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삶이 봄날 햇살 같기를 바랬다

02. ROTC 시험 합격 소식은 전혀 반갑지 않았다.

by ATHA

"엄마! 나 ROTC시험 합격했어요."

"뭐라고? 언제 시험쳤어? 하지 말라고 했잖아!"


딸이 공군 학군장교 선발 1차 필기시험에 합격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합격이라는 단어가 너무 듣기 싫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합격을 취소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취소시켜 달라고 전화를 해 볼까? 몸이 허약하다고 말을 해 볼까? 본인이 취소하지 않으면 결국 취소가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마음 속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고 합격하고 그런 선순환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공의 경험이 쌓이는 것은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다. 자신감이 쌓이고 자존감이 높아진다. 정말로 중요한 과정이다. 누구나 그 과정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는 성공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딸을 낳고 키우면서 수많은 테스트들이 지나갔고 딸은 참 장하고 고맙게도 그 많은 시험들을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통과해 왔다. 이번 시험은 합격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좋아서 싱글벙글하는 딸의 얼굴에 대놓고 싫은 표시를 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축하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겠지만 무남독녀 외동딸, 하나밖에 없는 딸은 나에게는 너무 귀한 자식이다. 딸은 아주 사랑스럽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으로 자라났다. 이루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아서 부대에 미쳐서 사느라 엄마의 역할은 할머니에게 전가하고 살고 있는 반쪽짜리 엄마에게 딸은 항상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힘든 군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 주고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라지만 공부도 꽤나 잘했다. 대한민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의 부모라면 꿈꿀 만한 직업들을 떠올리며 교육을 시켰다. 의사, 약사, 검사, 외교관 등 유망한 직업들은 모두 후보군에 올려두었다. 적어도 엄마보다는 더 큰 세상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살아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엄마처럼 화장보다 위장이 더 어울리고, 향수 냄새보다 화약냄새를 더 자주 맡는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봄날 벚꽃향기처럼 은은하고 햇살처럼 따스한 삶을 살기를 바랬다.


그런 딸이 군대를 가겠다는 결정을 하고 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꼭 직업군인으로서 장기복무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의무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군대를 간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의무복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꼭 자발적으로 군대라는 곳을 선택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유전자 타령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내재된 군인의 DNA 때문일까? 괜스레 DNA 탓을 하며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수긍이 되지 않았다. 그냥 군인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그 모든 과정을 겪게하고 싶지가 않았다.


유난히 조그맣고 하얀 보드라운 손으로 공부하느라고 손가락에 굳은살이 살짝 잡힌 것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린데 그 작은 손으로 총을 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뼈가 덜 성숙해서 한 줌도 안 되는 갸녀린 어깨, 반팔을 입으면 옷 아래로 하늘거리는 얇은 팔뚝 그런 어깨에 책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도 마음이 안쓰러울 때가 많았는데 20kg이 넘는 무거운 군장을 메고 행군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젖살이 덜 빠진 뽀얗고 보들보들한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고 방독면을 씌우고, 화학가스 냄새를 맡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릎을 심하게 다치고 나서 오랜 시간 치료를 받은 일이 있었기에 무거운 전투화를 신고 달리고, 연병장을 기어 다니는 훈련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그 모든 과정을 다 겪어냈지만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에게 굳이 그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육체적인 교육의 과정이 끝나더라도 90%가 남자로 이루어진 조직에서 살아가면서 겪어내야 할 불편함들이 있을 것이다. 과거보다는 젠더 감수성이 훨씬 더 좋아졌다고 해도 양성평등 교육을 아무리 의무적으로 시킨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전쟁을 대비하는 조직이라 말랑함보다는 딱딱함이 부드러움 보다는 강함이 영혼의 자유로움보다는 통제가 우선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주말이 되어도 늘 2시간 내에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휴가 중에도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부대로 돌아가야 할 때도 있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다가도 전화를 받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일들이 있었고, 잠을 자다가도 호출을 받고 뛰쳐나간 적도 많았다. 그렇게 근무시간 이외에도 항상 근무 중인 상태였다. 물론 2023년 지금은 많은 부분이 자유로워졌다고 하지만 어쨌든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교해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군대는 전쟁을 억제하는 중요한 임무 가지고 있지만 전쟁이 발발한다면 지체 없이 목숨을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다. 요즘 오랫동안 평화무드가 지속되고 있어서 망각할 수 있지만 군대는 그런 곳이다. 적어도 군인은 국가가 죽으라 명하면 죽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군인으로서의 삶이 뿌듯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개인으로서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없었고 엄마로서 딸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에는 거의 참석하지 못했고 가끔 방문하면 섞이지 못하고 기름처럼 둥둥 떠 있는 것 같았다. 전국을 떠돌며 군대 생활을 한 탓에 학창 시절의 친구들은 하나둘 멀어져 갔고 함께 일하는 동료는 있을지언정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군인으로 살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저울에 달아보면 어느쪽으로 기울어 질까? 높은 직급, 비교적 안정적인 물질적인 보상을 이루었지만 마음에는 허전함이 많이 쌓여갔다. 많이 웃고 밝고 사랑스러웠던 사람은 의무와 책임에 짓눌러져 웃음을 잃어갔고, 예민하고 까칠하게 변해갔다. 늘 겨울 속에서 봄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딸은 늘 봄날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군대를 가서 딸의 삶이 겨울처럼 차가워지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앞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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