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화 戦争画 War Painting?

by 라라라

전쟁화라고 한다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전쟁을 그린 그림. 현대에 들어서 전쟁기록화로 불려 온 작품들은 특정 전쟁이나 전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을 그린 것들입니다. 생생하고 참혹한 전투 장면, 전투에서 죽은 병사의 시신처럼 화가들이 다양한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내용이나 인터뷰를 바탕으로 화폭에 재현해 놓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전쟁에 사용된 무기 또는 상징을 그린 작품들도 큰 틀에서는 전쟁화라는 범주에 넣을 수는 있겠네요. 그러나 큰 테두리 안에서 전쟁화에 속한다고 해서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대표하거나 그것이 담고 있는 방대한 이야기들을 읽어내는데 충분한 텍스트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화가들이 전달하고 싶은 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그림 안에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중세는 물론 최근까지 전쟁화를 그린 많은 화가들은 그러한 과제를 상상력으로 해결했습니다.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 안에 전투의 시작에서 끝까지, 그 안에 담겨있는 다양한 이야기와 그에 얽혀 있는 인간들을 한꺼번에 그려 넣었습니다.

동래부순절도(東萊府 殉節圖) / 변박 / 1769년 / 육군박물관 소장

위 그림은 보물 제392호로 지정되어 있는 동래부순절도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하나의 화폭에 동래성으로 밀고 들어오는 왜군, 성벽에서 화살을 쏘는 조선군, 불리한 전황을 깨닫고 도망가는 이각, 붉은 조복을 입고 있는 송상헌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담겨 있습니다.


神兵パレンバンに降下す / 鶴田吾郎 / 1942년 / 도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태평양전쟁 초기 츠루타 고로 鶴田五郎라는 일본 화가는 전투가 일어나고 2개월 후 현지를 방문해 생존 장병들을 인터뷰했습니다. 화가는 한 폭의 그림에 당시의 전황을 모두 담고 싶은 욕망이 일었답니다. 쉽지 않은 과제였겠죠. 영화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지만 그림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전투 과정에서 일어났던 여러 장면을 하나로 합쳐 그렸습니다.


사진이라는 고도로 정밀한 대체재가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보아도 그 부분은 결코 대신할 수 없는 방식일지 모르겠습니다. 사진이라는 기술이 탄생한 초기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보조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 Camera Obscura나 카메라 루시다 Camera Lucida와 같은 형태로 말이죠. 하지만 점차 그림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점점 잠식해 가기 시작했지요. 그러한 유행을 당시 예술인들은 저급한 기술이 예술적 가치를 훼손한다고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악의 꽃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는 "재능이 없거나 너무 게으른 화가들의 피난처(Comme l’industrie photographique était le refuge de tous les peintres manqués)"라고 비꼬았답니다.


중세까지 전쟁화를 그리는 목적은 단순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군주나 영웅이 자신이나 자기 편의 업적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영웅의 업적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대중적이고 손쉬운 방법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직접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광대나 재담꾼이 모닥불로 모여들어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것은 드물었겠죠? 넷플릭스 시리즈 위쳐 The Witcher를 보면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이야기꾼이 용을 사냥하는 장면을 술집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노래합니다. 마블 영화 중 하나인 이터널스 Eternals에서도 스프라이트는 동료들의 활약상을 사람들에게 전설로 심어줍니다. 토르: 라그나로크 Thor: Ragnarok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으로 숨어있는 주인공의 동생은 죽음으로 위장한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고 이를 귀족들과 즐깁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영속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화자에 따라 구체적인 묘사나 내용이 조금씩 달라져 시간이 지나면 역사와 신화의 경계가 모호해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제일 확실한 방법은 그림이나 조각으로 남겨놓는 것이었습니다. 전투나 전쟁을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기록할 수단으로 그림만큼 확실한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문장만 넣으면 DALL-E 같은 그림 그리는 AI가 대신 그려주는 놀라운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한 현재와는 달리 과거에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림을 그리는 일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고되고 전문적인 작업이었습니다. 그림의 크기와 시간에 비례해 고객이 지불해야 할 비용도 증가했답니다. 실력이 뛰어난 화가일수록 비용은 더욱 높았습니다. 웅장함을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욕망은 크기만큼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했습니다. 물론 그 전쟁화를 통해서 정치적인 위상이 높아지거나 더 높은 군주로부터 상을 받으면 지불했던 비용은 어느 정도 상쇄되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는 조금 다른 목적이 추가되었습니다. 전의고양 戰意高揚. 말이 조금 어렵게 들리겠지만, 쉽게 말해서 싸움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싸우고 싶게 만드는 것입니다.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는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용병들 대신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대규모의 국민군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16세기에 들어서는 소총을 이용한 대규모 근접교전이 보편화되었답니다. 그렇게 되면서 군대의 지휘관들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바로 앞에서 총을 쏘며 다가오는 적을 향해 제대로 총을 쏘지 못하는 병사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죽는 것이 두려워서 도망가는 것은 물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총구를 제대로 겨누지 못하는 심리적 문제를 겪는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이러한 문제를 발견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지휘관들이 있었습니다. 1860년대 프랑스 대령이었던 아르당 뒤 피크 Ardan du Picp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국 사무엘 마샬 Samuel Lyman Atwood Marshall 장군이 대표적입니다.


전쟁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도 전의고양이 필요했습니다. 국가가 대규모 전쟁을 수행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돈과 물자가 필요하고, 이러한 자원을 동원하려면 일반 국민들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악마 같은 적군의 모습, 그들과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장병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서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은 유명 화가들에게 다양한 전쟁화를 그리게 하고 대규모 전국 순회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볼까요? 우리에게 아직도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6.25전쟁. 그 시기에 국가가 필요로 했던 미술은 국민들에게 반공의식을 고취시키고, 이 전쟁이 수치의 역사가 아니라 나쁜 이데올로기에 맞선 최전선에서 영예로운 자유를 수호하는 성전 聖戰이라고 인식시키는 선전 도구였습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은가?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은?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면?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에서 오는 죄책감, 즉 심리적인 저항감을 낮추기 위한 일은 옳은 일인가? 그럼 그림을 그려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게 만드는 일은? 이러한 다양한 질문들이 우리의 머릿속을 파고듭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순간인 전쟁. 그 전쟁을 가장 아름다운 도구로 그려낸 전쟁화. 그 전쟁화들을 단순히 예술작품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읽어 내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神坂次郎/福富太郎/河田明久/丹尾安典, 画家たちの戦争, 東京, 新潮社, 2010.

보먼트 뉴홀, 정진국 옮김, 사진의 역사, 파주, 열화당, 2003.

Charles Baudelaire, Salon de 1859, Curiosités esthétiques, Michel Lévy frères., 1868, Œuvres complètes de Charles Baudelaire, vol. II (p. 245-358).

로랑 베그, 이세진 옮김,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서울, 부키, 2013.

Marshall S. K., Men against Fire, Gloucester, Peter Smith, 1978.

정준모, 한국미술 전쟁을 그리다, 서울, 마로니에북스,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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