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엄마처럼 군인이 되겠다는 딸을 만났다.
"엄마는 왜 군인이 되었어요?"
"글쎄? 포스터가 멋있어서"
"엥?"
"진짜야!"
나는 육군 장교로 살아왔다. 진짜로 버스정류소 앞 포스터에 마음을 빼앗겨서 홀린 듯 군에 입대를 했다. 짧게 자른 머리. 싱그러운 웃음. 이마에 송글 맺힌 땀방울이 맺힌 젊은 여성의 얼굴이 크게 있고, 그 아래 짧고 강렬하게 '아름다운 당신은 대한민국 여군 장교입니다.'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 표지모델의 눈빛과 그 아래 문구가 그렇게 멋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코끼리 다리 만지듯이 뭐하는 지도 모르고 용감하게 입대를 했고, 총소리, 함성소리에 익숙해졌고, 군대라는 생경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느라 무서운 게 없어졌고, 웬만한 일에는 가슴이 내려앉지도 않는 강심장으로 변해갔다.
90년대의 군대의 환경은 지금과는 너무나 다르다. 진짜 라테는 말이야. 이런 이야기로 들릴 수 있을 정도로 다르다. 나는 특히나 좀 더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온 것 같기도 하다. 여자 화장실과 탈의실이 없는 부대에서 근무한 경험이 많다. 그것에 대해 '만들어 주세요'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들과 마주치지 않게 적당히 눈치 보면서 화장실을 사용했다. 임신했을 때도 밤새 당직근무를 섰고, 불룩해진 배 위에 군장을 걸치고 총을 메고 걷기도 했다.
가뜩이나 여자 군인이 있어서 불편하게 느끼는 분위기가 많았는데 임신을 하는 바람에 한 사람의 몫을 다하지 못해서 부대와 동료들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뱃속에 있는 딸이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다. 출산 후에도 휴직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휴직을 선택한다는 것은 직장생활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시절이었다. 군대뿐만 아니라 그 시절 직장을 다녔던 여성들이라면 다 겪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면서 출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래 그렇다. 너무도 많이 변했고, 발전했고 좋아지고 있다는 것 앞으로 더 발전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 군인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는 몸서리가 쳐졌다. 어려운 시기에 입대해서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살아오면서 마음에 상처가 많아서이다.
"나도 군인 해 볼까?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군인은 무슨! 안 돼!"
"엄마도 했잖아."
"너랑 나랑 같아? 안 돼! 자격증 공부나 해. 영어공부를 더 하든지~!"
공군 학군장교가 되어서 군인이 되겠다는 딸과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딸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곳에 언급되는 군대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은 순수히 제 개인의 경험에 바탕한 것으로 다른 분들의 경험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