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엄마는 무슨 재미로 사나?』에서는 옆집 엄마(숲 song 꽃 song)가 마흔 즈음에 써 둔 습작글 중에서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일상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연재합니다. 담장너머 옆집 엄마네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웃음, 조그마한 삶의 팁이라도 챙겨가실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누군가 내게 당신의 재산목록 1호가 무엇이냐? 고 묻는 다면, 망설임 없이 말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과 더불어 나눈 추억들이 정리되어 있는 여행파일이다. 해가 갈수록 하나 둘 늘어나는 추억들은 적금통장 불어나듯 파일에 잘 정리되어 서가에 꽂힌다. 지난여름 방학 우린 아주 신나고 즐거운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다.
'9박 10일의 서울 박물관 여행'
언젠가, 신현림 시인의 '시간창고로 가는 길'이라는 박물관 기행 산문집을 읽으며 '우리나라에 이렇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박물관들이 많이 있었구나'하고 놀란 적이 있었다. 박물관도 매력적인 여행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방학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전국 박물관 여행을 떠나보리라 마음먹었었다.
드디어 여름방학. 아이들과 함께 할 의미 있고 신나는 여행을 생각해 보다가 박물관 여행이 생각났다. 머뭇거리다가는 때를 놓칠 것 같아대충 짐을 꾸려무작정 떠나보기로 했다. 남편과 휴가를 맞출 수 없어,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나게 되었다. 머릿속에 대략 서울-경기-청주-공주-부여-대전-광주-목포-영암, 이런 코스를 염두에 두고 딱히 기한도 정하지 않은 채였다.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와 1학년 아들은 커가면서 점점 박물관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모처럼 엄마랑 함께 떠나는박물관 여행이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 기분은 최고였다.
서울에 올라온 후 셋째 날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구내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최고의 박물관을 찾아라'는 책은 애초에 전국에 있는 대표적인 박물관을 찾아서 서울을 시작으로 아래쪽으로 내려가리라 마음먹었던 여행계획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였다. 그 책은 서울에 있는 박물관을 자세히 소개한 안내서였는데, 서울에 있는 박물관만 하더라도 가볼 만한 곳들이 너무 많았다. 계획대로라면 다음날 경기도로 내려가야 할 터였다. 그날 밤, 아이들과 계속 이동하며 각 지방의 박물관을 찾아다닐 것인지, 서울에 있는 박물관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닐 것인지에 대하여 의논하였고 우린 후자를 선택하였다. 날도 더운 여름인 데다 지방으로 계속 이동(버스이용)하게 되면 쉽게 지치고 또 마음이 바빠져서 제대로 박물관을 즐기기 어렵겠다는 판단이었다.
서울에서 꼬박 열흘동안 머물면서,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최대한 서둘러 나와 하루 종일 박물관과 고궁, 미술관등을 찾아다녔다. 조금이라도 해가 남았을 때에는 서울의 또 다른 문화를 즐기며 보통, 밤 9시나 10시가 다 되어서야 여관방에 도착하곤 하였다. 잠들기 전, 아이들은 일기를 쓰고 나는 여행기록과 다음날 일정을 생각해 본 후, 피곤하지만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들 곤 하였다.
하루 일정을 계획할 때 고려한 것이 있었다. 아무리 재미있는 것이라도 두 번 세 번 반복하면 따분한 법, 집중적인 박물관 여행에서 올지 모르는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박물관 한두 곳에 과학관 또는 미술관, 고궁, 63 빌딩, 남산타워, 대학로 등 아이들이 흥미 있어하는 곳들을 적절히 섞어 계획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아주 유효해서 더운 날씨임에도 아이들이 짜증한 번 내지 않고 예정했던 박물관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열흘동안 찾아다녔던 박물관을 꼽아 보면 대충 이렇다. 삼성 어린이 박물관,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 농업박물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지구촌 민속박물관, 아프리카 민속박물관, 국악박물관, 중앙 국립 박물관, 이화여대와 경희대 자연사 박물관, 고려대 박물관, 롯데월드 민속박물관, 이밖에도 인사동 가나아트센터 미술체험, 서울과학관 인체의 신비전, 남산타워의 탈 만들기 체험, 경복궁의 코리아 스케치 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의 마왕퇴 유물전,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직접 본 수중생물들, 63 빌딩의 이집트전 관람,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거리공연 구경과 교보문고에서 문 닫을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 책 보던 일등은 박물관 여행 하러 서울에 올라와 덤으로 얻은 즐거운 문화체험이었다.
9박 10일간의 서울 박물관 여행은 나와 아이들에게 많은 이야깃거리와 즐거운 추억을 남겨 주었다.역사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딸아이에게는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새로운 것에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던 아들에게는 모든 여정이 직접 체험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던 호기심 천국이 되어 주었다. 나에겐 아이들과 함께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서울 박물관 여행을 시작으로 우리에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방학 때마다 지방의 박물관을 집중적으로 여행하며, 전국의 박물관들을 다 찾아다녀보고 싶다. 발품 팔아 박물관 찾아다닌 일은 각자의 기록으로 남겨 때가 되면 한 권의 책으로 엮어보고 싶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의 훌륭한 성장기록이자 우리 가족의 소중한 역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쯤이면 나의 재산목록 1호는 얼마나 풍성한 추억들로 가득할까? 생각만으로도 미리 신나는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