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의 날

기념과 정치 사이의 경계

by NaeilRnC

배경 : 10월 24일은 유엔의 날이었다. 유엔은 한국전쟁 당시 군대를 파견해 대한민국의 존립을 지켜준 국제기구이며, 한국 사회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한때 우리나라는 이 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해 공식적으로 기념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잊혔다. 그런데 최근 다시 유엔의 날이 재조명되기 시작하면서, 이 흐름이 단순한 기념의 복원이 아니라 더 큰 의도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글은 모종의 의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 유엔의 날 재지정 움직임

1950년, 전쟁의 폭격 속에서 유엔의 도움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나라는 국제연합 창설일인 10월 24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1991년 남북이 함께 유엔에 가입하면서 이 기념일은 사실상의 기능을 잃었고, 제도에서도 사라졌다. 즉, 역사적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된 기념일이다. 그런데 최근 다시 이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대한노인회가 있다. 이들은 40만 명의 서명부를 국회에 제출하며 유엔의 날 재지정을 요구했다. 표면적으로는 보훈과 외교적 의미가 내세워지지만, 나는 이 현상이 단순한 추모와 복원의 논의로만 읽히지 않는다. 기념일은 언제나 정치적 선택이며, 특정한 기억을 제도적으로 고정하는 작업이다. 유엔의 날이 다시 등장한 배경에는 보수 진영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역사 프레임을 재편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다고 판단된다.


□ 뉴라이트와 기억의 방향

1950년에 유엔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할 당시 정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자주적 주권의 시작이었다”는 논리를 강하게 강조했다. 이 논리는 오늘날 뉴라이트 진영이 주장하는 ‘건국절’ 개념과 정확히 동일한 뿌리를 갖는다. 뉴라이트는 대한민국의 출발점을 임시정부나 해방 직후가 아니라 1948년으로 본다. 그들은 1948년 정부 수립 → 유엔 승인 → 주권국가 탄생이라는 직선적 서사를 강조한다. 따라서 유엔의 날 재지정은 이 서사를 제도적으로 재확인하는 효과를 갖는다.


대한노인회는 오랫동안 보수적 정체성이 강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고, 그 구성원의 상당수는 보훈·안보·반공 담론에 익숙한 세대다. 이들의 움직임은 단순히 애국의 표현을 넘어선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한다고 나는 판단한다. 즉, 유엔의 날 재지정이라는 행동은 보수 진영의 역사 인식을 공고히 하고, 1948년 중심의 서사를 사회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 기념과 정치 사이의 얇은 경계

기념일은 과거를 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재를 설계하는 도구로 작동한다. 국가가 어떤 날을 기념할지 선택하는 순간, 그 사건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 정치적 메시지를 띠게 된다. 기억은 원래 복수적이고 다양하지만, 기념일은 그중 하나의 기억만을 ‘공식적인 기억’으로 고정한다. 이 과정에서 기억은 단순히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고 편집된다. 그래서 기념일 복원의 논의는 사실상 기억의 방향을 조정하려는 전략이 된다.


나는 이러한 흐름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기념은 아름답지만, 기념의 선택은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다. 기억은 감정에 기대어 쉽게 정치화되고, 정치화된 기억은 여론의 방향을 바꾸는 데 사용된다. 유엔의 날 논란 역시 이 과정에서 벗어나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억의 편집’이다

기억은 감정을 동원할 때 가장 쉽게 정치화된다. 보훈·감사·헌신 등의 키워드는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데 효과적이며, 그 감정은 때때로 역사적 사실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다. 그래서 특정 집단은 기념일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정렬하려 하고, 사회는 그 정렬된 기억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고방식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기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념이 어떤 의도에서 선택되었는지, 그리고 그 의도가 기억을 편집하려는 시도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태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억은 언제나 조작될 수 있고, 기념일은 그 조작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는 도구다. 그래서 나는 기념일 논의가 등장할 때마다 “이 기억을 누가 선택했는가”, “이 선택이 현재 누구에게 유리한가”, “이 기억이 국가의 역사관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역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기억을 둘러싼 집단 간의 조용한 힘겨루기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언제나 편집될 수 있고, 기념은 그 편집을 제도적으로 고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유엔의 날을 둘러싼 최근의 움직임을 추모나 감사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기억을 선택하려는 정치의 움직임으로 바라본다. 이는 불필요한 비판이 아니라, 기억정치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경계라고 느낀다.

이전 10화독도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