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화를 통해 무엇을 볼 것인가?

미술사적 전쟁화

by 라라라

앞선 글에서 무엇을 "인류 최초의 전쟁화"로 볼 것인가라는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뭐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전쟁의 본질이었습니다. '전쟁화를 통해 무엇을 볼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전쟁화를 구성하고 있는 전쟁, 그림, 그리고 그림 안에 담겨 있는 것 등 질문 자체를 하나하나 해체해서 요소들로 환원시켜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워워~~ 그렇다고 이제부터 환원주의 還元主義 reductionism를 이 주제로 가져와서 함께 철학적 고민을 하자는 말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저는 잘 몰라요. ㅠㅠ)


먼저 앞선 1부에서 예로 들었던 그림을 다시 보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전쟁을 그린 예술작품이 궁금해서 자료를 찾으신다면 가장 오래된 작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등장하는 대표적인 것입니다. 제작된 시기를 추측해볼 때 이것보다 오래된 작품을 찾을 수는 없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죠. 그런데 실제로 그럴까요? (참고로 전쟁화를 제가 소제목에 달았던 것처럼 War Painting으로 검색하시면 근대 이후 작품밖에 보실 수 없을 겁니다. 진지한 학문적 분류로 보자면 Military Art로 찾아야 합니다. Art of Military로 검색하시면 안 됩니다. 그럼 이게 전쟁술이라는 의미가 되어서 '손자병법'이 나올 겁니다.)


인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전쟁을 소재로 다룬 조형작품은 엄청 많습니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나르메르 팔레트 Narmer Palette.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딱 봐도 엄청 오래된 유물처럼 보이죠? 나르메르 팔레트 Narmer Palette라는 유물로 기원전 310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나르메르 왕은 역사상 최초로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를 통일하고 이집트 1왕조의 1대 왕이 된 인물입니다. 이 유물은 그가 통일 전쟁으로 거둔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내용을 알아볼 수 있게 의도적으로 채색한 버전을 보겠습니다.


왼쪽을 보면 나르메르 왕이 적의 머리를 곤봉처럼 생긴 무기로 내려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래에는 나머지 적군들이 놀라 달아나고 있습니다. 오른쪽 면을 보면 나르메르 왕이 신들을 상징하는 깃발을 앞세우고 개선하고 있습니다. 그 옆으로 목이 잘린 적군의 숫자를 기록해두었군요.


물론 이 장면은 실제 전투장면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상징하는 아주 복잡한 상형문자로 봐야 한다고 하네요. 그래도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 나르메르 왕과 그가 세운 업적을 기록한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합니다.


"아니, 그래도 주제가 전쟁화인데 제대로 된 평면에 물감이나 안료를 사용해 그려진 것으로 한정해야 하는 거 아뇨?"라고 물으시는군요. 위 팔레트가 전쟁화라고 하기에는 생생한 전투장면 묘사가 부족하고 회화적 웅장함도 찾아보기 어려운 문장에 불과하다고요? 그럼 이건 어떤가요?


채색된 나무 상자 Painted Wood Chest.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이 유물은 1922년에 정말 기적적으로 발굴된 이집트 투탕카멘 Tutankhamun 왕 무덤에서 나온 것들 중 하나입니다. 무언가를 담을 용도로 제작된 나무 궤짝처럼 생겼네요. 흥미로운 것은 이 상자의 뚜껑과 좌우 기다란 면들에는 투탕카멘 왕이 전차를 타고 군대를 이끌며 적군을 무찌르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투탕카멘 왕의 재위 시기가 기원전 1341년에서 1323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사후 그의 무덤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까지 고려해도 기원전 1300년 경 작품으로 볼 수 있겠죠?


구체적으로 어떤 전투를 그린 것인지,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단순히 장식용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재위기간이 수년에 불과하고 그나마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때문에 요절한 어린 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 투탕카멘 왕 미라를 분석해 본 결과 무기 같은 것으로 입은 상처가 사인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정적이 암살했을 거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저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전투에서 용맹하게 앞장서다가 입은 상처였을지도 모르지요.


"그래도 역사(실제로 있었던 사실에 대한 기록)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저건 아니지. 실제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수 없는 전투장면을 묘사한 것은 인정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투탕카멘 왕으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고대 이집트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명한 람세스 Ramesses 2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이집트를 최전성기로 이끈 군주였습니다. 당시 영토확장 과정에서 충돌한 히타이트 군대와 치른 카데시 전투 Battle of Kadesh를 묘사한 작품이 아부심벨 신전에 남아있습니다. 카데시 전투는 옛 이집트의 영토인 팔레스타인 지역을 수복하기 위한 전투로 기원전 1274년 5월 12일에 벌어진 것으로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인물을 크게 그리는 것이 당시 화풍이었기 때문에 람세스 2세가 성벽보다 거대하네요. 뭐 어찌 되었든 카데시 전투는 실제 벌어진 전투였으며, 그 결과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그 내용을 비석에 새겨두었습니다. 기원전 1258년에 제작된 이 평화조약비는 전쟁 당사국들의 문자, 히타이트 쇄기문자와 이집트 신성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기록상 남아 있는 세계 최초 평화조약입니다. 카데시 조약의 히타이트어 원본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사본은 평화의 상징으로 뉴욕의 유엔 본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카데시 전투를 새겨놓은 저 부조가 역사상 실제 전투를 묘사한 최초의 전쟁화라는 타이틀을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요?

카데시 평화조약비.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하지만 앞에서 예로 든 작품들은 실제로 미술사에서 "최초의 전쟁화"라는 타이틀을 얻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Military Art로 분류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인 알렉산더와 다리우스 전투 장면도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그림이 아니라서? 예술성이 부족해서? 아닙니다. (논란의 여지는 다소 있겠지만) '미술 Art이란 무엇인가'라는 관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관점을 설명하려면 먼저 미술사에서 '최초의 전쟁화'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을 먼저 소개해야 할 듯합니다.

위 세 작품은 1432년 6월, 이탈리아의 피렌체 Florence와 시에나 Sienne 간에 벌어진 산 로마노 전투 Battle of San Romano를 그린 연작입니다.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 중 한 사람인 파울로 우첼로 Paolo Uccello가 메디치 가문의 주문으로 그린 세 작품입니다. 현재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각각 소장되어 있습니다. 미술 평론가들은 우첼로가 그린 산 로마노 전투를 "미술 역사상 실제의 전쟁을 다룬 최초의 작품", "전쟁이라는 주제를 예술작품 안으로 가져온 최초의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평가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의문이 들더군요.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진정한 미술작품이란 무얼 의미할까? 도구(캔버스, 물감)도 아니고, 형식(회화, 부조)도 아니고, 내용(영웅, 전투)도 아닌 듯합니다. 그런 것보다 그리는 사람(예술가)과 그 작품에 담겨있는 생각(사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고대의 많은 작품들도 기교와 완성도, 그리고 소재의 측면에서 전쟁을 묘사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고대의 어떤 작품도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지만 정작 그 작품을 만든 예술가의 이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술가가 그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본인만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저 권력자의 요구에 따라 당시의 문화적, 역사적 관습에 맞춰 자신의 기예를 동원해 만들어 주고 보수를 받았을 뿐입니다. (물론 제가 단순히 무지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전쟁화를 주문한 사람, 그리는 사람,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수요자, 이렇게 세 가지 주체로 구분한다면 르네상스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에는 예술가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저 주문자의 요구에 맞춰 제작해 납품하는 공산품에 불과했습니다.


파라오가 죽은 다음 무덤을 장식하거나 신전 기둥에 벽화나 조각을 새겨 넣는 작업에는 대규모의 인력이 동원되어 오랜 기간 작업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완성도가 높다고 해도 그것들을 진정한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제시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관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가 바로 '복제품'입니다. 기교가 뛰어난 어떤 예술가가 유명한 작품을 완벽하게 재연해 냈다고 합시다. 원작을 오래 연구한 전문가들도 감탄할 정도로 정밀한 복제품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작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거금을 들여 구매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예를 들어, 최신 휴대전화나 자동차 같은 것을 보면 '야아, 이걸 어떻게 만들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심지어 완벽한 비례, 화려한 색감, 다양한 직선과 곡선이 만들어내는 미려함, 그리고 개인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걸 보고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물론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라고 감탄하기는 합니다.) AI가 그려낸 작품을 진정한 예술작품으로 평가하는데 많은 논란이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하겠습니다.


에른스트 곰브리치 경 Sir Ernst Hans Josef Gombrich은 서양미술사 The Story of Art라는 유명한 저서를 "미술(Art)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미술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 예술가가 겪은 인생이나 당시 처했던 환경에 한 번도 처해 본 적이 없고, 그가 그린 소재와 대상이 그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유사한 시기에 그려진 동서양 전쟁화를 비교보며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동양사상 전문가들은 곰브리치 경과 같은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사고 思考'로는 동양적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상식적 믿음이 보편적인 진리이고, 서양적 이성을 결여한 문화는 비합리적이기에 교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The Story of Art의 한글제목이 서양미술사인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이진민 작가님의 "전쟁이 미술 작품으로 다루어진 모습을 쭉 따라가면 인류 이성의 역사를 또렷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관점에 공감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의 전쟁화를 '제대로' 읽어 내려면 그 작품과 연관된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다다를지 모르겠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전쟁화를 읽어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서 인류가 살아온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신나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철학자들은 철학과 관계 없어 보이는 예술작품에 몰두했고, 그 안에서 철학적 논제들이 품은 실마리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하이데거가 반 고흐를, 샤르트르가 자코메티를, 레비나스가 소스노를, 라캉이 홀바인을, 들뢰즈가 베이컨을, 푸코가 마테를, 데리다가 아다미를 말이지요. (라캉 선생님, 글 너무 어려워요. 아, 돌아가셔서 못 들으시지. ㅠㅠ)



참고자료

양정무, 난처한 미술이야기 1, 서울, 사회평론, 2016.

E. H. 곰브리치, 백승길, 이종승 옮김, 서양미술사(문고판), 서울, 예경, 2013.

김상환 박영선 엮음, 사물의 분류와 지식의 탄생, 서울, 이학사, 2014.

이진민,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서울, 한겨레출판, 2021.

서동욱 엮음,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4.

keyword
이전 02화호모 사피엔스 영웅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