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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빈슨 크루소 Apr 08. 2023

I들만 있는 학급의 담임이 되다(2)

아무도 반장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성적인 아이들이 많이 있는 반을 맡은 지 한 달이 지나고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제법 무난한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학기 초에 개별 상담을 통해 고등학교 입시와 전반적인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청소시간을 이용해 아이들과 친밀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내가 맡은 반에 꽤 자주 가보는 담임이라 다음 시간 수업이 비거나 점심시간에는 아이들을 자주 관찰하고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많이 살펴보러 가는 편이다. 




첫 일주일간은 조회, 종례, 수업을 하면 아이들이 대답도 없고 반응이 너무 없어 둘째 주가 되어서는 우리 반에 들어오시는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우리 반 수업 분위기가 어떤지 여쭤보았다. 역시나 국어와 영어, 사회 등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나야 하는 토론 혹은 발표 수업을 위주로 하는 선생님들이 마치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고 한결같이 학생들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잘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 반에 자거나 엎드리고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고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만 틀리거나 실수할까 봐 대답을 망설이는 학생들이 유독 많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고민한 후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내 아이를 가르칠 때 쓰는 비유를 들어 어느 날 아침 조회 시간에 아이들에게 찬찬히 이야기했다. 


"얘들아,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은 마치 재미있게 공놀이를 하는 것과 같단다. 내가 우리 반 성준이에게 공을 던졌어. 그 공을 받은 성준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반응)---"(3월 둘째 주에는 이 정도 질문에도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성준이는 나에게 공을 다시 던져야겠지? 어떻게 던지면 될까?"

"----(한참 후에 한 명이)---잘요.."

"대답해 줘서 고마워. 내가 잘 받을 수 있도록 잘 던져줘야겠지. 사람과의 대화도 이것과 비슷하단다. 누군가가 너희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면 그 대화를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적절한 대답을 하는 것이 참 중요하단다. 수업도 그것과 아주 비슷해. 선생님들이 너희들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적절한 반응을 보여줘야 선생님들도 너희와의 대화를 통해서 수업의 방향을 설정하고 너희도 더 깊은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반 학생들 중에서는 수업시간에 대답을 하다가 틀릴까 봐 걱정하는 친구들이 특히 더 많으니 대답이 틀렸다고 상대방을 비웃고 비꼬는 반응은 절대 하지 않도록 하자.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누구라도 편안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없단다. "


대충 이런 다소 진지한 이야기를 조회시간에 했고 아이들은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 반 아이들도 100프로 내성적인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몇몇 외향적인 아이들이 나의 부탁에 호응하듯 수업시간에는 농담도 하고 틀린 대답이지만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며 그 후로는 점점 학기 초의 어색한 분위기가 풀어져가는 듯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반장 선거였는데 반장 선거가 이틀 남았는데도 반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솔직히 이런 적은 없었다. 한번 해 보고 싶거나 혹은 학교활동 점수 때문이라도 반장 선거에는 5-6명은 출전을 희망하는데 지난 주만 해도 느긋하게 기다렸는데 내일모레가 반장 선거인데 아무도 반장 선거에 나오려는 아이가 없으니 마음속으로는 걱정이 무척 되었다. 좋은 반장을 뽑는 것은 담임으로서는 정말 중요한 일이고 학급 운영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에 반장을 할 만한 아이들을 만나 한 명씩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내가 가장 첫 번째로 반장으로 꼽은 아이는 연준이라는 아이였는데 1학년 때부터 지켜본 바 무척 너그럽고 마음이 따뜻해 반의 모든 아이들과 사이가 좋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학교 생활이 모범적이어서 마음속으로 반장 후보로 생각하고 있는 아이였다. "연준아. 반장 안 나올 거니?" 하고 슬쩍 물어봤더니 "아.. 전 부반장을 하고 싶어서요... 반장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또 한 명의 반장후보로 생각하고 있던 현수에게도 슬쩍 "현수야, 혹시 반장 안 나올 거니?" 하고 물었더니 "연준이가 반장 나가면 제가 부반장 하고 싶어서요.. "라고 하는 게 아닌가. 현수는 항상 웃는 얼굴로 학교생활을 완벽하게 하는 아이였는데 교복에 주름하나 없이 단정하게 입고 1분도 지각을 하지 않는 모범생 중에 모범생이었다. 


포섭에 성공한 나는 두 학생을 따로 불러 "너희 둘이 팀으로 반장 선거에 나오면 어떠니? 아무도 반장 부반장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데 너희 둘이 팀으로 출전을 해서 한 명은 반장을 하고 부반장을 하면 좋을 것 같아. 너희 둘은 서로 친하니 서로 의지하면서 반장 부반장을 하면 의견을 교환하기도 용이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네." 

고맙게도 현수와 연준이가 반장 부반장으로 팀으로 선거에 출전하기로 했다. 

놀라운 일은 그날 오후에 또 일어났는데 종례시간에 현수와 연준이가 팀으로 반장선거에 나오기로 했다고  이야기했더니 반장 선거에 나오고 싶었던 아이 두 명이 자기들도 팀으로 출전 의사를 밝혔다. 


그다음 날 반장 소견 발표를 각자하고 

현수. 연준이 팀 vs 은준이. 지훈이 팀의 반장선거가 있었고 근소한 차로 현수, 연준이 팀이 당선이 되어 연준이가 반장을 맡고 현수가 부반장을 맡기로 결정을 하였다. 

우리 반 아이들은 소심쟁이들의 집합체인 우리 반의 반장. 부반장을 맡아주어 진심으로 고마움을 담아 박수를 쳤고 지금까지도 서로 잘 도와가며 학급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것 같다. 




담임 학급 아이들과의 관계는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아직 아이의 알지 못하는 면이 있을 수 있고 25명의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있다는 것은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교실에 함께 앉아 있다는 생각으로 항상 지도를 해야 하기에 나의 작은 말, 행동들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한 달간 아이들과 지내보았는데 학기 초에 흔히 있는 주먹다짐도 없었고 유리창을 깨거나 말다툼도 한 번 없었으며 학기초면 으레 밤에 걸려오는 흥분한 학부모님의 전화도 없었다. 내성적인 아이들의 담임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들의 이 조용함이 이제는 살짝 다정함으로까지 느껴지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어제 5,6교시는 학교 학예 행사로 기존 수업 대신해서 글짓기, 미술 등을 하는 학예 행사가 있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행사에 잘 참여하는지 궁금해서 우리 반 행사 지도를 들어가시는 선생님께 부탁드려 내가 일부러 우리 반에 들어갔다. "얘들아. 종례도 좀 빨리할 겸 내가 국어 선생님 대신 들어왔어" 하고 살짝 교실로 들어섰더니 아이들이 내 얼굴을 보더니 좋아라고 박수를 5초는 쳐대서 내가 얼굴이 빨개질 뻔했다. 원래 들어가시기로 했던 국어 선생님이 엄하셔서 그랬을 수도 있고 담임이 들어와서 금요일 6교시를 조금이라도 빨리 마칠 수 있는 계산 때문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 한 달간 독백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잔소리 같은 조회와 종례를 아이들이 잘 듣고 있었구나 라는 안도감, 대답은 없지만 아이들과 공감대를 잘 형성해가고 있다는 바램같았던 생각이 나만의 일방적인 느낌은 아니었다는 확신이 밀려왔다. 


4월의 첫 주가 그렇게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조용하고 무난한, 그리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들 덕분에 나의 주말도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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