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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song 꽃song Dec 10. 2024

텅 빈 충만

토요 가족나들이

『옆집 엄마는 무슨 재미로 사나?』에서는 옆집 엄마(숲 song 꽃 song)가 마흔 즈음에 써 둔 습작글 중에서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일상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연재합니다. 담장너머 옆집 엄마네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웃음, 조그마한 삶의 팁이라도 챙겨가실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OO아, 즐거운 토요일!" 곤하게 잠든 아들 녀석이 이 한마디에 번쩍 눈을 뜨는 토요일 아침이다. 우리 가족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토요일 오후(그때만 해도 토요일 오전근무, 주 5.5일제)엔 곧장 어디론가 떠나곤 한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은 늘 어떤 설렘과 기대로 시작된다.


 오늘도 퇴근 후 기분 좋게 시골길을 달린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는 길이다. 차 안에는 김영동의 명상음악이 흐르고 우린 한껏 가벼운 마음이 되어 콧노래를 부른다. 차창 밖 풍경에 음악이 흐르니, 보이는 것마다 혼이 서린 듯 깊이 다가온다.

 잠깐 차를 세우고 지도를 본다. 언젠가 들렀다가 너무 많은 인파에 밀려 그냥 돌아온 적이 있는 무주 안성 학습원을 가보기로 한다. 그곳에는 용추폭포와 칠연폭포가 있다.

 남편이 주차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물이 고여있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들여다보다가 급하게 나를 부른다.


 "엄마 엄마, 소금쟁이가 물이 없는 곳에서도 기어 다녀요. 엄마, 소금쟁이가 날기도 하네요."


 그러고 보니 정말 소금쟁이가 마른 시멘트바닥 여기저기에서 기어 다니기도 하고 날아오르기도 한다. 새로운 발견으로 흥분한 우리는 그것들이 노는 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근처에 있는 계곡으로 발길을 옮긴다.

 물은 맑고 차갑다. 환호성을 지르며 아이들은 첨벙! 물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남편과 나는 적당한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이들은 물속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면서 예쁜 돌을 찾겠다고 야단이다. 골라 놓은 돌멩이들은 집으로 가져갈 것이라며 벌써 몇 개째 내 옆에 갖다 놓는다. 바둑무늬의 예쁜 돌멩이가 눈에 띄기에 말해 주었더니, 그것도 집에 가져가고 싶다며 옆에다가 챙겨 놓는다.

"돌멩이는 물속에 있을 때가 더 예쁜 거야."

라고 말해주자, 주워놓은 돌멩이들을 다시 물로 던져 넣며 하는 말.

 "엄마, 정말 물속에 있으니까 더 예쁘네요."




 그곳에서 1.5km 남짓 떨어져 있는 칠연폭포까지 올라가 보기로 한다.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 적당한 산길이다. 산을 오르며 주위의 나무와 풀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눈길을 주고받는다. 자주 본 나무와 풀들이지만 여태 이름을 모르고 있는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서로 물어보고 아는 것은 알려주기도 하며, 나무와 풀이름을 맞혀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눈에 띄는 것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조잘대는 아이들과 함께 걷는 일은 늘 즐겁다. 짧은 시간, 자연과 교감을 나누었건만 아이들의 눈빛에서는 금방 생기가 돈다. 난 아이들의 이런 눈빛이 좋다. 짜인 일상생활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진다. 나는 또 그런 대화가 즐겁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자 아들 녀석이 내게 말한다.


"엄마, 나는 독수리가 되고 싶어. 하늘을 맘껏 날 수 있잖아."

그러더니 다시 고쳐 말한다.

"아냐, 엄마 난 표범이 될 거야. 표범처럼 날쌔고 싶어."

조금 있다가 뭐가 안 되겠는지 다시 고쳐 말한다.

"엄마, 나 그냥 독수리 될래요."

"그래? 그럼 독수리가 되면 약한 동물들이나 새들을 잡아먹기도 하겠네? 그런데, 잡아먹으려는 동물이 한 번만 살려 달라고 애원하면 어떡하지?"

'마음 좋은 호랑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넌지시 7살짜리 아들에게 묻는다.

"그래도 잡아먹어야지. 안 그러면 독수리가 불쌍하잖아."

"잡아먹히는 동물도 마찬가지로 불쌍하잖니?"

"엄마, 독수리도 불쌍해.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다. 죽은 동물을 먹으면 되지 않아요?"

"그러면 맛이 없을 텐데."

"참, 엄마! 독수리는 죽은 것은 안 먹어요. 살아 있는 것만 먹는대요. 엄마, 그냥 풀이나 뜯어먹어야겠어요."

"OO아, 그 풀이 또 제발 자기를 살려 달라고 부탁하면 어떡하지?"

"그럼 죽은 풀을 먹지요."

"맛이 없을 텐데…."


 계속 질문을 던져 보다가 나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긴다. 나라면 어떡하겠는가? 때 묻지 않은 아이의 대답이 듣고 싶어 던진 질문이지만, 실은 삶에서 무시로 맞닥뜨리는 내 안의 질문이고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함박꽃봉오리

 곳곳에 함박꽃(산목련)이 예쁘게 피어 있다. 단단하게 맺힌 하얀색 꽃봉오리가 앙증맞다. 나뭇잎 위에 새가 얌전히 낳은 알 같기도 하다. 딸아이는 연신 새로운 꽃을 발견할 때마다 나에게 알려주기 바쁘다. 그리고 나뭇잎에 노란 꽃잎과 하얀 꽃잎을 얹어보더니 칠연폭포에 가서 띄울 것이라고 자랑한다. 칠연폭포가 생각보다 멀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것저것 볼거리 때문에 힘들다 정하지 않고 잘도 걷는다. 칠연폭포 0.3km라고 새겨진 팻말 옆에 조그맣게 쌓아 올린 돌탑들이 보인다. 어느새 그쪽으로 달려간 아이들은 하나 둘 정성 들여 돌을 쌓아 놓더니 눈을 감고 소원을 빈다. 내가 궁금해서 물으니 비밀이란다. 말을 하면 효험이 없다나!

그래, 너희들도 너희들만의 소원이 있겠지.

 드디어 칠연폭포. 물이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소(沼)가 줄지어 7개나 되어 칠연폭포다. 그 말에 아들 녀석이 " 그럼 6개면 육연폭포겠네?"하고 말한다. 그 순발력을 칭찬하며 7개의 소(沼)를 조심조심 하나씩 확인하며 올라가 본다. 계곡전체에 시원한 기운이 가득하다. 이곳에 조금만 더 있으면 뼛속까지 싸늘해질 것 같다.



 해가 지려면 조금 더 있어야겠지만 그만 내려가기로 한다. 내려가는 길에 남편이 제안한다.

"내려가는 길은 침묵의 시간이다. 말을 하지 않고 내려가 보기로 하자."


 말이 넘쳐 오히려 화가 되는 세상에 남편의 제안 의미 있는 메시지라 생각되어 나도 반긴다. 아이들도 경험이 있어 조용히 따른다.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임을 침묵 속에 걸으며 느낀다. 


 늦었지만 자연학습원도 잠깐 들러본다. 딸아이는 유치원 다닐 때 한번 와 본 적 있다면서 이것저것 알려주기 바쁘다. 아들은 모든 게 다 궁금한 듯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밖으로 나와 물레방아 돌아가는 계단에 앉자 다람쥐 한 마리가 어디서 조르르 달려온다. 뜰 앞의 나무를 보니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나무. 그 옆에는 회양목과 옥향나무. 이 나무 저 나무에 눈길을 주다 보니 산 너머로 꼴깍 해가 넘어간다.


 서둘러 집으로 달려오니 밤 9시 30분. 

한나절을 줄곧 돌아다녔지만 마음만은 그지없이 가뿐하다.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텅 빈 충만'을 알 것 같은 토요일 밤이다.

 < 2003년 7월>                                     





<참고>

*제목 배경 그림: 김나래 작가의 '초원'


*김영동: 국악의 대중화, 우리 음악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온 대금 연주자이자 지휘자, 국악 작곡가이다. 그는 우리의 전통적인 가락을 바탕으로 자연음, 신디사이저, 종교적인 색채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음악에 대한 실험을 계속해나감으로써 한국의 뉴 에이지 음악가로 불리기도 한다.

김영동이 명상음악 禪Ⅱ 중  산행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곡으로 1988년 김영동이 법정스님이 암자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작곡함. 한국의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뉴에이지 음악과 결합시켜 독특하고 깊이 있는 음악적 경험을 제공함.


*함박꽃나무

함박꽃나무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목련류 식물 중 하나로 잎이 성숙하기 전에 꽃이 피는 목련과 달리 잎이 완전히 발달한 후 꽃이 피는 낙엽 작은 키나무이다. 우리나라의 목련 속 식물 가운데 유일하게 꽃이 위를 향하지 않고 옆 또는 아래를 향하므로 구분된다. '산에 자라는 목련'이라는 뜻으로 산목련이라고도 부른다. 북한에서는 '목란'이라 부르며, 국화로 지정하고 있다. 7,8월에 꽃이 피고 낙엽활엽수림의 토양이 비옥하고 습기가 비교적 많은 곳에서 자라며 전국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개체가 모여 자라지는 않고 산지에서 드문드문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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