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딸에 대하여

by B급 인생

아마 김탁환의 산문집 <아비 그리울 때 보라>에 나오는 조선시대 어느 일화였을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빌려다 몇 날 며칠을 필사해서 두고두고 보았다고 한다.

어느 선비댁의 애지중지하던 막내딸이 시집을 갔는데,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친정에 와서 읽고 싶던 책을 필사를 하다가 돌아갈 날까지 다 못하고 못내 아쉬워하면서 그냥 갔다고 한다.

그 딸을 지켜보았던 아버지가 너무나 안타까워 온 집안 식구와 하인들을 불러 모아 그 책을 함께 필사했더란다.

그러고 나서 제일 마지막 쪽에 "아비 그리울 때 보라"라는 글을 적어 하인 편에 보냈다는 것이다.


대놓고 아들을 선호했던 시대였지만 아버지와 딸 사이의 사랑도 이처럼 애틋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부모와 나누는 혈육의 정이란 아들과 딸이 다르지 않다.


나는 딸 둘을 둔 딸딸이 아빠다.

요즘은 결혼식장에 가면 신부 아빠가 울먹이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어쩌면 나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읽었을 무렵 두 딸이 결혼을 한다면 내 심정을 어떨까 헤아려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한 때는 딸들이 혼기가 차도록 제 짝을 못 찾더라도 아빠와 오래 함께 살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마음도 들었다.

그때만 해도 딸들의 결혼은 요원한 일이었고 내 눈에 딸들이 여전히 어리광만 부리는 철부지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몇 해 전부터 전 직장 퇴직자 소식란에 내 연배들의 경조사 알림이 부쩍 늘었다.

경조사 중에서 어르신들의 부고보다 자녀 결혼 소식이 더 마음을 흔든다.

부모님이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늘 마음을 졸이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사람의 수명이야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90세 넘기시고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들 하니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과년한 두 딸이 있는 아빠로서 주변의 자녀 결혼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심란해진다.

사실 큰 딸은 과년이 지났다고 할 수 있다.

요즘이야 굳이 결혼 적령기를 따지지는 않지만, 주변의 큰 딸 또래는 기혼자가 더 많으니 부모의 심정으로 늦은 것만 같아 조바심이 생긴다.

젊은 세대에게는 결혼이 선택이라고 하는 시대라도, 내 기준에는 여전히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는 게 보편적인 삶의 모습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혼은 당사자가 결정할 문제라며 짐짓 열린 아빠처럼 속 편히 생각하기도 했으나, 점차 딸들도 적지 않은 나이가 되고 청춘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부모로서 덩달아 모른 채 있기가 힘들어졌다.

본인들이 심정을 터놓은 적 없어서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되었을지 몰라 부모 입장에서가 먼저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남의 일이라면 몰라도 내 딸만큼은 건실한 배필을 만나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마음이 해가 갈수록 간절해진다.




혼기가 차기 전까지는 마냥 어리고 이뻐 보여 언제까지나 곁에 두고 싶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보다, 한평생 부모 슬하에서 살아도 별로 문제없을 거라 단정했다.

나는 딸들의 평생을 책임져줄 수 있을 정도의 사랑과 경제력 정도는 유지할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도 이제 중년을 지나 초로의 문턱에 다다르니,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자식을 부양하기보다는 거꾸로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근심이 커진다.

딸들은 고사하고 우리 부부 스스로도 일상을 지탱해 나가기가 쉽지 않은 노후가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기 전에 자식들은 하루빨리 듬직한 제 짝을 찾아 우리 품을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불어나고 있다.


언제부턴가 젊은 여성들이 겪는 온갖 험악한 일들을 접할 때도 딸들의 일인 양 가슴이 졸아든다.

세상살이 아들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놓이지 않을 텐데, 딸 둘을 가진 아빠로서는 정체 모를 불안에 마음을 도무지 내려놓을 수가 없다.

예전 직장 선배 한 분은 딸의 혼사를 치르고 나서야 마음이 그나마 가벼워지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부모 대신 믿을만한 누군가가 보살펴 주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부모입장에서 얼마나 든든할까.

그래서인지 요즘은 주변 지인의 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축하하는 마음보다 부러우면서 착잡한 심정이 앞선다.




자식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해 주어야 할 이유가 되지만,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길을 걷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안타깝기만 하다.

성장기에 부모로서 역할이 어딘가 잘못되었었나 뒤돌아 보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때론 여느 부모들처럼 치맛바람 날리며 별나게 학업과 취업에 관여했더라면 달라졌을까 후회도 든다.

심지어 우리 부부가 시원찮아 어느 능력자 부모처럼 엄마아빠 찬스도 만들어 주지 못했나 자책을 해본 적도 더러 있다.


제 용돈 벌이는 하고 있지만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하니 맞벌이가 결혼의 필수 조건인 요즘 세태에 제 짝 찾기가 더 어렵지 싶기도 하다.

나이가 웬만한데도 아직 번듯한 직장이 없으면 결혼을 전제로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저 깊은 곳에 마음은 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결혼은 자신의 인생에서 남의 일인 양 인식이 굳어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여 결혼을 아예 포기했을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부모 된 입장에서 넌지시 속마음을 타진해 보고 싶어도 혹여 상처라도 받을까 저어 된다.




큰딸이 30대 중반이 되도록 따로 독립해 살 거라고는 깊이 상상해보지도 않았다.

했다 하더라도 아주 먼 미래의 일로 여겼다.

가끔 딸들의 나이가 어느새 결혼 적령기가 지나고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아침저녁으로 세수할 때마다 보는 내 얼굴로 얼마나 늙었는지 가늠할 수 없듯이, 매일 딸들의 얼굴을 보면서도 아직도 앳되기만 하다고 여겼다.

제 엄마를 통해 들리는 말에 따르면 어느새 친구들은 대다수 결혼을 했거나 그럴 계획이라고 한다.


옛날 같으면 여기저기 혼처를 수소문하기도 하고 중매자리를 알아보기도 했겠지만 시절이 시절이니 그런 행태가 외려 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 눈에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거니와 부모의 눈이 어디 요즘 젊은이들 취향과 맞기나 하겠는가.

번듯한 직장이라도 다닌다면 그 무리들 속에서 호감 가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높겠는데, 갈수록 만나는 친구도 줄어드는 듯하니 내 나이가 들어갈수록 날숨이 길어진다.


다행히 이제 다 컸구나 싶을 만큼 대견스러운 언행도 하고 어떨 땐 엄마아빠보다 낫구나 싶을 때도 많다.

제 딴에는 잘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보기엔 씩씩하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아빠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늘 안쓰럽고 마냥 어설퍼 보이는 건 부모의 마음이라서 그런 것일까.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걱정은 여전하다.


그러니 엄마아빠만큼은 아니더라도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는 배필을 만나 이런 걱정을 좀 덜어 주었으면 싶다.


"아빠 그리울 때 보라"고 맨 뒤쪽에 적어 놓을 책 한 권 골라 놓을테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행의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