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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May 27. 2023

새 집에서 편안히 지내세요

#10. 서늘한 만남, 뜨거운 안녕 

2년간 중대장이라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많은 일들을 했다. 그중에서도 봉안소를 관리하면서 가족들도 찾지 않는 돌아가신 분들을 가족이라 생각하고 챙겼던 일이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고,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 일이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헌신적인 간부들과 병사들을 만나서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몇 십 년 동안 낡아져 가기만 했던 봉안소를 깨끗하게 리모델링하면서 내 마음의 어둠도 걷히기 시작했다. 어둠은 걷어내려는 노력으로 걷어낼 수 있다.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 내가 결심하는 그 순간이 가장 빠르고 가장 적당한 시간이다. 


군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낡디 낡은 봉안소를 지키면서 이곳에서 군생활하는 병사들이 이 시설물 때문에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사망자의 유골을 인수하는 날 이 낡은 시설이 유가족 분들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지는 않을까?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실정을 모르는 상급기관으로부터 지적을 듣게 되지는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하며 지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건축물은 정말로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한다고, 이유야 어찌 되었건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이런 환경에서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고 수없이 부르짖었다. 하지만 현재 군생활을 하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요구도 수용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의 빈곤함과 열악함은... 국가는 월드컵을 개최하고 수많은 국민들이 '꿈은 이루어진다.' '대한민국!'을 부르짖었지만 군 복무를 하면서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던 청년들에게 따뜻한 시설 하나 지어 줄 수 없었던 그런 안타까운 시절이 있었다. 


2년 후 나는 떠나왔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수많은 중대장들과 대대장들은 봉안소를 이 상태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의견을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했을 것이다. 결국, 그 의견들은 국회에까지 전달되고, 군에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의 문제가 공론화되고, 군인도 민간인도 아닌 채로 남겨져 있던 실미도 부대원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지면서 이것은 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인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그리고... 봉안소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재개발에 성공했다.

봉안소 올라가는 길
실미도 부대원 유해발굴사업에서 발굴된 물품들
실미도 부대원의 유해가 봉안된 시설
군에서 사망하신 분들이 봉안된 시설

우리는 큰돈과 큰 노력을 기울여서 대단히 큰 일을 해야 큰 업적을 이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처음 한 걸음 내딛는 순간이 정말로 중요하다. 비록 비싸지 않은 재료들로 전문가도 아닌 간부들과 병사들이 톱질, 못질, 페인트 질을 하면서 하나하나 만들었던 그 리모델링된 봉안소는 무려 10년이나 넘게 사용되었고, 지금의 시설이 지어지기 전까지 유지되었다고 한다.


오래전 그곳을 방문해서 박 이병에게 인사를 했다. 

'박 이병님! 새로 이사 온 집이 예전 집보다는 훨씬 좋지요? 다행입니다. 정말...'

박 이병의 가족들은 그때 까지도 단 한 번도 찾아온 기록이 없었다. 아직도 부대에 머물고 있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깨끗하고 좋은 시설에서 편히 쉬게 되어서 다행이다.


내 삶은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로 연결되어 있고 필름을 되돌려보면 나의 머리와 가슴에 가장 깊이 박혀있는 시간이고, 나를 더 강하게 냉철하게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지식도 리더십도 마음도 부족했던 모자람이 너무나 많았던 사람을 그저 리더라는 이유로 따르고 지지해 주었던 부대원과 죽어서도 우리에게 위로를 건네주었던 그들과 교감을 나누었던 순간을 평생토록 기억할 것이다. 


그 후로도 가끔 숨 쉬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고, 살아가는 의미를 못 찾아 방황하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가끔 살아가는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서 멍하니 검은 하늘을 올려다볼 때 그 검은 그림자가 가득하고 음산하고 습기가 가득했던 낡디 낡은 봉안소에 첫발을 들여놓고 첫 숨을 들이마셨을 때의 그 회색빛 공기가 떠올랐다. 아직 멀었으니 조금 더 있다 오라고 손사래짓 하는 그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큰 숨을 다시 들이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불의의 사고가 아닌 다음에야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는 마음에 달려있다. 지식으로 배우고 머리로 기억하고 입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마음의 답이 없어서 힘이 들었었다. 질문과 사색의 시간이 있었지만 해답을 찾지 못해서 늘 허덕이고 힘겨웠었다. 이제야 살아가는 근본의 이유를 마음으로 느낀다. 편안함. 내가 찾은 이유이다. 편안하게 자기만의 이유를 갖고 살아가면 된다. 


(이 글은 작가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특정 기관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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