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아일랜드, 펭귄 퍼레이드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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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민트별펭귄은 야생 펭귄을 직접 만나러 호주 필립 아일랜드로 떠난다. 하지만 웬일인지 펭귄의 귀가 시간이 예상 시간보다 늦어지는데...! 과연 민트별펭귄과 펭귄은 만날 수 있었을까.
앉아서 하염없이 펭귄을 기다렸다. 해는 졌고 날은 점점 추워졌다. ―호주는 지금 겨울이다.― 패딩을 단단히 챙겨 입었지만 날이 저물어서 그런지 옷 속으로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옷깃을 여미며 초조하게 시계와 바닷가 쪽을 번갈아본다. 1분 1초가 더디게 흘러간다.
사람들의 대화와 부스럭거리는 소리들이 공기 중으로 옅게 흩어졌다. 웅성거림은 가고 고즈넉한 침묵들이 허공의 빈자리를 메꿨다. 예상보다 늦어지는 시간에 다들 조용히 지쳐가는 중이었다.
옆에 무덤덤하니 앉은 외국인 아주머니 한 분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머니도 기약 없는 기다림에 싫증이 나셨던 모양이다. 표정이 이전보다 더 무표정해 보였다. 하지만 이럴 때 나의 주특기가 있다. 헤실헤실 무방비한, 하지만 진심은 가득 담은 미소를 날려보인다.―나는 가끔 내 순둥한 얼굴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을 때가 있다.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는 소심한 용기를 몇 스푼 보태어 아주머니께 몇 마디 스몰토크를 건네본다.
I love penguin :)
나는 펭귄이 좋다고, 펭귄을 꼭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라 한국에서 이곳까지 왔다고 말했다. 지금 기다림의 순간이 참 힘든데 그래도 참 좋다고 헤실헤실 웃어 보였다. 무표정하던 아주머니 표정에 싱긋하고는 웃음이 스쳐 지나간다. 다행이다. 나를 어여삐 봐주신 모양이다.
펭귄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고 흐뭇하게 나를 보시던 아주머니는 조곤조곤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호주 골든코스트 출신인 아주머니는 멜버른 여행을 왔다고 자신도 펭귄은 오늘 처음 보러 왔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잠깐의 스몰토크가 끝나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온기와 미소가 담긴 대화로 기다림의 시간을 조금 채워보았지만 역부족이다.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꺅―. 꺅꺅꺅―.
펭귄인가? 분명 펭귄들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다고 했는데 바닷가는 조용했다. 꺅―. 꺅꺅꺅―. 새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인 듯싶었다. 하늘까지 붕 떴던 마음은 금세 풀이 죽었다.
꺅―. 꺅꺅꺅―.
그때 호주 아주머니가 말없이 내 손등을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조용히 수풀을 가리켰다. 수풀 곳곳에는 사람들이 펭귄을 위해지어 준 나무집이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영문을 몰라 눈을 땡그랗게 뜨고는 수풀을 봤다가 다시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아주머니가 '펭귄'이라고 큼직하게 입모양을 내어 보인다. 그제야 놀란 나는 수풀 사이에 놓인 펭귄 집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 새끼 펭귄이었다.
새끼 펭귄 한 마리가 머리만 살짝 빼꼼 내밀고 밖을 살피고 있었다. 몇 번을 꺅―. 꺅꺅꺅―. 하고 울더니 이내 다른 동물들의 울음소리들에 겁을 먹었는지 다시 나무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놀라움, 기쁨, 경탄, 경이, 온갖 감정들이 나의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소리 없는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것마저 두 손으로 막아본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이미 펭귄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모든 펭귄들이 먹이를 찾으러 나간 게 아니다. 지금 이곳에는 집에서 잠시 쉬고 있는 펭귄들,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아기 펭귄들도 함께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올 펭귄들을 우리는 함께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꺅―. 꺅꺅꺅―.
감격스러웠다. 바닷가에서 올라오는 펭귄 무리를 못 보면 어때. 나는 지금 펭귄과 함께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걸. 마음이 충만해졌다. 이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났다. 펭귄은 내 곁에 있었고, 행복 역시 내 곁에 있었다. 늘 우리 가까이에 함께하고 있었다.
집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고 있을 펭귄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나는 더더욱 행동거지들을 조용하게 또 신중하게 살폈다.
꺅―. 꺅꺅꺅―.
언제 고개를 빼꼼 내밀지 모를 새끼 펭귄의 나무집을 이따금 쳐다보면서 마음을 한결 놓고 여유롭게 기다림을 음미하기 시작한다. 주변의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고스란히 담는다. 꺅―. 꺅꺅꺅―. 새끼펭귄의 울음소리와 다른 들짐승 소리, 바닷바람 소리를 귀에 차곡차곡 담는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작지만 분명한 웅성거림이 바닷가 쪽에서부터 들려왔다.
...펭귄들이다. 그것도 수십 마리의 펭귄들.
펭귄 옆에 펭귄 또 그 옆에 펭귄.
펭귄펭귄펭귄펭귄펭귄펭귄펭귄펭귄...!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서 두 손으로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막고 또 막았다. 펭귄이다. 펭귄이 내 눈앞에 파닥파닥 뒤뚱뒤뚱 걸어간다. 내가 소리를 내면 혹여나 놀랄까 봐 입을 꾹 다물고 손만 작게 흔들어 인사를 하고 또 한다.
1차 무리가 올라오고, 이어 2차, 3차 무리,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펭귄들이 연달아 올라온다. 내 평생에 펭귄들을 원 없이 보는 순간이다.
아쉽게도 펭귄 무리는 해가 진 후 올라와 사진을 찍지 못했다. ― 펭귄 퍼레이드 센터에서는 펭귄의 시야 보호를 위해 해가 진 후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 대신 펭귄을 눈에 가득 담는다. 순간을 영원처럼 기억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사진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른다.
펭귄에게서는 바다냄새가 난다. 수산물 시장 냄새, 풋풋한 바닷물 냄새가 난다.
펭귄은 겁이 참 많다. 작은 소리에도 흠칫 놀라 후다다닥 도망가고 숨는다. 이름 모를 새의 커다란 날갯짓에는 소스라치듯 놀라 뒤꽁무니 빠지게 도망간다.
펭귄은 호기심이 참 많다. 자신들을 보는 사람들을 빤히 구경하고 또 구경한다. 펭귄들은 역으로 인간들이 신기한 모양이다.
펭귄은 산을 참 잘 탄다. 뽈뽈뽈뽈 수풀을 헤치고 가파른 능선을 넘어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들에게로 퇴근길을 서두른다.
펭귄도 하품을 한다. 하루의 여정이 고단했던지 크게 입을 벌려 하품을 한다. 오늘의 고단함을 훌훌 털어버리고 내일을 다시 힘차게 살아가겠다는 듯이.
단장에 열중인 펭귄들도 있다. 우리가 옷매무새를 갖추듯 깃털을 고르고 고른다. 나 좀 봐랏 귀엽지? 하고는 볼록한 배를 내밀어 보이기도 한다. 자신들이 오늘의 주인공임을 아는 모양이다. 그들의 젠체하는 모습들이 마냥 귀여워 보이기만 한다.
펭귄을 담고 또 담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감격스러웠다. 민트별펭귄은 펭귄을 만났다!
펭귄의 하루에 나의 하루를 덧대어 본다. 저들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구나.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오롯이 서서 차가운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먹이를 찾고 집을 지키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구나.
마음속 간절히 펭귄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본다.
펭귄들아. 안녕. 만나서 너무 반가워. 정말 보고 싶었어. 다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집에 들어가서 푹 쉬렴. 내일도 먹이를 구하러 바닷가에 나가는 고단한 하루가 기다리고 있겠지만은 또 다른 삶의 행복들이 하루하루 너희 삶들에 가득하기를 바라. 하루하루 쌓여가는 결들로 너희들의 인생은 이미 반짝반짝 빛나고 있음을 나는 알아..!
펭귄을 원 없이 보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쏟아질 듯 밤하늘을 가득 빛내고 있었다.
땅에는 펭귄들,
밤하늘에는 별들.
내 인생 최고의 밤이었다.
To.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지난번 제 글을 읽어주시고 행복하고 귀한 하트와 댓글들로 펭귄을 만나고 오길 바라는 마음들을 표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아마 그 마음들이 이미 그 자리에 와 닿았었기 때문에 제가 귀한 기회로 펭귄을 보고 왔지 않았나 싶어요 ㅎㅎㅎ
제가 정말 많이 귀애하는 작가님들, 독자님들 한 분 한 분의 마음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삶의 조각들이 더욱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늘 감사합니다 :)
오늘 하루도 평온하고 귀한 밤 보내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민트별펭귄 드림 -
By. 민트별펭귄
사진 출처 : midjourney, 민트별펭귄, 펭귄 퍼레이드 웹 사이트
본문 출처 : 민트별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