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영웅전설

인류사적 전쟁화

by 라라라

먼저, 이번 글은 진지한 전쟁화 이야기는 아닙니다. 본격적으로 전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함께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모든 글이나 책이 그러하듯 논리적 흠결을 줄이려면 첫 문장, 첫 단락이 중요하지요. 옳은 명제에서 출발해야 이어지는 논리구조 역시 옳다고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보통 유클리드 Euclid라고 부르는 분입니다.)가 쓴 《기하학 원론 the Elements of Geometry》이 완전무결한 저술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첫 페이지를 정의 Defenitions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정의는 "입면체라는 것은 길이, 폭, 두께 등을 가지는 것이다. A Solid is that which has length , breadth and thickneſs."입니다. 혹시라도 혼돈을 줄까 걱정했는지 입면체 그림도 넣어두었습니다. 더 파고 들어가면 머리 아프니까 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저도 수학은 잘 몰라요. 문제풀이가 전부인 한국 수학교육 싫어요. ㅠㅠ)

존 보니캐슬 JOHN BONNYCASTLE 교수가 1808년 번역한 책의 일부




전쟁화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하기 전에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시작을 가볍게(?) 전쟁화의 시초로 잡았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쟁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일까요? 현재 실물로 남아 있는 것 중에서는 아마 알렉산더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가 대결한 기원전 333년의 이소스 전투 the Battle of Issus 장면 모자이크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도 기원전 3세기 작품을 복제한 후세의 작품이지만 기원후 78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매몰되었던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작품이니 오래되기는 오래되었습니다.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알아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알렉산더 대왕과 다리우스 3세는 알아볼 수 있네요.


그런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는 1940년에 발견된 프랑스 라스코 동굴(Lascaux Caves)의 벽화라고 생각합니다. 1만 7천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호모 사피엔스들의 동굴 벽화가 전쟁화라니. 의구심을 가지기 전에 다음의 그림을 보겠습니다.


이 벽화는 라스코 동굴에서 가장 깊은 곳에 그려진 그림 중 하나입니다. 현재의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그려졌는데, 이 장소는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이기도 하고, 이곳으로 내려가려면 3층 높이의 절벽을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장소를 샤프트 Shaft라고 부른답니다. 그림을 잘 살펴보면 사람의 몇 배 크기의 거대한 황소가 있는데, 아랫배에 창 같은 것을 맞고 내장이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황소의 앞에는 이상한 새의 머리를 한 남자(이 벽화를 그린 구석기 화가는 굳이 뾰족한 성기를 장난스럽게 그려 넣었네요.)가 쓰러져 있습니다. 아마 거대한 황소의 배에 창을 찔러 넣다가 뿔에 받쳐 쓰러진 사냥꾼의 모습으로 추측됩니다.


이 벽화를 인류 최초의 전쟁화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변변한 사냥도구도 없이, 단 한순간 실수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거대한 황소를 사냥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투와 다름이 없었을 겁니다. 저 녀석을 죽여서 고기를 먹고, 가죽을 벗겨 추위를 막을 옷이나 덮개를 만들지 못한다면 가족이 죽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이 벽화를 전쟁화로 볼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가족이나 부족의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냥하는 모습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에 그런 어마어마한 위험성 때문에라도 황소 사냥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겠지요. 실제로도 유적에 남아 있는 동물의 뼈들을 살펴보면 거대한 소보다는 사냥하기 쉬운 작은 동물, 예를 들어 쥐, 토끼, 사슴 같은 것들을 주로 잡아먹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사냥도구도 찌르기보다는 멀리서 던지는 용도로 만들어진 창이었습니다. (반면에 네안데르탈인은 찌르기 창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위협적인 뿔을 달고 있는 황소를 직접 찌르며 사냥했다는 것은 당시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위대한 영웅적 사건이었을 겁니다.


벽화 속 남자가 살아남아 가족들과 황소고기를 맛나게 먹었는지, 아니면 오랜 굶주림에서 호모 사피엔스 일족을 구원하고 목숨을 잃은 영웅이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동굴의 가장 깊고 신성한 곳에 후손들을 위해 그림으로 남겨야 했을 정도로 그의 사냥은 중요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벽화를 분석해보면 사냥꾼은 얼굴이 새의 그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조금 더 아래에 새가 횟대에 달려있는 모양으로 보아 그가 속했던 부족은 새를 숭상하는 부족이었겠죠. 부족을 위해 거대한 황소를 사냥하고 죽은 사냥꾼은 영웅이었기 때문에 부족을 상징하는 새가 되어 영원히 칭송받았을 겁니다.


다른 이유는 이 벽화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생존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벽화가 구석기인들을 살렸다고? 뭔 소리야? 워워~~ 진정하고 차근차근 들어보세요. 진화생물학자들은 인류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유력한 가설은 태초에 하느님이 자신의 모습으로 형상을 빚....... 아닙니다.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하고, 심지어 평균수명도 짧았던 (네안데르탈인들이 30대 중반까지 살았던 것에 비해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를 분석해보면 15살 정도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우습게도 지금의 고양이나 개 정도의 수명이지요.) 평범한 포유류가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는 우세종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다양한 가설들 가운데 가장 유력한 설은 호모 사피엔스가 한 세대의 지식을 다음 세대에, 그 세대를 넘어 다다음 세대까지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는 것입니다. 추측하건대 당시 구사했던 언어는 아직 정교하지 못했고, 심지어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왜곡되었습니다. 자식 세대를 건넌 그다음 세대에게 지식을 전달해주기에는 생존기간도 너무 짧았어요. 하지만 이 호모 사피엔스들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를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 즉 그림을 발명했습니다. 호모 그라피쿠스 Homo Graphicus의 탄생이었던 겁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동시대에 생존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이 덩치도 더 크고, 당연히 힘도 강했을 것으로 봤습니다. 심지어 코도 더 컸대요. 그들이 남긴 석기를 봤을 때 더 똑똑했을 것이라고 추청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전자 지도 해석까지 가능해진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피부색과 머리색도 밝았다네요. 유럽인이네.......) 그런데 그런 네안데르탈인들이 우세종이 되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학자들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자연교배 과정에서 흡수되었다는 등 다양한 가설이 있지만, 그중 유력한 설명이 그림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우월했지만 지식의 축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후 등 급격한 환경변화가 찾아왔을 때 호모 사피엔스들은 축적된 정보와 지식으로 더욱 발달된 도구, 예를 들면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이나 사냥에 쓸 덫, 그물 등을 만들며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후대에 전달되지 못한 네안데르탈인들은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는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라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이유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라스코 동굴 벽화를 전쟁화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벽화가 종족의 단합과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지구상에도 아프리카와 호주, 동남아시아 등지에 당시와 유사한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원시적인 부족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들도 라스코 동굴 벽화와 비슷한 작품들을 만들고 있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그들에게 살랑살랑 아부하며 조심히 접근해서 이유를 물어보고 연구했습니다. 아직까지 원시적인 생활풍습을 유지하는 부족들은 매우 배타적인 성격이 강하거든요. 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그들이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벽화들은 그들 나름의 역사서였습니다. 물론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벽화로 남긴 것들은 자신의 부족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사건이나 사고, 후손들이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벽화를 그릴 수 있는 사람도 주술사나 부족장 등 소수의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기도 하구요.


인류가 전쟁화를 그려온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 발짝 물러서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쟁이란 거주지역, 종교, 역사, 민족, 사상들과 같이 배타적 동질성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 다른 집단과 이러저러한 이유로 충돌한 순간입니다. 이 순간을 후손들에게 영원히 그림으로 남김으로써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것, 그것이 전쟁화를 그려온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는 그런 측면에서 인류사에서 빼놓을 없는 중요한 최초의 전쟁화라고 조심스레 추천해 봅니다.




참고자료

Euclid, John Bonnycastle, the Elements of Geometry: the Forth edition, London, 1808.

양정무, 난처한 미술 이야기 1, 사회평론, 서울, 2016.

keyword
이전 01화전쟁화 戦争画 War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