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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등 Jul 13. 2024

냥꾸의 탄생

  냥꾸의 탄생



두 다리를 쭉 뻗고 팔을 늘어뜨린 채 몇 시간을 앉아있었는지 모른다. 나뭇잎 사이로 태양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작은 새들은 우르르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모든 풍경이 낯설고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보, 당신이 나가서 말을 해야만 해. 더 이상은……”

걱정이 가득 담긴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목을 왼쪽으로 180도 돌려 등 뒤를 보았다. 목이 180도 돌아간다는 사실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등 뒤에는 줄기가 잘려나간 나무 밑동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썩어가는 굵은 뿌리 위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왜 여기에 앉아 있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태양이 자리를 옮겨 뜨겁게 내리쬐자, 놀랍게도 손가락 세 개가 움직이더니 점차 모든 손가락들이 자연스러워졌다. 손가락으로 주변에 있는 돌멩이를 튕기거나, 풀을 뽑거나, 노크를 하듯 땅을 톡톡 두들겨 보기도 하였다. 무엇인가 생각이 날 듯 말 듯하여 더욱 애가 탔다. 

“아아, 이러다간 아이들이 모두 죽고 말아.”

조금 전 들렸던 목소리였다.

“누, 누구니? 어디에 있는 거야? 제발 나랑 이야기 좀 해 줘.”

저절로 소리가 목구멍에서 나왔다. 잠시 후,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지 마, 돌아보면 널 물어버리겠어.”

협박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절로.

“그, 그래 돌아보지 않을 게. 그런데 아이들이 모두 죽는다는 말이 무슨 뜻이야?”

“정말 모른단 말이야? 네가 계속 이곳에 앉아 있으면 우리 집이 무너지고 아기들이 위험해. 제발 부탁이야. 이제 그만 가 주면 좋겠어.”

등 뒤의 목소리는 태도를 바꾸어 이번에는 사정하듯 말했다. 

“미, 미안해. 일어설 수가 없어. 움직여지지 않아. 그리고 내가 왜 여기에 앉아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 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아무것도.”

등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최대한 솔직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한숨 소리만 들렸다. 이어 바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뻗은 두 다리를 따라 흙이 들썩거리며 내려갔다. 마치 뱀이 땅속으로 기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발바닥이 있는 곳에서 땅을 뚫고 불쑥 무엇인가 고개를 내밀었다. 완전히 내밀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뾰족한 코끝만 겨우 보일 정도였으니까.

“휴우,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뾰족한 코는 낮게 중얼거리더니 사라졌다. “이 봐!”하고 다급하게 불렀지만 더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대신 엉덩이 아래쪽에서 또 소리가 들려왔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야! 당장 꺼지라고 해!” 

인정머리 없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 사실 같아. 이렇게 될 줄은…… 아아 이렇게 될 줄은.” 

이번에는 뾰족한 코가 하는 말 같았다. 그 후,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훌쩍이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기억이 없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몸을 움직여 보려고 힘을 주었지만 목과 손가락만이 겨우 움직여질 뿐이었다.

태양은 지루하게 머리 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태양이 있는 동안 점점 더 기운이 났다.

“돌! 풀! 기어오르는 것은 개미!”

시간이 지나자 어떤 것은 저절로 기억이 나고, 어떤 것은 더듬더듬 생각을 오래 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 자신을 향해 “냥꾸!”라고 부르는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냥꾸! 저기야!” 분명 누군가가 그렇게 자신을 향해 소리쳤다.

“냥꾸? 냥꾸가 내 이름인가?”

냥꾸는 기뻤다. 이제 곧 모든 것이 분명하게 기억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숲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깜깜해졌다. 놀랍게도 숲 속은 그제야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날개가 퍼덕거리는 소리, 쫓고 쫓기는 소리, 누군가 속닥거리는 소리, 벌레들이 나뭇잎을 갉아먹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냥꾸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몇 개는 해석이 가능하였지만 대부분은 알 수 없었다. 소리들은 머물러 있지 않고 바람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것 같았다. 

어둠이 계속되자 냥꾸는 스르르 정신을 잃었고, 다음 날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눈을 떴다. 그리고 저절로 또 하나 알게 되었다. 냥꾸의 머리에는 태양에너지를 받는 안테나가 두 개 있다는 것을. 

“난 햇빛을 먹고사는구나. 빛을 먹고사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야.” 

냥꾸는 중얼거리며, 햇빛을 더욱 많이 얻기 위해서 머리 위 안테나를 높이 올렸다. 힘이 솟는 듯했다. 이번에는 목을 360도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동서남북을 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자신이 꽤 근사하고 쓸모 있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크고 작은 나무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이고, 물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머지않은 곳에 계곡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너를 쭉 지켜보았어.”

왼쪽 숲에서 불쑥 나타난 것은 고라니였다. 고라니라는 건 저절로 알 수 있었다. 

“고라니구나! 난 냥꾸야. 아직 이름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어. 넌 날 알고 있었니?”

“널 아냐고? 이 숲에서 너를 모르는 동물은 없을 걸? 너는……, 아무튼 이제 넌 움직일 수 없구나. 그건 다행이야.”

고라니는 여전히 경계를 하며 조금씩 다가섰다. 

“내가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다행이라니, 너무해.”

냥꾸는 고라니가 말을 걸어준 것은 고맙지만, 꼼짝 못 하는 처지를 다행이라고 한 건 섭섭했다. 고라니는 사과하지 않았다. 커다란 귀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코끝을 쫑긋거리며 냥꾸의 다른 냄새를 맡으려고 애쓸 뿐이었다.

“나에 대해 알고 있으면 제발 알려 줘. 난 누구니? 난 왜 여기에 있게 됐어?”

냥꾸는 목을 빙그르 360도 돌리며 물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팔을 들었다 내렸다 반복했다. 두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고라니가 뒤로 물러섰다. 

“놀라게 해서 미안 해. 엉덩이와 다리는 아직 움직일 수 없어.”

냥꾸는 진심으로 말했다. 고라니는 큼큼 두 번 헛기침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냥꾸를 뚫어지게 보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너의 무게 때문에 네 엉덩이 밑에 살고 있는 두더지 집이 무너질 것 같다는 거야. 이제 막 태어난 아기들도 있어. 정말 위험한 상황이야.”

냥꾸는 어제 만났던 뾰족한 코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뾰족한 코가 두더지였구나. 두더지에겐 미안하지만, 내 처지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네가 엉덩이를 조금 들어서 뒤에 있는 나무 밑동에 앉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고라니의 말을 듣고, 냥꾸는 목을 빙그르 돌려 등 뒤 나무 밑동을 다시 보았다. 앉아있기에 딱 좋아 보였다. 하지만 엉덩이를 들어 올려 뒤로 약간 움직여야만 앉을 수 있다. 지금으로선 불가능해 보였다. 

“누가 도와준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냥꾸가 중얼거렸다. 고라니가 냥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 말고도, 넌 확실히 뭔가 달라진 것 같아. 도와줄 누군가가 있는지 알아보고 올게.”

고라니는 돌아서 숲으로 들어갔다. 태양이 높이 떠올랐으므로 냥꾸는 조금이라도 힘을 기르기 위해 따가운 햇살을 마음껏 빨아들였다. 어쩌면 벌떡 일어서는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때, 흰 뺨을 가진 박새 한 마리가 날아와 냥꾸의 다리에 앉았다. 

“박새구나.”

냥꾸가 친절하게 말했다. 박새는 콩콩 뛰며 냥꾸의 몸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냥꾸가 팔을 올려 손바닥을 펼치자 박새는 아무 의심 없이 포로로 날아 손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까만 눈동자로 냥꾸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 정말 소문대로 움직일 수 없구나!”

냥꾸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구나 기억도 나지 않아. 내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그래? 그것 참 잘 됐군. 그럼 부탁하나 해도 될까?”

냥꾸는 자꾸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기억나는 것도 없고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만나는 동물마다 당장 꺼지라거나, 다행이라거나, 잘 됐다고 하는 건 좀 섭섭했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 뭔데?”

냥꾸는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박새에게 물었다.

“네 이마에 구멍이 난 거 알고 있지?”

“구멍?”

냥꾸는 서둘러 자기 이마를 만져보았다.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손가락 세 개가 들어갈 만한 구멍. 세상에! 구멍은 뒤통수까지 뚫려있었다. 냥꾸는 당황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마에 구멍이 있는 동물도 있니?”

냥꾸가 박새에게 물었다.

“글쎄, 그런 동물은 아직 보지 못했어. 구멍이 생긴 뒤에 다시 살아 난 동물도 보지 못했어.  난 아무래도 괜찮아. 너만 괜찮다면 구멍 안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싶어. 여기라면 안심하고 알을 낳아도 될 것 같아.”

냥꾸는 화들짝 놀랐다.

“내 이마에 둥지를 만들겠다고?”

박새는 못 들은 척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가 콩콩 뛰었다.

“역시 튼튼하군. 여기는 까치독사나 도마뱀 따위는 올 수 없을 거야. 비가 와도 괜찮을 것 같고.”

“그래? 그렇게 마음에 든다면 그렇게 해.”

냥꾸는 흔쾌히 승낙했다. 박새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털을 모으기 위해 숲 속으로 날아갔다. 약간 예의가 없어서 함께 살아도 괜찮은 건지 마음에 걸렸지만, 작고 약한 동물이라 한 번은 이해해 주기로 했다. 냥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마에 구멍이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고 아무런 느낌도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구멍이 있었던 걸까? 냥구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때 숲으로 갔던 고라니가 돌아왔다. 제법 힘이 세 보이는 원숭이가 고라니 뒤에서 나타났다. 원숭이는 주변을 뱅글뱅글 돌다가, 정말 움직이지 못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긴 꼬리로 냥꾸의 여기저기를 간질였다. 하지만 냥꾸는 간지럼을 타지 않았다. 냥꾸가 팔을 들어 올리자 원숭이는 화들짝 놀라 나무 위로 펄쩍 뛰어올라가 요란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팔은 잘 움직이게 됐어. 하지만 엉덩이와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아. 이마의 구멍 탓인 것 같아.”

“사냥꾼! 우리를 헤칠 생각은 하지 마! 우리는 숫자가 많아!”

원숭이가 소리쳤다.

“사냥꾼? 그게 내 이름이니? 냥꾸가 아니고?”

“냥꾸? 푸하하하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나 보군. 인간은 너를 사냥꾼이라고 불렀어. 내 귀로 똑똑히 들었거든.”

원숭이는 여전히 나무 위에서 소리쳤다.

“무슨 말이야? 좀 더 자세히 말해 줘.”

냥꾸는 놀라 나무 위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고라니가 급하게 땅을 긁으며 원숭이에게 눈치를 줬다.

“지금은 그런 말 할 때가 아냐! 냥꾸를 나무 밑동에 앉혀야 해. 원숭이야! 내려와서 냥꾸를 좀 도와줘.”

고라니가 소리쳤다. 하지만 원숭이는 고라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나무 저 나무를 건너뛰다가, 썩은 나무를 우지끈 밟고 떨어질 뻔했지만 잔가지를 잡고 겨우 땅으로 내려왔다.

“사냥꾼을 어떻게 믿어! 옆으로 다가서는 순간 저 손에 잡히면 내 목숨은 끝장이 날 걸? 그렇게 당한 동물이 한두 마리가 아니잖아!”

“내, 내가 그, 그렇게 많은 동물을 죽였어?”

냥꾸는 자신의 과거가 사냥꾼이었다는 사실에 어쩔 줄 몰라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넌 사냥꾼이라고! 동물을 마구 잡는 사냥꾼 로봇! 네 손바닥에서 그물이 나오는 것도 본 적 있어! 그물로 네가 동물을 가두면 인간이 나타나 동물에게 총을 쏜 뒤 끌고 갔지.”

원숭이는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지 부들부들 떨었다.

"네가 나타나면 숲 속은 그야말로 전쟁터였어!"

원숭이는 냥꾸를 노려보며 다시 한번 쏘아붙였다.  냥꾸는 자신의 손바닥을 보았다.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손바닥일 뿐이었다. 고라니는 원숭이를 말리려고 여러 번 눈짓을 줬지만 원숭이는 막무가내로 술술 진실을 말했다.

“네가 고라니를 발견하고 그물을 펼치려고 할 때, 두더지가 땅을 파서 너를 넘어뜨리고 고라니를 구해준 거야. 네가 넘어지는 바람에 인간이 조준한 전자총이 네 이마를 맞추었고 구멍이 생기고 말았지. 난 나무 위에서 모두 봤어.”

원숭이는 여전히 경계하며 멀찍이 떨어져서 말했다. 냥꾸는 원숭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자기가 사냥꾼 로봇이라는 것도, 자기 때문에 많은 동물이 죽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 그런데 인간은 왜 나를 데려가지 않은 거야?”

“모르지. 너를 이리저리 흔들어보다가 여기에 앉혀놓고 그냥 갔으니까. 네가 망가진 것을 알고 버렸겠지.”

원숭이는 말을 마치고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모든 것을 알게 된 냥꾸가 벌떡 일어나 사냥꾼으로 돌아간다면 그건 정말 큰일 날 일이다. 원숭이는 부르르 떨며 되도록 높은 나무 위로 올랐다. 냥꾸는 고라니를 보았다.

“고라니야, 기억은 없지만 미안해. 내가 너의 목숨을……”

냥꾸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니 너의 탓이 아니었어. 너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로봇이었으니까. 지금의 너는 달라. 사냥꾼이 아니고 냥꾸야. 냥꾸로 다시 태어난 거야!” 

고라니는 진심으로 말했다. 냥꾸는 그렇게 말해주는 고라니가 고마웠다. 고라니를 위해서도, 두더지를 위해서도 힘을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팔에 힘을 꾹 주고 몸을 올려 뒤쪽으로 움직이려 했으나, 자기 몸이 무척 무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저절로’가 아니다. 정말 무거워서 팔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고라니도 머리를 숙여 냥꾸의 발바닥을 밀었다. 멀리서 흙이 들썩거렸다. 두더지 부부가 걱정스럽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냥꾸는 있는 힘을 다해 팔에 힘을 주고 뒤로, 뒤로, 조금씩 움직였다. 이 모습을 본 원숭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무 위에서 내려와 말없이 냥꾸의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두더지가 소리쳤다. 

“조금만… 조금만…” 

원숭이도 숨을 헉헉 몰아쉬며 외쳤다. 냥꾸는 팔에 온 힘을 다 쏟아부었다. 그래서 겨우 나무 밑동에 엉덩이 한쪽을 약간 걸치게 되었다. 냥꾸는 햇살을 더욱 흠뻑 빨아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그루터기에 제대로 걸터앉을 수 있게 되었다. 와아, 들썩거리는 흙속에서 탄성이 나왔다. 냥꾸는 겨우 안심이 되었다. 원숭이도 힘이 들었는지 옆에 털썩 앉았다. 

“도와줘서 고마워.”

냥꾸가 원숭이를 보며 말했다.

“다시는 동물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원숭이가 귀를 긁으며 겸연쩍게 말했다.

“당연하지. 내 안에서 사냥꾼의 기억은 사라졌어. 난 냥꾸로 살아갈 거야. 이제부터 동물을 해치는 일은 없을 거야.”

냥꾸가 미소 지었다. 원숭이도 두더지도 냥꾸를 바라보는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박새가 입에 잔뜩 털을 물고 돌아왔다. 그리고 냥꾸의 이마에 있는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갔다. 

“머리를 함부로 흔들어선 안 돼!”

박새는 까칠하게 말했다. 

“너무하지 않아?”

고라니와 원숭이는 동시에 한마음으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새는 구멍이 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깨끗하고 튼튼한 집에서 첫 번째 알을 낳을 준비를 했다. 냥꾸는 웃기만 했다.  두더지도 고라니도 냥꾸를 따라 살며시 웃었다.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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