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중독

온라인 쇼핑과 앱테크의 결합이 만든 새로운 중독

by NaeilRnC

배경 : 혼자 산다는 것은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채워 넣어야 하는 삶이다. 그래서 엥겔지수가 높아지고, 선택해야 할 일들은 점점 늘어난다. 어느 순간 나는 온라인 쇼핑이 그 선택을 조금 더 쉽게 해주는 도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편리함 속에 내가 놓치고 있던 감정과 욕망의 움직임이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글은 온라인 쇼핑과 앱테크가 만들어낸 ‘합리적 중독’에 관한 이야기다.


□ 요리의 기쁨은 사라지고, 클릭의 습관만 남는다

어렸을 때 나는 요리가 즐거웠다. 처음으로 옥수수빵을 만들어 먹었을 때,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국민학교 때 우연히 먹어본 떡꼬치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카레, 케첩, 고추장을 섞어가며 만든 소스가 떡꼬치뿐만 아니라 돈가스와 삼겹살에도 어울렸을 때 느꼈던 그 쾌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날 이후 요리는 단순히 먹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창조를 위한 일이 되었다.


과거의 요리가 능동적인 행위였다면 플랫폼을 통한 재료의 선택 과정은 점차 요리의 즐거움보다 편리함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혼자 살기 때문이라는 핑계도 있지만 온라인 쇼핑을 통해 나의 창조행위는 선택의 행위로 축소되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온라인 쇼핑은 나에게 기다림과 신뢰를 실험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내가 선택한 재료가 언제 도착할지를 기다리는 일이 설렘이 되었던 적도 있지만 가끔 신선도가 떨어진 재료를 받게 되면 역시 발품을 팔아야 했나 하는 자책이 밀려왔다.


□ 새벽 배송은 잠들지 않는 소비의 시작이다

2010년 쿠팡의 등장은 매우 놀라웠다. 아침에 주문한 재료가 저녁에 도착하는 일도 그랬지만, 더욱 값싸고 신선한 재료를 밤에 주문하고 아침에 받을 수 있다는 시스템이 놀라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벽 배송을 본격적으로 이용하면서 요리 횟수는 줄어들었고, 밀키트와 간편식이 넘쳐나면서 그 편리함이 조금씩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출근 전에 재료가 도착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배송이 늦어질수록 초조했다. 편리함이란 이름의 시스템이 내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트에서 직접 재료를 고르며 물가와 작황 등 세상에 대한 이해가 클릭 한 번으로 대체되면서 나는 점점 게으르고 무감각한 소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 합리적 중독

나는 앱테크를 한다. 처음에는 소소한 재미였지만 앱테크에 온라인 쇼핑이 결합되면서 나를 합리적으로 중독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필요해서 사는데 포인트까지 쌓이니까 라는 자기 합리화가 지속될수록 나의 통장은 말라갔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러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알면서도 포인트를 위해 소비를 지속하고 있을지 궁금해졌고, 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포인트를 쌓으면 금 1g을 받을 수 있는 앱에서 사람들은 포인트를 얻기 위해 수천만 원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금 1g을 인증하며 나는 남들보다 더 우월한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그 행위는 본질적으로 보상욕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설계에 따라 쾌감을 반복하려는 중독, 그것이 바로 행동중독(behavioral addiction)이다. 이 중독의 구조는 명확하다. 앱 알림(신호), 접속(루틴), 포인트적립(보상)이라는 습관 속에서 행동은 점점 자동화될 수밖에 없다. 조금만 더 하면 미션을 완성할 수 있고,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는 생각은 이성을 흐리게 만들고 포인트가 쌓일 때의 짧은 기쁨과 포인트가 소멸될 때의 허무함이 교차하면서 사람들은 다시 클릭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단 멈춤

이처럼 나를 잠식해 가는 중독을 극복하기 위해 최근 나는 다른 방식으로 온라인 쇼핑을 대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고 그다음 날에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결제하는 방식이다. 치킨을 먹고 싶었던 그날도 쿠팡에서 다양한 치킨을 담아두었지만, 결제하지 않았다. 대신 냉장고 속 남은 재료로 간단히 조리해 먹었다. 그렇게 장바구니에 담겼던 치킨이 결제가 된 것 3일 후였다. 그때 치킨을 받아오면서 느꼈던 행복은 포인트를 쌓을 수 있다는 기쁨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오늘도 나는 라면을 사기 위해 쿠팡에 접속했다. 하나의 제품을 구매하더라도 무료로 배송되는 이 라면을 담아놓고 정신을 차려보니 찬장에 다양한 라면 봉지들이 보였다. 나는 또 무의식 중에 라면을 구매했던 것이라 믿고 싶다. 그리고 이제 정말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일단 마트로, 세상 밖으로 나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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