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은 남극에서만 살지 않는다.
최근 글쓰기에 권태가 찾아왔다. 사실 나는 그다지 글쓰기에 소질이 없다. 그냥 읽고 또 적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읽었던 책에서 반복해서 들은 말, '꾸준히 하면 된다' 이 한 마디 덕분에 힘들어도, 하기 싫더라도, 오늘은 그냥 넘어가고 싶어도, 그냥 쓴다. ―글이 안드로메다로 가버리면 어쩌나 우려된다. ―
최근에 한 번 크게 넘어졌다. 두 무릎과 손 그리고 손목에 큰 타박상과 시퍼런 멍들이 들었다. 역시 나란 사람은 아프고 나서야 반짝 정신을 차린다. 천만다행으로 크게 다치지 않아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쓰라린 고통에 인상을 쓰곤 한다. 사람이란 역시 모순된 존재구나 다시 한번 느낀다.
다행히 세상이라는 정글에서 어떻게든 하루하루 살아남고 있다.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들이 생각보다 많아 오히려 곤혹을 치루고 있다. 퇴사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는 내 길을 간다. 꾸준히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간다.
펭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뽀로로, 핑구 등 주변에 흔한 펭귄 캐릭터들, 빙하를 타고 둥둥 떠있는 펭귄 무리들. 황제펭귄과 아기펭귄이 나란히 눈밭에 다정하게 서있는 모습 등이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는 펭귄을 흔히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황제 펭귄, 목도리와 장갑을 끼고 있는 겨울의 핵심 마스코트 캐릭터 등으로 알고 있다. 차가운 빙판 위를 뒤뚱뒤뚱 걸어다니고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펭귄을 상상하곤 한다.
그렇게 우리는 막연하게 펭귄이 추운 지방, 남극과 주변 등지에서만 산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펭귄은 추운 곳에서만 살지 않는다.
―.
펭귄은 남.반.구.에 산다. 갈라파고스제도·남아메리카·남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지에도 펭귄이 서식한다.
그렇다. 펭귄은 겨울의 동물이 아니다. 펭귄은 남극의 동물이 아니다. 펭귄은 남반구를 대표하는 동물이다.
펭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펭귄(황제펭귄)만 존재하지 않는다. 턱에 끈을 늘어뜨린 턱끈펭귄도 있고 머리의 볏이 아름다운 마카로니 펭귄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막연히 일반적인 펭귄 캐릭터와 남극을 한 묶음으로 묶어 생각한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남극 황제 펭귄 캐릭터의 이미지가 펭귄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는 선입견을 가지고 때로는 자기만의 가치관과 시야로 사건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제멋대로 상상하고 재단한다. 나 역시 편견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때론 편견에 오해받은 적도 많다.
그렇게 다양한 속의 펭귄을 바라보다 정한 오늘의 주제는 '편견'이다. 내 삶의 편견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둘 펼쳐놓으려 한다.
그동안 나는 웬만해서는 편견을 가지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성별, 나이, 지역, 나라 등에 따라 편견을 최대한 갖지 않고 사람을 대하기를 꿈꿔왔고 그렇게 살았다고 자부했다. 스스로에 대한 고집과 주관은 있더라도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다양성을 포용하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은 매 순간 그런 나의 오만함을 깨부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의 대화는 나의 선입견을 와장창 갖다 던져버린다.
내 인생의 가장 커다란 편견은 무엇이었을까 자문한다.
―.
내가 가졌던 가장 큰 편견 중 하나는 바로 온라인(Online) 관계였다.
이미 이전에 발행했던 글이나 댓글에서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온라인·신기술에 대한 편견과 무지가 가득한 겁쟁이 펭귄이었다.
특히 온라인 상 사적인 부분에서 맺는 관계를 정말 무서워했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몇 번 하다가 만난 친구들의 거센 욕들과 협박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이 내 편견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물론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내향적인 성격도, 과거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슬픈 경험들도 한 몫 했다고 본다.
그렇게 나는 온라인에서 친구를 사귀고 만나는 것을 겁내고 두려워했다. 브런치 이전에는 온라인에서 얼굴을 모르는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모르는 타인이 정답게 인터넷 상 내 글에 댓글을 달면 그대로 도망갔다. 인터넷으로는 옷, 생필품 등을 잘 구매하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정말 신기한 게 책은 잘 살 수 있었다. ―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SNS를 좋아하지 않았다. 남들에 비해 디지털, IT 기술 관련 진입장벽이 높았다. 관심은 가지만 무서움이 더 컸다. 마치 온라인에서 사적인 관계를 맺으면 호랑이에게 잡혀가기라도 하는 것인냥 나의 온라인에 대한 진입장벽은 두껍고 단단했다.
그렇다. 사생활의 측면에서 나는 베일에 싸인 꼰대스럽고 보수적인 인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찮게 친구가 이메일로 펜팔을 하고 전혀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모습을 봤다. 그저 놀라웠다. 친구가 무안할까봐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상당히 컸다.
부러웠다. 겁내지 않고 서스럼없이 인터넷 세상에서 친구를 사귀고 성큼성큼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는 친구들의 모든 모습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알은 단단했다. 온라인은 여전히 미지의 호랑이 한 마리였다. 남들을 부러워 하며 바라보기만 했다. 나란 사람은 글러 먹었다, 그냥 이렇게 현 상황에 만족하고 살아야지 하고는 체념했다.
결국 난 서른이 넘도록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아니 시도를 하기는 했더라도 여전히 나는 오프라인 관계 중심의 인간이었고, 나의 사회적 관계망은 좁디 좁았다.
그러나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이제는 스마트폰 없이는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와버렸다. 코로나 19가 그 시작이었다. 업무상 어쩔 수 없이 비대면 온라인 관계는 시작되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외력에 의해 서서히 온라인으로 관계를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서서히 두려움을 없앴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도 한 몫 했다. 요즘 세상에 인터넷 기술은 필수인데 그런 타박 없이 나를 그저 바라보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알 속의 펭귄은 이제 진짜로 나섰다. 그렇게 들어선 곳이 바로 브런치였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사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이 곳에 정을 붙일 생각도 댓글을 주고 받을 생각조차 없었다. 나는 여전히 소심하고 관계에 서투른 한 마리 작은 펭귄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진심으로 댓글을 달아주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글의 힘은 위대했다. 현실의 나를 변화시켰다. 웃음꽃이 피게 만들고, 활력과 생기를 주었다. 사람들의 글은 온기가 가득했고 따뜻한 정감이 넘쳐났다.
서서히 마음이 열렸다. 용기내어 사람들에게 댓글을 하나 둘 달았다. ― 소심하고 인간관계 서투른 펭귄 한 마리에게 관심을 주시고 단단한 알 속에서 나올 수 있도록 정답고 따순 답변을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
심지어 내 마음 속 각종 무서움들을 무릅쓰고 브런치에 내 이야기를 게재하기도 했다. 나를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들은 이런 나의 변화에 꽤 많이들 놀랄 정도였다.
https://brunch.co.kr/@mindalpenguin/92
적다보니 이 모든 것 또한 관계에 대한 성찰이지 않을까 싶다. 한때 '혼자서도 잘해요'의 삐약이처럼 혼자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세상에 홀로 서 있으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인간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차츰 깨달았다. 펭귄이 둥글게 모이고 모여 서로의 살을 맞대고 추위를 이겨내는 것처럼 우리들도 정감 있게 서로 보듬어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새로 맺는 관계에 대한 겁은 여전히 많다. 지금도 나는 소심한 쫄보 펭귄이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나아가고 성장할 것이다. 이 글은 그런 나의 성장 일기이자 여로(旅路)일 것이다. 내가 가진 편견을 깨부수는 또다른 도끼이자 극복일 것이다.
실은 그래서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발행하는 글보다 사람들에게 댓글을 쓸 때 시간이 더 걸린다. 피곤하고 힘들 때는 내가 가진 나쁜 기운들을 전달해드리기 싫어서 못 적을 때가 있다. 때로는 무응답이 더 기분 나쁘려나 한참을 고민하다 한 글자 한 글자 적기도 한다.
동글동글하고 예쁜 자갈들을 서로에게 선물해주는 펭귄들처럼 브런치 작가님들, 귀인분들께 좋은 말, 예쁜 말들만 가득 드리고 싶다. 쓸 때도 신중하고 말을 고르고 골라 동글동글 굴리고 댕글댕글 적는다.
그렇게 오늘도 부끄럽지만 나의 마음 한 구석을 털어 놓는다.
사실 이만큼이나 살았음에도 서투른 것 많고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 많은 펭귄이다.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귀중한 글들 많이 많이 부탁드린다는 말씀 드리며 글을 마친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