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딸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진짜 이유
'혹시라도 따뜻하고 배려심 많은 너의 마음이 차갑고 서늘해질까 봐 그게 두렵다.'
딸이 태어나고 다시 군대로 돌아가야 하는 나를 위해 친정아버지는 엄마를 나에게 양보하셨다. 아이는 반드시 엄마 품에서 자라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한 신념에 따라 엄마는 군인 가족의 삶을 살게 되셨다.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부산에서 계속 살아오신 엄마는 딸의 딸을 키워주시기 위해 16년 동안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를 오가면서 10번이 넘는 이사를 하셨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했다. 아버지는 예순이 다가오는 나이부터 팔자에도 없는 독수공방을 무려 16년이나 하게 되셨다. 딸의 길을 지켜주기 위해서 부모님이 너무 힘들게 사신 것이 아닌가 싶어 죄책감이 멍에가 되어 남아있다.
딸은 유치원 2번, 초등학교 4번, 중학교 3번의 전학을 했다. 다행히도 외할머니가 늘 함께 계셨기에 적응을 못하거나 학업이 뒤쳐진 적은 없었지만, 딸도 분명히 어려운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배려심 많은 아이라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자기가 감수하고 어른들에게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내가 군대에서 장교로 생활을 하면서 1~2년 주기로 옮겨 다녔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적어도 같은 지역 내에서 옮겨 다닐 수 있는 여건만 되었다면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그 모든 시간들이 가족들에게 늘 죄스럽고 미안해서 마음에 돌덩이를 얹고 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가족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 나의 성취에 있다고 생각했다. 온통 내 삶은 부대와 함께였다. 부대 도착 6시 30분, 퇴근시간 9시는 기본이었다. 아예 12시를 넘기면 부대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늦게 들어가서 씻고 부산 떨면 잠자던 엄마와 딸이 깨어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월화수목금금토 그렇게 살았다. 일주일에 딱 하루는 집에 충실하자 했지만 그것도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거나 병사가 아프다 하는 연락을 받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부대로 향했다. 하지만 정작 집안에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일쑤였다. 딸이 아플 때는 엄마에게 엄마가 아프실 때는 동료의 아내에게 부탁을 하고 부대로 향했다.
외출할 때는 항상 할머니 손을 잡고 걸어가는 딸이 야속하게 느껴진 날도 많았고, 드라마에서는 주말에 출근하는 엄마를 붙잡고 가지 마라고 울기도 한다는데 항상 의젓하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딸의 모습이 섭섭하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었다. 집에서 나는 하숙생인 듯 느껴져서 마음이 무거운 날도 많았다.
어쩌면 내가 선택한 순간들에 후회가 많이 남아서 내 죄책감과 피해의식 때문에 딸도 나처럼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딸은 무슨 생각으로 군인이 되려고 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반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