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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금에 대한 속마음

by B급 인생

오랜만에 만난 고교 동창생으로부터 아들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았다.

축하의 말과 함께 그동안 키우느라 고생 많았노라 덕담이 오갔다.

우리가 벌써 이럴 나이가 됐다며 속절없는 세월의 야속함도 함께 나누었다.


그 와중에 내 마음속에는 슬며시 걱정과 갈등도 시작됐다.

머릿속은 계산을 하느라 복잡하게 돌아갔다.

축의금을 얼마나 내야 할까?

청첩장을 펼쳐보니 일반예식장이 아니었다.

이름난 특급호텔은 아니지만 꽤나 고급진 호텔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밥값이 얼추 10만 원은 넘을 듯했다.

축의금도 당연히 최소 10만 원은 해야 면이 서겠는데, 딱 10만 원만 하기엔 좀 서운하지 않을까 싶었다.

부담스럽지만 20만 원은 해야겠지?

15만 원을 하는 경우는 못 들어 봤으니.




신랑의 아버지는 나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다니며 오랫동안 교유하던 관계다.

그의 부인은 아내와 입사동기로 일찍 퇴사를 했으나 이후로도 가끔 만나며 남편들보다 가깝게 지내는 사이다.

부인끼리 주고받는 정보를 통해 나도 그 친구의 근황을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을 정도다.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사이이고 돈독할 수밖에 없는 인연이다.

저녁에 아내가 그쪽 부인으로부터 청첩장을 받았다며 먼저 말을 꺼냈다.


"ㅇㅇ씨 아들 결혼한다던데 갈 거지?"

"나도 얘기 들었는데 당연히 가야지."

"우리 축의금은 각자 따로 해야지? 난 20만 원은 해야 될 거 같아. 그동안 부인이 나한테 밥도 많이 사고, 일 있을 때마다 잘 챙겨 주던데, 그 정도는 해야 될 거 같아. 예식장도 비싼 곳이던데..."

"호텔에서 하니 나도 그 정도는 해야 밥값은 되겠지?"

"....."


아내도 속으로는 부담되는 듯했다.

혼자라면 몰라도 부부가 각자 그 정도 한다는 게 우리 형편에 가당 키나 한가 싶었던 모양이었다.

한참을 궁리하는 듯싶더니 마침내 좋은 방도라는 되는 양 말했다.


"그냥 봉투 하나에 우리 둘 이름 같이 쓰고 30만 원 하자"


각자 받은 청첩장을 두고 우리 부부가 고민 아닌 고민을 했던 건 우리 사정도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지인의 경조사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망설이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정년퇴직하고 나서부터였다.

물론 경제적으로 풍족하다면야 뭔 고민이 있겠는가.


재취업을 했지만 확연히 줄어든 봉급 앞에서 갈수록 작아지는 느낌이다.

형편이 되는 대로 성의를 보이면 되지 않을까도 싶지만, 나와 친분이 깊거나 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상대라면 참 난처하다.

특히 우리 부부가 함께 연을 맺고 있는 경우엔 참 어렵다.

정년퇴직 전엔 각자가 알아서 적당한 선에서 따로 했는데, 두 사람의 봉급을 합쳐도 예전 한 사람의 몫보다 적어지니 현실적인 갈등이 앞선다.




지난날 부조는 한 가정에서 대사를 치르기에는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들었기에 공동체의 이웃끼리 일이 생길 때마다 물품이나 노동을 서로 제공하던 미풍양속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마을의 어느 집에 큰일이 생기면 일을 거들어 주거나 필요한 물품으로 서로 도와주곤 했다.

형편이 되는 대로 시간이 나는 대로 도와줄 수 있을 만큼만 도와주었다.

언제부턴가 점차 현금으로 부조가 대체되더니 지금은 다른 방식은 상상이 안될 정도로 고착화되었다.

아마 사회생활이 복잡해지면서 따로 도와줄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필요한 물품도 쉽게 구입할 수 있으니 현금으로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변화 때문일 것이다.


이제 부조금의 많고 적음이 마음씀의 크기를 표현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 서글퍼질 뿐이다.

부조금의 액수가 나와 받는 사람과의 친밀도나 영향력을 가늠하는 점수가 되곤 한다.

정확히 말하면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을 생각하는 심리적 거리나 영향력의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주변 지인들의 사정을 보면 보통 부조금은 경우에 따라 5만 원, 10만 원, 20만 원 정도로 구분하여 전한다고 들었다.


나만하더라도 퇴직 전엔 그냥저냥 아는 사이로 안 하면 서운할 듯한 사람에겐 5만 원, 접촉이 잦고 가깝다고 느끼는 친구나 지인에겐 10만 원, 절친이나 가까운 집안사람이면 20만 원으로 기준을 잡았다.

하지만 이 기준은 순전히 내 입장에서 정한 잣대였다.

혹시라도 상대가 내게 느끼는 친밀도나 거리의 기준에 어긋날 경우엔 서운할 수도 있고 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준이 정년퇴직을 하고 소득이 줄어드니 많이 흔들린다.

퇴직 후엔 직장에서 접촉하던 사람과 관계가 점점 소원해지니 웬만한 사람의 일에는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한다.

퇴직을 하고 나서 먹튀가 되는 사람도 많더라며 역정을 내는 사람을 떠올리면 뜨끔하다.

하지만 막상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접촉이 점점 사라지면서 경조사에 대한 관심도 희미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 퇴직자 소식란에 보면 가족행사로 한다는 경조사 알림이 늘었다.

유심히 살펴보면 맨 아래 "마음 전할 분을 위해" 계좌번호를 적어놓았다.

말하자면 오지 않아도 좋으니 부조금은 전해 달라는 속마음의 표시다.


어찌 보면 서로에게 합리적인 태도다.

주최 측은 겉모습보다 내실 있게 가족들만의 행사로 하니 손님 접대가 줄어들어 간소하게 치를 수 있어 부담이 적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행사비용을 최소화하는 대신 남는 비용을 다른데 유용하게 쓸 수도 있으니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반대로 체면상으로나 도리상 참석해야 하지만 거리가 멀다거나 부조금 내기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핑곗거리를 주최 측이 제공해 주는 효과가 있다.

장례식장이 먼 곳이라면 부조금 외에 이런저런 경비를 고려할 때 생각보다 금전상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고가의 호텔에서 치르는 결혼식도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최소한 밥값 정도는 축의금으로 내야 하기에 차라리 참석하지 않고 축의금만 보내는 것이 양측 모두의 부담을 줄여준다.


물론 상부상조의 의미로 서로 간에 마음의 표시만 해도 될 텐데 너무 금전적인 면만 부각하는 거 아니냐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경조사는 참석자가 많아야 분위기가 썰렁하지 않고 기쁨과 슬픔을 많은 사람이 나눠 가질 수 있다는 반론을 들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사정을 외면하고 체면상으로만 무리하게 처신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부모님의 부고, 자녀의 혼사 등 주변 지인의 경조사를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게 되는데 모두 다 감당하기엔 무리가 아닐까?


해서 가족행사로 치르면서 '마음 전할 분'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주최 측의 배려가 반갑기도 하다.

최소한 나중에 마주치면 얼굴 보기가 민망하지 않을 구실을 먼저 제공해 주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다.




하지만 내 경조사라면 어떨까 싶다.

어느 날 아내에게 우리도 경조사가 생기면 아주 가까운 친인척에게만 알리고 가족행사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조금 몇 푼 챙기려고 막무가내로 여기저기 알리는 게 너무 구차한 듯하다고 했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통보하는 게 너무 뻔뻔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싶다고도 했다.

꼭 왔으면 하는 사람이 안 오면 서운할 테고, 가깝다고 여긴 사람으로부터 축의금이 적네 많네 할 필요가 없으니 좋지 않냐는 취지였다.

체면치레로 들러는 손님을 맞이하는 노고와 그에 따른 경비를 생각하면 오히려 간소하게 치르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는 나의 계산이다.


이에 대한 아내의 반박은 이렇다.

가까운 집안사람이나 절친의 경우는 어떠한 경우라도 알리는 것이 예의 있는 태도이고 도리다.

게다가 올 사람은 어떤 상황이라도 올 테고 안 올 사람이라면 바로 옆이라도 안 올 테니 선택은 그들의 몫으로 남겨야지 우리가 예단하지 말아야 한다.

오느니 못 오느니, 부조금이 많으니 적으니 그런 것 염두에 두지 말고 우리의 집안일에 우리가 차려야 할 예의와 도리만 다하면 된다.

올 사람 안 올 사람, 부조금을 낼 사람 안 낼 사람 미리 머릿속에 두고 집안일을 치를 수는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가만히 새겨보니 지당한 말씀이다.




우린 아직도 과년한 두 딸이 남아있다.

친가 부모님과 처가 장모님까지 세 어른도 아직 건재하신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굵직한 집안일이 많이 남았는데 우리 부부는 늙어만 가고 있다.


언젠가 아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 경조사가 생기면 그동안 남한테 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얼마간이라도 건지려면 여기저기 널리 알리는 게 좋겠지 하고 슬쩍 본심을 드러냈다.

그땐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식의 논리다.


늙어가는 얼굴을 서로 쳐다보며 껄껄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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