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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Jul 19. 2024

천하태평 천하대장군

천하태평 천하대장군


번쩍! 우르릉 쾅! 쾅! 

천둥번개가 요란하던 밤입니다. 아기두더지 두 마리가 빗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아직 엄마 두더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거센 빗줄기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부부의 발등도 사정없이 파고들었습니다. 서너 발 건너에 있는 버드나무도 어지럽게 머리카락을 날리며 온몸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고 아고고. 여보, 어쩌면 좋아요 넘어질 것 같아요. 아 어떻게 좀 해 봐요!”

 지하여장군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악을 쓰지만 천하대장군은 묵묵히 서있을 뿐입니다. 

 “아니 지금 그렇게 서있기만 하면 어떡해요! 발밑이 흔들리고 있잖아요!”

 얼굴이 까맣게 변한 지하여장군은 거의 쓰러질 정도입니다. 사실 지하여장군의 등 뒤에는 커다란 돌탑이 버티고 있어서 넘어져도 버틸 수 있겠지만 천하대장군 등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대로 넘어지면 끝입니다. 그런데도 천하대장군은 아무 말 없이 태평한 평소의 얼굴 표정 그대로입니다. 

 “자기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면서 무슨 마을을 지킨다고…….”

 버드나무가 비바람에 축축 늘어져 심통스러운 표정으로 천하대장군을 노려봅니다. 

 “뭐라고요? 이 양반이 지금 어디다 대고 함부로 말을 하는 거예요?”

 지하여장군이 버드나무에게 따지고 듭니다. 그 사이에 번쩍 번개가 다시 내려 꽂혔습니다. 이어서 쾅쾅 벼락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아이고, 그래도 남편이라고 편을 드는구려. 내 말이 틀렸소? 천하대장군이면 마을을 지켜야 할 것 아니오?”

 푹 젖은 머리카락을 젖히며 버드나무도 지지 않고 소리소리 지릅니다. 어떻게 손쓸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는 천하대장군이 얄미운 것입니다. 버드나무는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할 것만 같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밭일을 하거나 이웃 마을로 갈 때 이 고갯길을 넘어갑니다. 그런데 쉴 때는 버드나무 그늘에서 쉬고 떡이며 술이며 맛있는 것은 장승 부부 앞에 두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는지 버드나무는 그동안 불만이 많았던 것입니다. 

 ‘뿌리도 없으면서, 생긴 것 하고는…….’

 속으로 장승 부부를 업신여긴 것도 사실입니다. 얼굴은 시커멓고 눈이며 코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뭐가 대단하다고 사람들이 그리 애지중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지하여장군도 남편이 못마땅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며칠 전 제비가 날아가다 싼 똥이 지하여장군의 얼굴에 떨어졌습니다. 지하여장군은 어이없고 창피하기도 해서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여보, 저 제비를 당장 하늘에서 떨어지게 해 주세요. 감히 어디에 똥을…… 아휴, 냄새. 아휴 창피해.”

 하지만 천하대장군은 제비 뒤꽁무니를 보며 웃음을 꾹 참는 것 같았습니다. 

 “동장군이라도 불러와서 혼을 내야지. 지금 웃음이 나와요?”

 편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지하여장군은 더욱 화가 났습니다.

 “제비도 어쩔 수 없었을 거요. 일부러 그랬을라고. 우사에게 소나기를 조금 내려달라고 부탁하겠으니 화를 가라앉히구려.”

 눈치 없이 웃었던 것이 뒤늦게 미안한 천하대장군은 아내를 다독였습니다. 그러나 지하여장군은 소나기로 세수를 말끔하게 한 뒤에도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아내를 보고 웃는 남편이 똥을 누고 달아난 제비보다 더 미웠습니다.

 또 몇 달 전에는 결혼하고 7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 부부가 장승을 찾아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천하대장군은 진심으로 그 부부가 아이가 생기길 바라며 삼신할머니께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뒤 부부는 놀랍게도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서 마을 잔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천하대장군은 무척이나 이 일을 기뻐하였지만 지하여장군은 남편이 참 섭섭하였습니다.

 ‘나도 아이를 갖고 싶은데, 정작 자기 아이는 가질 생각을 않고 마을 사람들 일이나 신경을 쓰다니 내 남편 맞아?’

 지하여장군은 그런 남편이 못마땅해서 늘 투덜거리고 짜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천하대장군은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도 천하태평이었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비바람은 밤이 깊어가면서 더욱 거세졌습니다. 그때입니다.

 “으아아악, 나… 나무 살려!”

 버드나무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번개가 번쩍 버드나무의 왼쪽 뺨을 친 것입니다. 벼락을 맞은 버드나무의 왼쪽 뺨이 새까맣게 탔습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버드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괜... 괜찮아요? 아이고 이를 어째. 어쩌면 좋아.”

 지하여장군이 발을 동동 구릅니다. 평소에 말은 참 밉게 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이웃인데 걱정도 되고 안타까웠습니다.

 “버드나무 씨, 버드나무 씨, 정신 차려요. 괜찮아요? 말 좀 해 보세요?”

 이번에는 천하대장군도 몹시 놀라서 눈이 부리부리 해졌습니다. 버드나무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까맣게 타서 부러져나간 왼쪽 가지를 바라봅니다. 하마터면 허리까지 부러질 뻔했습니다. 버드나무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버드나무는 무서움에 덜덜 떨었습니다. 검고 흉하게 변한 머리카락이 축 늘어져 있을 뿐입니다. 

 바위 밑에 숨어있던 아기두더지 두 마리도 번개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서로 꼭 껴안고 그만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엄마 두더지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작은 아기두더지들이라 아무도 그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하대장군은 축 쳐진 버드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생각을 한 천하대장군은 힘없이 말을 했습니다.

 “휴우, 전들 왜 비바람을 멈추게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에겐 그럴 힘이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비바람이 천하대장군의 가슴을 휘돌며 지나갔습니다. 한바탕 난리를 친 번개는 건너편 산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쿵쿵 천둥 발소리도 번개를 따라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버드나무는 아직도 놀란 가슴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멍한 표정으로 장승 부부를 바라봅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사람들의 믿음을 먹고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와서 소원을 빌고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을 때 그것을 먹고 힘이 생깁니다. 힘이 넘칠 때는 마을의 액운도 막아주고 질병이 전염되지 않도록 보호도 해주었지만…….”

 천하대장군은 말을 끝까지 잇지를 못하고 목이 멥니다. 지하여장군도 서러운지 눈물을 쏟았습니다. 버드나무는 다친 어깨를 다른 쪽 가지로 매만지며 생각하는 눈치입니다. 천둥번개가 멀어지자 빗줄기도 가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던 바람도 잦아드는 것 같아 겨우 숨을 돌릴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우리 부부를 웃음거리로 보는 사람이 많아요. 소원을 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지하여장군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울음을 삼키며 말했습니다.

 “버드나무 씨는 뿌리가 있어서 스스로 먹고살지만 우리는 눈코입이 있어도 스스로 먹고살 수가 없어요. 사실 이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답니다.”

 천하대장군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했지만 쓸쓸함이 가득 묻어났습니다.

 “그… 그래도… 천하대장군인데…….”

 버드나무가 우물우물 말을 하다 말고 다친 곳이 몹시 아픈지 인상을 찡그립니다. 장승 부부도 걱정스럽게 버드나무의 타버린 왼쪽 뺨과 어깨를 바라봅니다. 

 “나는 하도 두 분이 당당하게 서 계셔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알았어요. 가끔 사람들이 이곳을 지날 때에 장승부부 앞에서만 기도를 하고 가서 심술이 좀 났었어요.”

 버드나무는 미안한지 말을 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천하대장군이 가만히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행스럽게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거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납작 엎드렸던 풀들이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풀들은 약하지만 납작 엎드린 덕분에 모두 무사한 것 같습니다. 

 “저… 사실은 두 분이 못생겼다고 속으로 흉도 봤습니다. 그런데 내 모습도 차이가 없게 되었네요.”

 겸연쩍은지 버드나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뭐예요? 그런 흉까지 보았단 말이에요? 어이없네요. 나는 이래 봐도 미스 장승에 뽑힌 장승이라고요!”

 지하여장군이 축축한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를 꽥 질렀습니다. 

 “하하하 그건 맞는 말입니다.”

 모처럼 천하대장군이 유쾌하게 웃으며 아내 편이 되었습니다. 

 “네네, 잘 알겠습니다. 하하”

 버드나무가 손을 싹싹 비는 시늉을 하며 웃었습니다.


 그때입니다.

 “어... 어?”

 천하대장군이 기우뚱합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진다는 것이 그만 지하여장군 어깨에 기대게 되었습니다.

 “여... 여보, 괜찮아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발밑이 많이 파여서 그래요. 그런데 당신 어깨에 기대니 정말 좋구려. 하하”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이를 어째.”

 지하여장군은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남편이 쓰러지면 어찌 될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밤새 버티려고 어찌나 애썼던지 대장군 발목이 갈라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사실은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

 천하대장군은 조금 더 기우뚱하게 기울며 자신의 발밑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하여장군은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이 아이들을 키웁시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에요?”

 천하대장군 발밑에 아기두더지 두 마리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를 잃은 아기두더지들이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내 밑으로 피신시킨 것이오.”

 “그럼 그 비바람에 이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그렇게 애쓴 거예요?”

 “내가 쓰러지면 아이들을 보호할 수가 없으니까 발목에 온 힘을 주다 금이 가고 말았구려.”

 “그런데 왜 내게 미리 말을 해주지 않으셨어요?”

 지하여장군은 또 섭섭하여 뽀로통해졌습니다.

 “미리 말하면 당신이 내 걱정을 할까 봐 그랬소. 발밑이 파이면 우리는 그냥 넘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당신에게 아기를 꼭 보여주고 싶었소.”

 천하대장군의 자상한 말에 지하여장군은 감동을 하였습니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하던 아내의 마음을 사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하여장군은 남편의 발밑에 있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쫑긋거리는 코끝이 어찌나 귀여운지 빨리 품에 안아보고 싶었습니다. 비가 걷힌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름이 걷히며 환하게 밝아왔습니다.

 “이리 오렴 얘들아. 이제부터 내가 너희들 엄마란다. 어머나, 저 하품을 하는 것 좀 봐. 정말 귀엽네.”

 지하여장군의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천하대장군의 입가에도 웃음이 고였습니다. 하품을 하던 아기두더지들은 이리저리 땅 위를 둘러보다가 쪼르륵 나와서 엄마의 발밑으로 파고듭니다. 땅을 잘 다스리는 지하여장군의 품이라면 안심입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웃음소리가 새벽길에 퍼져나갑니다.

 버드나무는 두 부부가 무슨 이야기를 하나 기웃기웃하지만 알 수가 없어서 궁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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