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C 필기 평가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마주칠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안 좋은 말들만 계속 쏟아내었다.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왜 군인을 하겠다는 거야? 엄마는 진짜 반대야. 엄마가 언제 너 하는 일에 한 번이라도 안 좋은 이야기 한 적 있어?"
"엄마가 군생활하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서 그래. 네가 기억하는 건 엄마의 힘든 시기가 다 지나가고 계급도 높아지고 안정된 후의 모습만 봐서 그래. 나 하나로 충분하다. 너는 군대가 어떤 조직인지도 모르면서 군인이 뭐가 좋다고 군인을 한다고 그러냐? 티브이에서 맨날 멋지게 포장된 모습만 보니까 좋아 보이지? "
"너 전투화 신어봤어? 너 등산화 신고서도 무겁다 그랬잖아. 전투화는 더 무겁거든? 신고 있으면 발바닥이 후끈거리고 땀이 얼마나 많이 나는지 상상도 못 할걸? 전투화 끈을 꽉 조여 매면 종아리에 끈 자국이 생겨서 전투화 벗고 보면 종아리가 더 통통해져서 꼭 닭다리 같다고. 한여름에 전투화 신고 걸어 다녀봐. 무좀 생길걸?"
"겨울에 야외 훈련하면 얼마나 추운지 알아? 너 추위도 많이 타고 오리털 바지 입고도 추워서 덜덜 떨면서 어쩌려고 그래? 특히나 천막에서 잠자면 얼마나 추운지 등이 갈라지는 것 같아. 캠핑이랑 똑같겠지 생각하면 완전 오산이야. 지금도 엄마가 손가락 발가락, 얼굴에 동상 걸렸던 것 때문에 빨개지는 거 알지?"
"군인은 야외활동을 많이 하잖아.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는 것도 아니고, 한여름에 바깥에서 돌아다니면서 일해봐라.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젖은 전투화랑 전투복은 무겁고 상상만 해도 힘들지 않냐? 너는 여름에 더위도 많이 타는 애가 버틸 수 있겠어? 집에서 시원하게 있으면서도 축축 늘어지는데 그 한여름에 전투화 전투복 입고 견딜 수 있겠어? 원피스나 반바지 입고 가벼운 신발 신고 다니고, 에어컨 잘 나오는 쾌적한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직장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데 군대는 무슨 군대야."
"너 맨날 책상에서 공부만 했지 뭐 힘든 일을 해 봤어? 군대 가면 장교들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로만 일하는 거 아니거든? 짐도 같이 나르고, 삽질도 하고, 톱질도 하고 그래야 해, 흙도 퍼다 나르고~ 병사들이 열심히 하는데 옆에서 말로만 지휘를 할 수 없으니까 같이 해야 되잖아."
"장교로 생활하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의무복무를 하기 위해서 온 병사들과 실무진 역할의 부사관들을 잘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는 일. 사람을 관리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특히, 초급간부 때는 경험도 없고 능력도 쌓이지 않았는데 나이 많은 부사관들에게 업무 지시를 해야 하고, 의무복무하는 병사들은
건강히 잘 복무하고 전역할 때까지 잘 지내도록 관리해야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힘들다고."
"그리고 비상대기 해야 하고, 당직도 서야 하고, 밤샘 훈련도 해야 하고 아니, 굳이 그 길을 왜 가냐고, 네가 의무복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자진해서 군대를 왜 가려고 하냐고"
말을 하면 할수록 논리에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과거 버전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딸은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지도 않고 바위에 계란 치기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하루에 한 가지 주제씩 골라서 라테는 말이야. 군대는 말이야. 그러면서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엄마! 요즘은 엄마가 살았던 시대랑 다르잖아요. 그리고 저는 공군 갈 거예요. 공군은 천 막 치고 훈련하는 거는 안 한다고 했어요. 엄마 마음은 충분히 알겠는데요 제 인생이니까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니까 일단 한번 해 볼게요. 시작하지도 않고 판단하고 싶지는 않아요."
드디어 나왔다. 내 인생! 너무 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할 말을 잠시 잃었지만 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니 꼭 경험해 봐야 아는 건 아니잖아?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잔소리를 시작했다.
"뭐, 그렇게 원한다면 군인 생활 한번 해 볼 수도 있지. 그래, 그런데 학군장교는 좀 그렇잖아? 학교 수업 듣는 것도 힘든데 군사학 배우고, 제복 입고 다니느라고 2배로 힘들고 대학생활을 하는 건지 군사교육을 받는 건지 구분도 안되지... 대학생활은 좀 멋지게 아름답게 기억되어야지 제복 입은 대학생은 좀 매력 없잖아. 그러니까 학군장교 하지 말고 대학생활을 다 해 보고 그래도 군인에 대한 미련이 남으면 학사장교로 시험을 치면 되지 않을까? 대학 동기들 ROTC 할 때 보니까 맨날 선배들한테 불려 가서 야단맞고 기합 받고, 큰소리로 경례 안 했다고 계속 경례시키고 도서관 자리 대신 잡으러 새벽같이 학교 가고 그러더라."
반대의 늪에 빠진 나는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마디를 더 보태고 있었다. 무려 30년 전 학군장교를 하던 동기들의 이야기를 어제 있었던 이야기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논리로는 더 이상 딸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편하게 좀 살면 좋을 텐데 굳이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 딸에게 괜한 서운함을 쏟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