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열정을 지키는 건 냉정한 사회적 제도다.
배경 : 얼마 전 유명 빵집에서 일하던 20대 청년이 숨졌다. 사건의 구체적 경위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청년의 죽음을 둘러싼 담론이 보여주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열정적인 직원이었다”라는 말이 애도로 소비되는 순간, 개인의 헌신은 추상화되었고 매장에는 여전히 또래의 청년들이 줄 서기를 하고 있다. 이 글은 열정이 어떻게 사회적 구조 속에서 소모되는지에 대한 생각이다.
□ 열정으로 포장된 구조적 압박: 감정동원 체제
‘열정’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조직이 동원하는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은 오랫동안 ‘열정’이라는 단어를 동원하여 노동을 정당화하는 체제를 구축해 왔다.
열정 있는 직원, 헌신적인 구성원, 주인의식을 가진 인재라는 말은 개인의 감정 상태를 업무 수행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전략이었다. 문제가 된 빵집 역시 겉으로는 밝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가졌지만 일부 직원들의 서술을 보면 장시간 노동, 높은 체력 소모, 고객 중심의 감정노동이 구조적으로 분포해 있었다.
사측은 여러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스템의 문제는 ‘주 80시간’ 여부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개인에게 무엇이 요구되었는지, 그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구조가 존재했는지가 더 핵심이다. 이때 열정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조직이 감정을 활용하는 방식, 즉 감정동원 체제의 일부로 기능한다.
□ 자기 착취와 책임감: 역할몰입의 함정
나 역시 과거 유사한 구조 속에 있었다. 아파도 쉴 수 없었고, 휴일에도 스스로 출근하며 “이 정도는 해야 인정받는다”라는 신념을 당연하게 여겼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자기 착취(self-exploitation)라고 부른다. 타인이 강요하지 않아도 개인이 스스로 생산성을 내기 위해 자기 몸과 시간을 소비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책임감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개인을 통제하는 도구로 변한다.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는 책임감이 개인의 도덕적 가치처럼 보이지만 사실 책임감은 ‘조직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내면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가족 같은 회사”라는 한국적 기업 문화가 결합한다. 가족은 보호하는 관계이지만 기업이 사용하는 ‘가족’은 보호가 아니라 헌신을 요구하는 언어다. 가족이라면서 복지 대신 희생을 요구하고, 휴식 대신 충성심을 강조하고, 문제 제기를 ‘배신’으로 해석한다. 가족이 책임을 나누는 관계라면 기업이 직원의 어려움을 나누는 것이 맞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족이라는 말이 오히려 책임을 개인에게 더 강하게 전가하는 힘이 된다.
이번 청년의 죽음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성실함이 구조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열심히 일했다”는 문장이 추모가 아니라 구조의 결함을 흐리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열정이 식는 지점: 제도와 행정의 개입 필요성
노동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권력과 감정, 책임이 얽힌 사회적 관계다. 따라서 개인이 자기 한계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사회가 개입해야 한다. 특히 행정의 역할은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하고, 기업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감정노동 보호법의 적용 대상을 확장하고 브랜드 기반 서비스업 전반의 노동환경 실태를 주기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정신건강 상담과 회복 프로그램 역시 노조 조직률이 낮고, 내부 발언권이 취약한 청년 근로자에게 필수적이다.
또한 기업의 근로문화와 인력 작동 방식을 윤리경영 지표로 공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이직률, 평균 근속기간, 휴식제도 운영 여부, 감정소진 규모 등은 청년이 입사 전 일터의 실제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다.
열정은 개인의 자산이지만 그 열정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유지되려면 냉정한 사회가 그 사람의 감정과 시간을 보호해야 한다.
열정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 속에서 쉽게 동원되고 쉽게 소모되는 자원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원이 아니다. 열정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지켜져야 할 감정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한 것은 열정적인 청년이 아니라 청년의 열정을 지켜줄 수 있는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