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이.
안녕하세요
전 펭귄인데요
물이 무서워요.
나는 물 공포증이 있다.
바닷가에 놀러간 꼬꼬마 어린 시절 물놀이를 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깊은 데까지 흘러 들어갔다. 발이 닿지 않았다. 바닷물 빛깔은 점점 짙어졌다. 원초적인 두려움이 엄습했다. 점점 꼬로로록 몸이 가라 앉았다. 물에 빠져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운이 좋게도 때마침 밀려온 커다란 파도가 나를 살렸다. 나는 조류에 휩쓸려 바닷가로 돌아왔다. 물 속에서 데굴데굴 몇바퀴를 구르고 굴러 해변에 발이 닿았다. 눈이며 코며 물이 잔뜩 들어가 맵고 따까운 아픔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물은 또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른다.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체험한 뒤로 줄곧 나는 물을 무서워했다. 한동안 계곡, 바다 등 물 근처에만 가면 유독 원인 불명의 두드러기가 온몸에 올라왔다. 몸과 마음이 피곤하면 짙고 검은 물속에 빠져 한없이 허우적거리는 악몽을 자주 꾸곤 했다.
수영을 배우기는커녕 물 근처에 자주 가지도 않았다. 다시 조금씩 하게 된 물놀이도 반드시 발이 닿는 곳에서 튜브와 구명조끼를 온몸에 칭칭 두르고 첨벙첨벙 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내 필명 '민트별펭귄'부터 아시다시피 나는 펭귄을 정말정말 좋아한다. 펭귄의 수천 가지 매력 중 최고의 매력은 단연코 바다 속을 종횡무진하며 쏜살같이 헤엄친다는 것이다. 펭귄의 별명 중 하나인 '바다를 나는 새'라는 표현은 물 속 펭귄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찬사다.
이렇게나 펭귄을 좋아하는 내가 수영은 할 줄도 모르고 심지어 물을 무서워하기까지 한다는 것은 무언가 펭귄이라는 나의 정체성에 가장 큰 약점 같았다. 분명 그 둘은 별개의 항목임에도 불구하고 모순처럼 느껴졌다.
―.
시간이 흐를수록 펭귄에 대한 나의 사랑은 깊어졌다. 사랑하면 닮고 싶어진다고 했던가. 펭귄에 대한 마음이 깊어질수록 물 공포증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물 속을 날아다니는 펭귄을 보며 그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스스로가 속상했다. 주변에 수영을 하는 친구들이 보이면 부러운 마음이 제일 먼저 샘솟았다. 수영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동경했다.
그랬던 내가 도대체 무슨 바람이었을까. 덜컥 동네 수영장 기초반 수업을 신청했다.
한번 사는 인생 까짓거 해보자는 마음이었을까. 이제는 펭귄을 사랑하다 못해 스스로를 펭귄과 동일시하는 걸까. 먼젓번 호주에서 만나고 온 펭귄들이 나에게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기운을 전달해준 것일까. 수영의 장점을 열거하며 자랑하던, 꾸준히 수영을 다니던 친구와 나눴던 대화 때문일까. 나도 하면 된다는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서 그럴까.
―.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아무 생각 없었다. 담대한 용기나 다짐같은 건 없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물 공포증을 이겨보리라 멋지게 두 손 불끈 쥐지도 않았다.
그저 물이 무섭던 어린 시절 기억이 조금씩 옅어졌다. 물에 대한 악몽을 꾸는 빈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시간의 흐름 앞에 공포와 두려움 덩어리들이 조금씩 마모되고 스러져 갔다.
거기에 펭귄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 스푼을 보태졌다. 한번 사는 인생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보자는 마음도 한 스푼 더해졌다. 이곳저곳 몸이 고장나고 아파오던 터라 무슨 운동이라도 시작해야겠다는 다짐은 두 스푼 더 들어갔다.
까짓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에라 모르겠다 해보고 안되면 그때가서 생각하자. 일단 도전부터 하자는 정신으로 무장했다.
나는 도전했고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정말 이제
펭귄이 되기로 한거야?
'나 수영 한번 배워 볼거야'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표하고 다니며 들은 말이다. 수업 신청을 하긴 했지만 겁쟁이 쫄보 민트별펭귄은 그마저도 갈까 말까 고민을 참 많이 했더랬다. 그래서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배운대로 '난 수영을 할거야'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 말하고 다닌 게 있으니 확실히 수영장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얼레벌레 다시 물을 마주했을 때 솔직히 약간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내가 미쳤지 왜 한다고 했을까.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무를 수 없어 물에 들어갔다.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
옛말이 맞다. 사람 일은 모른다. '죽을 때까지 천하의 민트별펭귄이 수영을 절대 배울 리가 없다'는 명제는 거짓이었다.
나도 물에 떴다. 나의 편견가득한 신념에 와장창 금이 가는 영광스러운 순간이다. 나는 내가 맨몸으로 물에 뜨리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수영은 안할 것이라며 확신에 찬 말을 내뱉고 다니던 과거의 나 자신, 보고있나. 하하하하하.
수영은 못한다고 못한다고 안 배울 것이라고 한사코 노래부르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제는 새로운 배움에 신이 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꼬박꼬박 수영을 배우러 가고 있다.
그렇게 지금 나는 부족하게나마 푸닥거리며 어설프지만 자유형 비스무리한 몸짓을 하는 펭귄이 되었다. 여전히 물을 먹고 켁켁거리고 코에 물이 들어가 맵싸한 눈물 콧물 다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나도 수영할 수 있다.
나도 이제 수영하는 건강한 펭귄이다!
물공포증을 이겨내고 배운 수영에서 삶의 깨달음을 얻는다.
삶의 모든 일은 정말이지 내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정글같은 사회에서 숱한 실패를 겪고 또 겪고 있다. 내가 마음 먹은 대로 일이 잘 풀린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그러나 오히려 예측할 수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기에 역으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미지의 간척지를 개척할 수 있었다. 물공포증을 이겨내고 수영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수영을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리 대단한 삶의 의지가 수반되지 않았다. 그저 공포를 잊게 만든 시간의 도움, 아주 약간의 모험심, 그리고 펭귄을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마음 덕분이었다.
그렇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하다. 완전 지멋대로다. 내 의지, 내 뜻과는 무관하게 흘러가서 약이 잔뜩 오를 때도 있다.
그럴 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삶이란 예측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차마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중이라고 말이다.
살면서 나는 또다시 무수한 경험들을 쌓아갈테다. 그 과정 속에서 또다른 공포와 두려움이 움트기도 할 테다. 도저히 알 수 없는 미래에 낙담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물 공포증을 이겨낸 경험을 가슴 깊이 아로새겨 넣으려 한다.
물을 무서워하던 어린 시절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어른이 되서 물공포증을 이겨내고 수영을 배울거야. 너는 살면서 어떤 두려움을 가지더라도 시간이 흐르고 언젠가는 충분히 깨치고 이겨 낼 수 있어. 라고 말이다. ―물론 꼬맹이 민트별펭귄은 믿지 못할거다.―
나같은 평범한 펭귄 나부랭이도 해냈으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언젠가 당신이 가진 두려움을 깨칠 수 있다는 걸 기억하기를 바란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고 짜증이 이는 순간 그래도 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기 자신을 잘 다독여 주었음 한다.
대단한 결심같은 건 없어도 괜찮다. 온갖 잡생각과 두려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한 번 시도해보자는 가벼운 마음도 괜찮은 듯하다. 우리는 생각보다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
우리 모두 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다. 어차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면 그저 한번쯤 에라 모르겠다 정신으로 고민과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대담하게 발을 내딛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안녕하세요
펭귄인데요.
이제 물이 안무서워요 :)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pixabay, midjourney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