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 붙인 전 마왕

21. 허리 아픈 아저씨와 오래된 그림자

by NaeilR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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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 마을 끝자락.

아침 햇살도 게으르게 내려앉는 그 집에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고야…” 하는 낮은 신음이 들렸다.

소리의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이 부르는 허리 아픈 아저씨. 늘 장작을 패다가 허리부터 붙들고 주저앉는, 그저 그런 평범한 노인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은 속일 수 없었다.


발두르 나이크람 7세. 한때 대륙 전체를 공포로 뒤덮었던 전(前) 마왕.

그림자 하나로 전쟁을 끝내고, 재앙을 선언하듯 하늘을 찢던 사나이.

지금은 허리를 붙들고 파스나 뜯고 있으니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발두르는 허리를 쓸어내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그만 좀 일어나라…” 하고 울부짖는 듯했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왕도 먹고살아야 한다. 문을 열자, 동네 아이 둘이 그의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마왕 아저씨! 오늘도 장작 패줘요!”

“마왕 아저씨! 어제 말린 생선 가져갔는데 불이 약해서 안 됐어요!”


발두르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예전 같으면 한 번의 한숨이 번개가 되어 산을 갈라 버렸겠지만,

지금은 불 한 번 피우는 것도 은근히 힘들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공포의 상징이 아니라… 그냥 동네 심부름꾼이 되어버렸군.

그의 눈은 천천히 먼 과거로 흐려졌다.


시즌1의 기억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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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서 용사 노곤을 압도하려 하던 그날. 무한한 어둠을 일으키며 세계를 삼키기 직전이었는데—

… 노곤이 하품을 했다. 정확히 세 번.

그리고 절벽은 그의 하품 바람에 밀려 완전히 무너졌다. 발두르는 절벽에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고,

마왕의 체면 따위는 자연 앞에서 필요가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내 허리!!! 내 존엄!!!”


추락이 끝났을 때 그는 돌틈에서 40분을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어야 했다.

부하들은 그 모습을 보고 서로 눈을 피했다.

“저건… 말하지 말자.”

“응. 그냥 비밀로 하자.”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노곤은… 자연재해다.


시즌2의 굴욕도 떠올랐다.

발두르는 제로그라이트를 적당히 협박하려 했다.

“나는 마왕이다! 두려워하라!”


그랬는데—

제로그라이트는 눈도 깜빡하지 않고 마왕의 뺨을 살짝 때렸다.

정말 살짝. 아이가 장난치듯. 그런데 그 한 번의 ‘툭’에 발두르는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흑… 흐윽…! 이게… 통증이…?!”

“울어요? 마왕님 우는 거예요?”

“안 울어! 안 우는데!!”


그러나 눈물은 이미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마왕의 자존심은 반쪽이 되었다. 그리고 허리 통증은 두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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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은 찜질방에서 주워온 듯한 낡은 의자에 앉아 그 모든 추억이 마치 염전 소금물처럼 짜디짠 현실과 섞이자 쓰게 웃었다.

“… 내가 언제 이렇게까지 초라해진 거지.”


그의 추락은 문자 그대로 ‘추락’이었다. 전성기 시절,

“나의 위엄을 세상에 보여주마!” 하며 번개처럼 말을 몰아 달렸다가 정작 그 말이 허세에 질려 멈춰 섰다.

발두르는 말에서 떨어져 굴렀고, 그 충격으로 자신의 그림자가 몸에서 빠져나갔다.

그림자는 잠시 그를 내려다보더니, 마치 오래된 동료가 등을 돌리듯 말했다.

“허세가 과하면 떠난다. 반성하고 돌아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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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라졌다. 그날 이후 발두르는 마왕의 힘도, 위엄도, 허리도 잃었다.

파스가 새로운 갑옷이 되었고, 장작 패는 것이 유일한 전투가 되었다.

사람들은 가끔 말했다.


“요즘 마왕님, 인간적이야.”

“허리 붙잡는 모습 너무 귀여워요.”


그 말들이 발두르에게는 칼보다 더 깊었다. 그는 장작 위에 걸터앉아 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래전 자신을 따라다니던 짙은 그림자 대신, 평범한 햇살이 그의 발밑을 적셨다.

“… 그림자만 돌아오면… 나도 다시…”


말끝이 흐른 순간, 그의 발밑에서 얇은 선처럼 드리운 그림자가 살짝 흔들렸다.

바람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인가. 발두르는 그 흔들림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허리가 당겨 다시 의자에 누워 중얼거렸다.

“오늘도 파스 두 장 붙여야겠구먼…”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 작은 흔들림이… 곧 새로운 재앙의 서막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바로 그때. 마을 어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왕님, 계십니까?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잠의 교주였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발두르의 평온한 일상은 오늘부로 끝나게 된다.



*이 글에 포함된 이미지는 AI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