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는 완벽한 Worker-holic였다.
배경 : 석사 시절, 리서치센터에서 필드 담당 조교로 일하던 나는 “까칠한 일 중독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까칠함은 조사 업무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일 중독자’라는 평가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내가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일에 나의 존재를 걸어버렸기 때문에 나를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 Work-holic과 Worker-holic
석사 시절, 나는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의 필드 담당 조교로 일하며 일과 공부를 동시에 해야 했다. KGSS는 여러 연구자가 활용하는 중요한 기초 데이터였기 때문에 설문결과에 대한 품질 검증은 매우 까다로웠다. 한 장 한 장 실사 검증을 거쳐야 했고, 가짜 설문지를 찾아낼수록 내 일은 끝없이 늘어났다.
나는 “일을 줄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모순 속에서 살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일을 끝낸 뒤에도 머릿속에서는 계속 설문조사가 떠돌았다. 당시의 나는 전형적인 Work-holic, 즉 ‘일에 의존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또 다른 유형의 사람이 있었다. 한 외부 연구자는 보통 한 달짜리 용역을 일주일 만에 끝냈다. 그는 일주일 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은 채 자신의 모든 시간을 결과물에 쏟아부었고, 그 결과물은 놀라울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나는 그의 몰입을 동경했고 한때 그를 롤모델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는 ‘일’ 자체가 아니라 일을 통한 ‘자기 증명’에 더 깊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즉, 그는 Work-holic이 아니라 Worker-holic, 일을 통해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사람이었다.
□ 일, 성과, 그리고 자존감의 뒤틀림
구리시 종합발전계획을 혼자 수행하던 시절, 나는 회사보다 시청에 출근하는 날이 더 많았다. 퇴근 후에는 인터뷰 정리와 정책 설계 작업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겉보기엔 편해 보인다며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 바빠졌다. 크리스마스에도 출근해 구리시장의 신년사를 작성했고, 다른 사업을 하던 팀이 중도 이탈하자 그 일을 내가 대신 마무리했다.
12월 31일 송년회가 끝난 뒤 새벽까지 사무실에 남아 신년사를 다듬던 그 밤도,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몸과 마음이 무너지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일이 아니라 ‘일하는 나’라는 역할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회사에서 성과를 내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내 자존감의 원천이었고, 일을 하지 않으면 무가치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 나는 완벽한 Worker-holic이었다.
□ dubito, ergo cogito, ergo sum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이 문장은 그 시절 나에게 깊은 질문으로 다가왔다. ‘나는 무엇을 의심했고, 무엇으로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을까?’
나는 이 일을 좋아했다. 내가 만든 정책이 지금도 구리시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고, 현장을 다니며 지역의 문제를 읽어내고 해결책을 만드는 과정은 여전히 즐겁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 위에 ‘책임감’이 덧씌워지면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책임감은 곧 강박이 되었고, 강박은 나를 더 몰아붙였다.
더 빨리, 더 완벽하게, 더 눈에 띄게 해야 한다는 압박은 결국 ‘일의 의미’와 ‘일하는 나의 존재’를 동시에 무너뜨렸다.
Work-holic이 일 자체에 중독된 사람이라면, Worker-holic은 일하는 역할에 중독된 사람이다. 전자는 과로로, 후자는 공허로 끝난다. 나는 그 두 극단을 모두 겪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결정을 내렸다. ‘일’과 ‘나’를 분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지금도 나는 일한다. 그러나 더 이상 일로 나를 증명하지 않는다. 성과가 아닌 과정으로, 속도가 아닌 방향으로 나를 바라본다. 일이 나의 전부였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 나는 일하는 인간이 아니라, 존재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으로 인해 멈춰 선 시간이 오히려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그 푸르름 속에서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