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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별펭귄 Jun 10. 2024

펭귄의 부리에서는 꽃이 핍니다.

민트별펭귄의 스토리




바른 말 

고운 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언젠가 나는 사람들로부터 말을 예쁘게 한다는 칭찬을 꽤 듣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담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인가. 


―.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고운 말을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마냥 바른 말 고운 말만 쓰며 살아왔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부끄러운 과거가 존재한다. 


바로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시절, 중2병의 시절이다. 





 나 역시 중2병을 거친 평범한 학생이었다. 허세에 가득 나쁜 말들, 일명 욕설을 입에 버릇처럼 담고 시절이 아주 잠깐 있었다. 문득 시절 생각이 났다. 그리고 때의 내가 지금의 나 자신이 되기까지의 과정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


 이번 글의 테마는 펭귄의 바른 소리 고운 소리를 찾아 떠나는 삼만리 여행기다. 오늘 펭귄의 타임머신은 역시나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유영하고 현재로 달려오는 여정이다. 모두들 단단히 안전벨트를 매시기를..!


 



펭귄의

욕 변천사





 내가 어렸을 적 동네 놀이터를 주름잡던 번데기 시절엔 주변에 제대로 된 욕설을 할 줄 아는 애들이 없었다. 당시 우리들 사이에서 가장 심한 욕은 '이... 이 바보야!' 였다. 그마저도 너무 심한 욕이라서 '바보'라는 욕을 들은 사람은 이내 눈물바다가 되어 엉엉 울곤 했다. 


 나중에는 그마저도 '바다의 보물'이라며 서로를 달래주고 치켜 세워주었다. 너도 바보, 나도 바보, 우리 모두 바보가 되는 식이다(?). 그마저도 서로 바보가 될 것이라며 티격태격 거렸지만 돌이켜보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티 없이 맑고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여하튼 내가 살던 작디 작은 동네의 놀이터 문화는 이러했더랬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중학생이 되었다. 소위 잘나간다는 일진 친구들은 슬슬 욕설을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욕설의 수위도 높아졌다. 지*, 병*. 심하게는 seed* 이라는 욕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욕을 듣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나와 친구들은 점점 욕에 물들었다. 나쁜 욕들은 너무도 쉽게 우리들 머릿속으로 침투했다. 평범한 친구들도 나도 어느 순간 그런 나쁜 욕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도 부끄럽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말끝마다 욕이 자연스레 붙게 되었다. 


그렇게 욕은 자연스러운 일종의 청소년 문화가 되었다. 선생님들 앞에서는 하지 않더라도 친구들과 서로서로 주고 받는 말들엔 욕이 늘상 함께했다. 그들에게 욕은 일종의 허세이자 멋의 일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나에게 '봉사활동 가지 않을래' 하곤 솔깃한 제안을 했다. 무슨 봉사활동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나는 '예스'부터 외쳤다. '봉사 활동은 좋은 것', '좋은 것은 같이 하면 더 좋은 것' 이런 단순한 사고의 흐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연한다면 나는 지금까지 '내 인생에 모든 새로운 경험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는 마음가짐으로 오는 경험, 가는 경험 모두 붙잡고 해보는 편이다. 이럴 때는 참으로 단순한 사람이 바로 나다. 한편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사서 고생한 인생의 스펙트럼이 꽤 길다. ― 





 아무 생각 없이 친구따라 졸래졸래 쫓아간 곳은 다름 아닌 '바른 말 고운 말 쓰기 캠페인'이었다. 한 마디로 '욕 하지 말자 캠페인'이다.  



어라라...? 나 바른 말 고운 말 안 쓰는데? 나 말끝마다 욕하는데...? 



 우선 봉사 활동은 해야겠고, 봉사활동 참여자로서 이미 입에 물들어버린 욕도 단속해야겠고, 이래저래 신경 쓸 것들이 많아 심란해졌다. 그래도 이왕 하기로 한 것 내 신조답게 꿋꿋이 맡은 바 제 할 일을 했다. 



  캠페인 문구와 포스터를 만들고, 바른 말 고운 말을 쓰자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욕의 실제 어원을 설명해주는 영상을 다함께 관람했다. 





나는 영상을 보는 순간 마주했던 충격과 혼란스럽던 감각들을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욕의 뜻들을 하나하나 풀이해 자세하게 설명한 그 영상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인생에 가장 놀랍고 당혹스러운 영상 중 하나였다. 나의 일상의 말들을 빼곡히 채운 욕들의 실제 의미를 알고 나니 욕을 평상시에 서스럼없이 사용하던 스스로가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실은 그때까지의 난 사실 아무 생각없이 욕을 따라하곤 했다. 그리고 욕을 하면 멋있어 보이니까, 남들도 다 하니까, 있어보이니까, 세 보이고 강해 보이니까 점점 더 욕이 늘었다. 




 그렇게 나는 영상을 보고 나오며 단 한순간에 욕을 끊었다. 간혹 실수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기라도 하려는 날에는 스스로의 입을 손으로 와구와구 때려가면서 입단속을 했다. 

 

 

―.


 종국에는 역시 질문이 따라왔다. 그리고 고민했다. 


 우리들은 왜 욕을 할까?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가 말끝마다 말 어귀마다 욕을 하는 건, 일상의 말속에 마땅한 추임새가 없기 때문이다. 추임새가 없으니 라임이 없고 라임이 없으니 말을 하는 재미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일종의 재미의 일환으로 욕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럼 욕을 다른 말로 치환하면 어떨까. 그래서 친구들도 우리가 쓰는 욕의 상스러운 뜻을 배우고 다른 말로 자주 사용하는 욕을 대신하면 어떨까. 





그렇다. 인정한다. 나는 학창 시절 공부 안하고 이런 쓰잘데기 없는 고민과 행동에 몰두했다. 


고민에 빠져있는 내게 꽃을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눈에 띄었다. 길을 오가며 꽃 이름 하나하나 귀히 여기고 이름을 불러주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불꽃이 튀었다. 꽃으로도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꽃으로 욕을 대신하자!


―.


 그렇게 나만의 추임새가 탄생했다. 










펭귄의

부리에서는

꽃이 핍니다.





나는 일상에서 추임새처럼 늘상 쓰던 욕 대신 '개나리' 또는 '진달래'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 개나리... 개나리같다. 음 진달래 같네.. 같은 식이었다. 


 감정이 격해지면 '이런 개나리 진달래 같으니라고.' '이런 개나리 진달래!!' 라고 외쳤다. 친구들은 쟤가 드디어 미쳤나보다 드디어 맛이 갔구나 여겼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개나리, 진달래 거리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점점 주변 친구들도 자신만 욕을 내뱉기는 좀 그랬었는지 아니면 다들 슬슬 중2병이 끝나고 철이 들어갔던 것인지 욕을 사용하는 빈도가 줄었다. 적어도 '진달래, 개나리' 거리는 내 앞에서는 확실히 욕설의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이따금 입이 심심하면 습관처럼 개나리, 진달래, 개나리, 진달래 추임새를 넣곤 한다. 그러다 보면 개나리, 진달래 꽃이랑 친구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 반가운 기분도 간혹 든다.  


―.


 물론 화가 나고 말도 안되는 망나니 같은 상황에서는 나도 진짜 욕설을 한다. 아니 저도 모르게 나와버린다. 나 역시도 사람이다.


 욕을 먹어야 할 파렴치한 사람들은 욕을 먹어도 싸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굳이, 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는 지금도 버릇처럼 개나리, 진달래를 말하곤 한다. 그마저도 최근에는 혹시나 진달래, 개나리의 마음이 왜곡될까 싶어 자제하는 편이다. 


 


 



사람들과 주고 받는 따뜻한 인사말, 고운 말들은 언제 들어도 정겹다. 늘상 고운 말들, 아름다운 마음들로 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하루하루 입에서도 개나리, 진달래 같이 아름답고 고운 같은 말들이 많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마운 이들에게 더 고운 말을 많이 해주기를 늘 다짐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midjourney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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