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로봇
“이건 살아있는 것이 아니야. 잘리지도 않고 먹을 수도 없어.”
짤각짤각 집게발을 움직이며 큰발이 외쳤다. 큰발은 바닷게이다. 왼쪽 집게발이 유난히 커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위틈에 숨어 눈치만 보던 풀게들이 큰발의 말을 듣고 우르르 다가왔다.
“아무래도 사람을 닮았는데?”
똘망한 풀게 한 마리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모두 그 말에 동의하듯 집게발을 짤각거렸다.
“천만에! 사람은 이렇게 딱딱하지 않아! 이건 오히려 내 집게발이 부러질 지경이라고!”
큰발도 지지 않고 말했다. 큰발의 말을 듣고 풀게들은 조심스럽게 달려들어 여기저기를 두들겨보았다. 사람을 닮았지만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딱딱한 그것이 눈을 번쩍 뜨고, 손가락을 움직이자 풀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사라졌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바위틈이나 모래사장에 숨어서 두 눈을 쏘옥 올리고 알 수 없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뜨거운 햇살이 눈부신지 눈을 가늘게 뜨고 한동안 하늘을 보았다. 발밑으로 바닷물이 철썩철썩 밀려오고 있었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지루해진 풀게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눈 뜬 거 봤어? 역시 사람이었어.”
“그런데 왜 움직이지 않지?”
“저러다가 바닷물에 잠기겠는걸.”
“벌써 몇 시간 째야. 왜 저러고 있는 걸까.”
“아직 살아있기는 해. 손가락이 움직이잖아.”
풀게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생각에 잠겨있던 큰발은, 알 수 없는 그것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큰발은 게거품을 꿀꺽 삼킨 뒤, 집게발로 그것을 툭툭 건드렸다. 그것은 머리만 돌려 큰발을 볼 뿐이었다.
“이 봐, 움직일 수 있는 거야?”
큰발이 물었다.
“응.”
그것이 짧게 말했다.
“그럼 앉아 봐! 조금 있으면 바닷물이 너를 덮칠 거야. 벌써 네 무릎까지 찼잖아.”
그것은 그제야 부스스 일어나 앉으며 자신의 발을 보았다. 그뿐이었다. 놀라운 이 광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위틈 풀게들은 일제히 두 눈을 더욱 높이 올렸다.
“이 봐, 이대로 있으면 안 돼! 네가 물고기가 아니라면 빨리 저 위로 올라가야 해. 곧 바닷물이 언덕 중간까지 찰 거야.”
큰발은 집게발을 들어 언덕을 가리켰다. 바위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풀게들은 다시 “사람이 맞다.”라고 외치거나 “절대 사람은 아니다.”라고 반박하며 떠들썩해졌다. 무척 시끄러운 바닷가였다.
“명령이 있어야 해. 난 로봇이거든.”
“로봇? 로봇이 뭐야?”
“몰라.”
자기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그럼, 누가 너에게 명령을 하는데?”
“몰라.”
큰발은 어이없었다. 그 사이에 바닷물은 슬금슬금 기어 올라와, 로봇의 두 발을 덮었다.
“너 물속에서 살 수 있니?”
“몰라.”
“뭐? 아는 것이 뭐야?”
“몰라.”
“휴우, 몰라! 몰라! 몰라만 아는구나. 아무튼 물에 잠긴 뒤에야 네가 물속에서 살 수 있는지 없는지 알겠구나. 그럼 몰라야 행운을 빈다.”
큰발은 집게발을 절레절레 흔들며 풀게들이 있는 바위 쪽으로 향했다. 몰라는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 엉덩이 아래에서 찰싹거리는 바닷물 위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막 바위에 도착한 큰발은 문득 돌아서 몰라를 보았다. ‘아무래도 지느러미가 없으면 물속에서 살 수 없어. 몰라는 아가미도 없잖아.’ 큰발은 휴우, 한숨을 깊이 내 쉬었다. 작은 바위들은 이미 물속에 잠겨서, 풀게들의 수다도 잠잠해졌다. 큰발은 불쑥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빠르게 몰라를 향해 발발발 달렸다.
“몰라! 당장 일어나!”
큰발이 숨을 헉헉 몰아쉬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몰라가 벌떡 일어났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내 명령으로 네가 앉게 된 거였어. 그 생각이 나서 다시 온 거야.”
큰발은 거품을 흘리며 푹푹 웃었다. 몰라도 뻘쭘하게 서서 싱겁게 웃었다.
“일단 저 언덕 위로 올라가! 그리고 바닷물이 다시 빠질 때까지 꼼짝해서는 안 돼!”
몰라는 큰발의 명령을 듣고 성큼성큼 걸어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 뒤를 큰발이 뻘뻘거리며 따라갔다. 몰라는 언덕 위에 있는 나무 옆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서 큰발이 올라오는 것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이봐, 몰라! 정말 모르는 것이 많군. 이럴 때는 나를 안고 왔으면 좋잖아?”
“몰라.”
몰라가 말했다. 큰발은 기가 막혔다.
“이제 앉아. 여기까지는 물이 올라오지 않으니까.”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살피지도 않고 몰라는 즉시 철퍼덕 앉았다. 하마터면 큰발의 자랑스러운 집게발이 몰라의 묵직한 엉덩이에 깔릴 뻔했다. 아무리 딱딱한 갑옷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해도, 몰라의 엉덩이에 깔리는 순간 산산조각이 날 것이었다. 순발력을 발휘해서 재빠르게 피하지 않았다면……, 큰발은 집게발을 부르르 떨며 몰라를 째려보았다. 생명의 은인을 이런 식으로 대접한다는 것이 불쾌했다. 하지만 따져봐야 ‘몰라’라는 말만 할 것이 뻔했다. ‘몰라서 그런 걸 뭐. 내가 참아야지.’ 큰발은 꾹 참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넌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됐니?”
“난 고기를 잡는 어부 로봇인데 폭풍우에 배가 가라앉았어. 나만 여기로 떠밀려 왔나 봐.”
“뭐? 어부?”
큰발은 놀라 근처 돌멩이 뒤로 순식간에 숨었다. 딱딱한 껍데기가 쪼그라드는 것 같아서, 뽀글뽀글 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그, 그럼 꽃게도 잡았니?”
“응, 사람들은 꽃게를 좋아해. 하지만 지금은 안 잡아. 명령이 없거든.”
몰라는 먼바다를 바라보며 표정 없이 말했다.
“명령이야! 게들은 앞으로 절대 잡지 마. 특히, 나는 절대 잡아서는 안 돼! 이 명령은 영원한 명령이야!”
큰발이 집게발을 위협적으로 들며 말했다. 하지만 몰라는 표정 없이 그냥 ‘응’이라고만 말했다. 점점 어두워지면서 바닷물은 언덕 중간까지 올라와 철썩거렸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몰라.”
다음 날 아침 큰발이 언덕 위로 올라왔을 때, 처참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제는 바위틈에서 구경만 하던 풀게들이 떼로 몰려와서 몰라의 온몸에 다닥다닥 붙었다. 심지어는 머리 위로 올라가 집게발로 통통 두드리는 풀게도 있었다. 풀게들은 이미 몰라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첫째, 명령만 하면 뭐든지 다한다.
둘째, 명령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셋째, 이제 게들은 절대 잡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몰라는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만 안다.
“야, 몰라! 뒹굴어 봐!”
몰라는 뒹굴었다.
“야, 몰라! 맛있는 갯지렁이 좀 잡아 와!”
몰라는 갯지렁이를 잡아왔다.
“야, 몰라! 엉덩이로 춤춰 봐!”
몰라는 엉덩이로 춤을 췄다. 풀게들은 배를 잡고 까르륵 웃었다. 그때 큰발이 집게발을 높이 들어 딱딱 부딪치며 달려들었다.
“너희들, 몰라를 괴롭히지 마!”
큰발이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몰라가 네 건 아니잖아?”
풀게들이 또 까르륵 웃었다. 마구 웃어대다가 자기들끼리 엉켜버리기도 했다.
“몰라! 엉덩이춤을 당장 멈춰! 그리고 풀게들을 쫓아내!”
몰라는 큰발의 명령을 듣고 엉덩이춤을 멈췄다. 그리고 즉시 풀게들을 쫓아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풀게들은 화들짝 놀라 도망치다 넘어지고 엎어지는 바람에 작은 게다리가 떨어지기도 했다.
“잠깐! 명령은 우리도 내릴 줄 알아.”
제법 큰 풀게는 달아나다 우뚝 멈췄다. 그리고 돌아서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 뒤를 이어 다른 풀게들도 모여들었다. 풀게가 몰라에게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 큰발이 약간 빠르게 먼저 소리쳤다.
“몰라! 지금부터 내 명령만 들어야 해! 명령이야!”
“응”
몰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한 수 같은 명령이었다. 큰발은 비로소 안심했다. 풀게가 다가와 몰라에게 “큰발을 걷어차!”라고 명령했지만 몰라는 듣지 않았다.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 명령이기 때문이다. 큰발은 몰라에게 풀게들을 모두 쫓아버리라고 명령했다. 풀게들은 몰라가 나서기 전에 다시 바위틈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위기의 순간이 지나고 잠잠해지자, 큰발은 들어 올렸던 집게발을 내리고 비로소 크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몰라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큰발을 보았다.
“몰라야, 넌 마음이 없어?”
“있어.”
“그럼 왜 네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아?”
“몰라.”
몰라는 시무룩하게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수평선에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흰 구름을 향해 일제히 날아올랐다.
“몰라야, 여긴 무인도야. 여기서 살아가려면 너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해.”
“네가 명령하면 되잖아.”
“하지만 난 언제나 네 옆에 있을 수 없어. 내가 없을 때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큰발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몰라 혼자 무인도에 남게 되면 어떻게 될까 걱정되었다. 누가 제대로 된 명령을 해 줄까. 하지만 몰라는 큰발의 마음도 모른 채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때 수평선을 향해 날아갔던 갈매기들이 바닷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슨 사건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몰라, 저 아래 무슨 일이 생겼나 봐. 나를 안고 일어서 줄래?”
큰발이 부탁했다. 몰라는 꼼짝하지 않았다.
“몰라, 내 말 안 들려?”
“들려.”
큰발은 한숨을 푹 쉬었다. 몰라는 부탁하는 말은 명령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참 답답한 로봇이구나! 몰라! 명령이야. 앞으로 내가 부탁하는 말도 명령으로 들어야 해.”
“응.”
몰라는 배시시 웃었다.
“몰라, 나를 안고 갈매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 줄 수 있겠니?”
큰발이 다시 부탁했다. 그제야 몰라는 큰발을 잡아 손 위에 올리고 성큼성큼 바닷가로 내려갔다.
바닷가에는 돌고래가 떠밀려와, 몹시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고 있었다. 돌고래의 등지느러미는 꺾여 있었고 온몸은 그물에 얽혀있었다. 돌고래의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갈매기들은 돌고래 주변을 돌며 꽥꽥 소리를 지르고, 바위 위로 올라선 풀게들은 눈을 띠룩띠룩 굴리며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돌고래가 떠밀려 왔어!”
“죽었니?”
“죽었나 봐.”
“아냐! 움직여. 움직이는 거 봤어.”
“죽을 거야. 바닷가에 저렇게 있으면 말라서 죽어.”
“그래, 죽을 거야.”
풀게들은 남의 불행이 재미있는지 신나게 떠들어 됐다. 갈매기들은 날카로운 눈을 번득이며 돌고래 위에서 맴돌았다. 먹을만한지 살피는 눈치였다. 큰발은 조심스럽게 돌고래 옆으로 갔다.
“아직 어린 돌고래인 것 같은데…… 어쩌다가……”
돌고래는 대답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지치고 힘들어 보였지만, 겨우 눈을 뜨고 간신히 말했다.
“배 밑바닥과 부딪쳐서 등지느러미가 꺾였어. 거기다가 그물까지……”
큰발은 어린 돌고래가 불쌍했다. 이대로 둔다면 정말 죽게 될 것이다. 큰발은 몰라를 돌아보았다.
“몰라야, 너도 돌고래가 불쌍하지?”
“응.”
몰라가 말했다.
“몰라야, 돌고래는 바다로 가지 않으면 죽게 될 거야. 네가 도와준다면 돌고래는 살 수 있어.”
큰발은 부드럽게 말했다. 몰라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부탁할게. 돌고래를 네가 도와주면 좋겠어. 너는 힘이 세잖아.”
“응, 내가 도울 수 있어.”
몰라는 돌고래 앞으로 성큼 나섰다. 돌고래의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졌다. 갈매기들은 방해꾼이 나타난 것에 대해 불쾌한 듯 더욱 꽥꽥거렸다. 몰라는 돌고래를 도우려고 했지만, 막상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서성였다.
“몰라야, 그물을 벗기고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면 될 것 같아.”
“응. 그러면 될 것 같아.”
돌고래의 그물이 벗겨졌다. 등지느러미는 부러졌지만 아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몰라는 돌고래를 번쩍 들고 바다 깊은 곳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이 놀라운 광경을 갈매기도 보았고, 큰발도 보았다. 물론 풀게들도 보았다.
“저건 명령이 아니잖아?”
“명령이야! 잰 명령만 들어.”
“아니야, 부탁이야. 내가 똑똑히 들었어.”
“부탁도 아니고 명령도 아니었어. 큰발은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말한 거야.”
다시 풀게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풀게들은 거품을 잔뜩 물고 서로 자기 말이 맞는다며 싸우기 시작했다.
기운을 차린 돌고래는 몰라의 주변을 두세 번 돌았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건강해지면 다시 찾아올게.”
돌고래가 말했다.
“응, 다시 찾아와”
몰라가 대답했다.
“안녕.”
“안녕.”
몰라도 인사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돌고래 친구들이 바다 위로 튀어 올랐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돌고래들의 인사가 바다에 가득 메워졌다. 돌고래 떼가 일으킨 물보라를 따라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몰라는 돌고래가 사라진 뒤에도 한참 바다를 향해 서있었다.
“몰라! 정말 훌륭해!”
큰발이 집게발을 딱딱 부딪치며 소리쳤다. 몰라는 큰발을 향해 돌아서 배시시 웃으며, 해변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명령이 없었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