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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인생 Jul 13. 2022

취미와 직업

대금을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다되어간다.


이제 같이 배우던 사람들은 다 그만두고 나만 남아 매주 한 시간 수업을 받는다.  

나는 언제 다른 사람들처럼 소리도 제대로 내고 <아리랑>을 구성지게 불 수 있으려나 했는데 어느덧 대중가요의 연주는 물론이고 <춤산조>나 <대금산조> 같은 대금 고유의 곡을 완강한 상태다.

아직은 어디 가서 대금을 분다 감히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대금 부는 맛을 아련히 헤아리는 정도는 되었다.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진도가 상당히 빠른 축에 든다고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의도치 않은 사회환경도 한 몫했다.

1년 정도 다니면서 간단한 곡악보를 보며 떠듬떠듬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코로나가 급속도로 유행하였다.

문화센터에서 거의 1년간은 모든 강좌가 중지되었다.

특히 호흡을 이용하는 관악기 강좌는 거의 폐강할 분위기였다.

나는 중도에 그만두면 영영 대금과 멀어질 듯하여 어렵사리 인터넷 강좌를 찾아 독학할 수밖에 없었다.

소리와 실습이 중요한 악기 다루기를 영상강의만으로 배우기엔 미흡했지만 그나마 대금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방편이었다.

제대로 된 연주 요령은 배우지 못했지만, 이때 꾸준히 소리 내기를 시도한 덕에 나중에 제대로 연주를 배울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듬해 문화센터 강의가 재개되었을 때 관악기 강좌는 1인 수업으로 바뀌었는데,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이자 행운이었다.

다양한 수준의 여러 수강생이 참석하던 이전의 수업방식은 한정된 시간 내 심도 있게 배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수업 중에 배운 내용을 각자 열심히 복습을 한다면 진척되지 않을 리 없겠지만 취미로 배우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강한 의지필요했다.

소리 내기와 운지법 같은 기초 기술이야 여러 명이 함께 배운 들 별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짧은 강의시간 안에 수강생마다 다른 수준의 강습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수업도 진지하게 진행되기보다는 이런저런 수다만 떨다가는 동네 사랑방 분위기로 흘러가기 일쑤였다.


1인 강좌는 선생님 입장에서 밀도 높은 지도가 가능 효과적이라 했다.

내 입장에서도 부담 없는 수강료로 개인지도를 받는 셈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수강생의 수업에 방해라도 될까 눈치 보지 않고 질의응답할 수 있어 편했다.

게다가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바를 다음 시간까지 열심히 연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과 섞여 있으 복습이 미진하더라도 어물어물 넘어갈 수도 있을 텐데 1인 강좌라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심껏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의 열정을 생각해서라도 복습을 게을리할 수 없었다.

내가 잘 따라주어서인지 선생님은 차츰 취미 이상의 고된 훈련을 시켰다.

악보에 맞춰 소리 내기도 급급한데 본인이 구사하는 수준 높은 연주기법을 훈련시키니 버거웠다.

취미로 배우는데 그렇게 까지 고되게  필요가 있냐고 투정을 부린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 덕에 실력 향상이 빠르게 나타났다.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취미가 아니라 직업을 삼기 위해 대금을 배웠으면 어땠을까?

이렇게 까지 열정을 가지고 배울 수 있었을까?

대금 연주가 생계의 수단이 되었다면 지금 어떤 상황이 전개되었을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바뀌는 순간부터 지긋지긋한 노동될 가능성이 높다.

취미와 직업은 엄연히 다르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그저 정신적 만족이나 인생을 즐기기 위한 취미와 같을 리 없다.

취미는 힘들거나 하기 싫을 땐 그만두면 그뿐이다.

하지만 나와 가족의 생계가 걸려있는 직업으로서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야만 한다.

내가 지치거나 하기 싫다고 도망갈 수는 없다.

그게 직업이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면 지치고 힘들 때 이겨낼 수 있는 내적 동기가 더 강하게 생긴다.

또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하다 보면 난관에 부딪칠 때가 있고 과연 그 일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도 한다.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할 때와 달리 직업으로 할 때 남다른 각오와 의지가 요구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상태로 즐기자는 게 나의 지론이다.

굳이 직업으로 삼아 생계수단이라는 벼랑 끝에 설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 분야에 우뚝 선 사람도 다.

우리에게 그 모습은 화려하고 위대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착각할 수 있다.

나도 그 일을 좋아하니 조금만 노력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좋아하는 일이라도 그 분야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남 모르는 피와 땀을 바쳐야 한다.

또 재능이 있더라도 그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될 고통과 좌절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용기도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 일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다.

하지만 먹고살기도 바쁜데 성공한다는 기약도 없이 인생을 걸고 그 일에 뛰어들 수는 없다.




어느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당신과 같은 일을 하겠다면 흔쾌히 밀어주실 건가요?"


열심히 지원하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해보니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 일인지 몸소 겪었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별개의 차원이다.

좋아한다고 다 잘할 수는 없다.

선망과 재능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좋아하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재능은 있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재능 있는 사람이 그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 있다.

재능도 있고 좋아하기도 하는데 그 일을 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다면?


보통의 경우 좋아할 뿐 재능은 천부적이라 할 만큼 뛰어나지 않다.

해보지도 않고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대개의 경우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에게 좋아하는 일은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안정된 직업을 가진 후에 취미로 해도 충분하다.


요즘은 덕후 수준으로 취미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아마추어지만 프로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수준으로 취미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유홍준 교수도 말했다.

인생도처 유상수(生到處有上手), 우리가 살아가는 곳곳에서 숨어 있는 많은 고수를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또 요즘은 본업 외에 그 취미로 부업까지 하는 부캐 시대라고도 한다.


비록 그 분야의 최고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삶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의 취미생활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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