심을 낚싯줄에 걸어두고, 조용히 물결을 바라보다가 언젠가 미끼를 물어 발버둥 치는 물고기의 손맛을 느낄 때, 그 긴 기다림이 보상받는 쾌감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도 낚시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한강과 왕숙천을 다니며 텐트에서 끓여 먹던 라면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또 휴일이면 아버지가 운전하던 모래 채취선 위에서 채취된 모래 틈에 섞여 올라온 조개를 구워 먹거나 직접 잡은 잉어로 매운탕을 끓여 먹기도 했다. 그때의 낚시는 즐거운 추억이었다.
하지만 최근 폭발적인 낚시 인구의 증가로 해양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0년 652만 명이던 한국의 낚시 인구는 TV 예능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인해 2024년 기준 1,00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낚시 인구의 증가는 관련 산업적 측면에서는 긍정적일지 모르지만, 해양 생태계와 어촌의 삶에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낚시꾼들로 인해 어촌에서는 다양한 갈등이 지속되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여전히 미온적이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많이 잡아야 재미있는 낚시
진정한 낚시인은 기다림의 가치를 잘 안다. 그러나 오늘날의 낚시꾼들은 손맛이나, 기다림보다 쾌락에 더 빠져있다. 비싼 장비를 갖추고 먼바다까지 나가는 꾼들에게 낚시는 이제 기다림이 아니라 투자 대비 수익을 위해 ‘뽕을 뽑을만큼 잡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한때 해양 관련 연구용역을 수행하며 낚시산업을 분석하던 시절, 나는 낚시의 본질이 ‘자연과의 교감’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지배의 쾌감’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꼈다. 낚시꾼들에게 낚시는 물고기와의 힘겨루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을 자신이 조정할 수 있다는 정복자의 쾌감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들은 일행끼리 누가 더 많이 잡는지, 누가 더 큰 놈을 낚는지 내기하며 경쟁한다. 그리고 그렇게 잡은 물고기들은 기념사진을 찍은 뒤 버러지거나 방치된다. 손맛을 위해 생명이 쉽게 사라지는 그 일련의 과정이 연쇄살인과 얼마나 다를까? 취미라는 가면을 쓴 욕망이 낚시라는 포장으로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고 그렇게 낚시를 끊었다.
□ 고기를 잡으며 사는 마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어촌(漁村)은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바닷가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들에게 수산생물은 취미가 아니라 생계의 근원이다. 한 마리의 고기와 한 번의 조업이 그들에게는 생존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여전히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크게 잡기 위해 경쟁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즐기는 수많은 어종들은 자연이 스스로 길러낸 것이 아니라 매년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방류한 치어들이라는 점이다. 즉,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노력과 세금으로 되살려진, 겨우 호흡기를 달고 있는 생태계를 취미라는 이름으로, 재미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무너뜨리고 있다. 무분별한 낚시는 어족자원을 고갈시키고 지속가능한 취미의 기반을 무너뜨린다. 결국 단순한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공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일이다. 기다림의 취미였던 낚시가 획득의 욕망으로 변하는 순간 자연과 공존의 질서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지방소멸과 인구감소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고기를 잡아야 살 수 있는 마을에 찾아가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며, 그들의 자산을 약탈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뭐, 얼마나 된다고”. 하지만, 생각을 바꿔야 한다. 내가 어릴 적 마을 잔치를 위해 돼지를 잡을 때 어른들은 먼저 따뜻한 물로 돼지를 정성껏 씻기고 희생에 감사하는 기도를 올렸다. 생명에 대한 예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 마음을 잃고 있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은 생명을 경시하고, 타인의 자산을 침해하며 취미라 부르는 쾌락을 즐기고 있다. 취미와 쾌락, 그 경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