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엄마는 무슨 재미로 사나?』에서는 옆집 엄마(숲 song 꽃 song)가 마흔 즈음에 쓴 글 중에서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없는 일상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연재합니다. 담장너머 옆집 엄마네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은 웃음, 조그마한 삶의 팁이라도 챙겨가실 것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예요.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트리나 포올러스는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그냥 먹고 자라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있지 않겠느냐고. 나는 그 무엇인가를 내 나름대로 ' 문화(예술)의 향유'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산골에서 자라난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제대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그동안 삶이 단조롭고 밋밋하기만 했던 나에게 새롭게 다가온 문화는 무한한 호기심과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을 안겨 주었다. 그 후 다양하게 문화·예술분야를 접하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레 '문화행복추구지수'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은 결혼 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자녀교육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세끼 밥을 챙겨 먹듯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주길 바랐다. 문화·예술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보다 싱싱하고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영혼의 비타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나거나 음악회, 공연장, 서점, 영화관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곤 한다.
아이들과 함께 다양한 문화공간을 두루 찾아다니면서도 유독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곳이 있었다. 바로 미술관이다. 자연이 그려 낸 풍경 이외엔 달리 그림을 감상하거나 마음껏 그릴 수 없었던 환경에서 성장한 탓인지, 왠지 미술관에 들어서면 낯을 가리고 어려운 숙제를 앞에 둔 아이와 같은 심정이 되곤 하였다. 그런 엄마를 둔 탓에 아이들도 미술관을 나들이할 기회는 좀처럼 많지 않았다. 도서관 나들이 길에 들러본 전시실이나 가끔 들르는 예술회관, 그리고 소리문화의 전당에서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잠시 들러 본 전시회 관람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눈이 빠지게 방학을 기다리고 있다. 방학이 되면 곧장 아이들과 함께 좀 더 다양하고 풍성한 미술관 순례와 문화체험을 하기 위해 서울 나들이를 떠나고 싶은 것이다. 3년 전 신현림의 사진 산문집인 <희망의 누드>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이후, 자연스럽게 미술이란 분야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여름 방학, 큰 마음먹고 아이들과 함께 열흘 동안 서울에서 박물관과 다양한 문화체험여행을 하였다. 서울에서의 박물관, 과학관, 고궁, 미술관, 예술의 전당, 대학로로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던 추억은 또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열망을 갖게 하였다.
인사아트센터에서의 '상상 속의 그림전'은 놀이를 통한 다양한 미술체험으로 아이들과 함께 아주 쉽게 그림과 친해질 수 있었던 경험이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편안하게 마음이 가는 대로 느끼고 만들고 그림과 놀았었다. 우연히 지나다 들러 본 한가한 갤러리에서의 한때는 조금은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한 현대작가들의 그림과의 대화를 시도하게 해 주었다. 그림이 내게 던진 화두를 기쁘게 받아들이게 했고 며칠 동안 그로 인해 끙끙거리게도 하였다. 그 외에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구경하고 다닌 골동품상가나 예쁜 그릇상점, 근사한 옷가게, 찻집의 인테리어등은 모두 새로운 눈요기요, 볼거리요, 우리의 미적 안목을 확대시켜 주었던 것들이었다.
지난겨울방학엔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밀레전'을 다녀왔다. 워낙 사람의 발길이 많아 사람에 치였던 터라 '밀레전'보다는 그 옆 조그맣게 문이 열려있던 천경자 화가의 방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며 더욱 강렬한 인상을 안고 오기도 했었다.
올여름방학엔 미술관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김환기 미술관, 이응로 미술관, 그리고 가나아트센터등으로 미술관 순례를 하고 왔다. 아이들도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미술관 나들이를 즐길 정도가 되었다. 큰 아이는 그림을 보며 자신의 느낌을 말해주기도 하고 내 느낌을 묻기도 한다. 아직은 천방지축인 둘째는 제 멋대로 구경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림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을 제대로 포착하고 있다가 멋지게 표현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이야기들은 그림구경 못지않게 나를 즐겁게 한다. 늘 지지고 볶는 일상생활에서는 만나기 힘든 아이들의 대화가 즐거워 자꾸 길을 나서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가 공부하는 틈틈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나 둘째 아이가 기발한 생각으로 만들기나 종이 접기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좌충우돌 돌아다닌 미술관 경험이 아이들의 창작의욕이나 미적인 감각을 건드려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다.
쳇바퀴 돌 듯 별다를 것 없이 일상에 묻힌 채 무뎌진 나의 감성이 또다시 신선한 자극과 충격을 그리워하는 것을 보니 방학이 가까워지는 것이 분명하다. 돌아오는 겨울 방학엔 지난번에 들러 보지 못한 국립현대미술관, 김종상 미술관과 선재아트센터, 등잔 박물관 그리고 또다시 인사동 그 거리를 만끽하고 싶다.
이번엔 또 어떤 낯선 것들과의 만남이 무뎌진 나의 오감을 또다시 반짝거리며 출렁거리게 해 줄지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