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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Apr 24. 2023

제 2의 봉안소가 만들어 지다

#9.  서늘한 만남, 뜨거운 안녕

"도착했답니다."

드디어 실미도 유해를 만나는 순간이다.

유해발굴단 부대원들이 봉고차에서 네모난 투명 플라스틱 박스를 몇 개 들고 내렸다.

"이게 뭐예요?"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입니다."

"아.... 그래요? 이게 유해라고요?"

"자세히 보면 보입니다. 오래 땅에 묻혀 있어서 색이 다 변해서 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전투 중에 사망하고 그 모습 그대로 발굴되는 장면이 나온다. 유해가 들어온다고 해서 그런 장면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A3 2장 정도의 크기에 높이는 10센티 정도 되는 크기의 투명한 상자 속에 보존제를 첨가한 부직포 위로 흙빛으로 변한 뼛조각이 들어있었다.


'아... 사람이 죽으면 그냥 저렇게 되는구나. 육신은 다 사그라지고 뼈만 남아 세월 가면 저렇게 흙으로 변하는구나. 그냥 흙인데?' 그런 생각을 했다.

상자마다 A-1, B-2 이런 숫자들이 적혀있었다. 발굴된 지점의 번호라고 한다.

"이게 전부 인가요?"

"아닙니다. 앞으로 더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일단 발굴해 봐야 압니다"

"아... 네...."  좋지 않은 소식이다.

"그럼,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요?"

"일단, 유가족들에게 유전자 검사 동의를 받고, 유전자 검사를 해서 확인해 봐야 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

이 말은 곧 임시 봉안소의 철거가 늦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내가 실미도 사건을 알게 된 건 영화 때문이었고, 당시 인터넷이 보급되긴 했으나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아서 요즘처럼 정보의 유통이 빠른 시기가 아니었다. 집에 들어가서 컴퓨터를 켜야 인터넷 뉴스를 볼 수 있었던 상황, 이 사건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조차 금기사항이었다. 나의 임무이고 나의 일이었지만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떤 일이 더 벌어질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지는 일을 그때그때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끼익 후문이 열렸다. 두꺼운 철문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겨우 버티며 조금씩 열릴 때마다 듣기 싫은 낡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40여 명 정도의 유가족들이 들어오고 있다. 후문이 열린 이래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걸어오는 모습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실미도 부대원들이 20대 중반즈음이었고 발굴이 시작된 것이 거의 37년 만이었으니 대부분 가족 분들은 60대쯤 된 것 같다. 60대면 그리 늙은 나이도 아닌데 힘든 세월을 사셔서일까 허리가 굽어서 걸으시는 분, 벌써 지팡이에 의존하신 분도 있다. 굵은 주름이 가득 잡힌 표정 없는 얼굴, 한눈에 봐도 남루한 옷차림이 괜스레 더 서글프다.


그분들에게 발굴에 대한 설명을 하는 분과 유가족 사이에 한참 동안 고성이 오갔다. 유가족들도 알 것이다. 이 사람에게 말해도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하지만 당장 분노를 쏟아낼 대상이 없으니 그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고성의 시간이 끝나고 임시 봉안소로 향하는 유가족들... 그리고 임시봉안소에서 깊은 울음과 탄식이 시작되었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시간이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돌아간 공허한 공간에 적막감이 감돌았다. 다음날 아침, 그들인지 아닌지 모르는 유해가 밤새 잘 있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다. 제단 뒤편 이름도 없이 그냥  A-1, B-2라 명명된 그 상자들을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제단에 향을 피웠다. 과거사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비극이라고 말하는 이 사건에서 개인이 겪어야 했던 그 슬픈 역사를 다 알 수는 없다. 다만, 지금 이곳에 그분들의 영혼이 머물고 있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군인도 민간인도 아닌 그들이 언젠가 어디로든 가기 전까지 지키고 돌보고 위로하는 일이 남았다.

제2의 봉안소, 우리에게는 돌봐야 할 이들이 2배로 늘어났다. 어제는 감정에 휩싸여 잠 못 드는 밤을 보냈지만 오늘 바라보니 앞으로의 일이 또 걱정이다. 우리 부대원 모두에게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지 않도록 함구령을 내렸다. (웅성거리기는 했겠지만 다행히 기자가 부대로 들이닥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이라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국면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그들을 맞이했고 그 후로도 천막이 낡아져서 몇 번이나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는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 그곳에 매일같이 향을 피우고 묵념을 올리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니었던 실미도 부대원에 대한 긴긴 조사끝에 봉안식은 2017년에 이루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 프로그램에서 자세히 다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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