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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Apr 22. 2023

실미도 부대원을 맞이할 준비

#8. 서늘한 만남, 뜨거운 안녕

"내일 오후에 실미도 사건 유해 발굴 사업에서 첫 유해가 들어올 거니까 오늘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네?"

나도 모르게 반문의 말이 튀어나왔다. 봉안소 리모델링을 끝내고 마음의 편지에 귀신 이야기도 안 나오고 한동안 조용해서 이제는 좀 편안하게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구나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이런 무슨 날벼락같은 말이지?


"한번 말했으면 됐지. 뭘 되물어?" 평소에도 되묻는 거 싫어하는데 오늘은 더 히스테리컬 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놀라서... 확인해서 이상 없이 조치하겠습니다. 충성!"

이럴 때는 잽싸게 그 장소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아서 이상 없이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뜻을

확실하게 전하면서 빠져나왔다.


"거, 잘 확인하고 해라!"

"네! 염려 마십시오. 준비하고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충성!


이렇게 짧은 지시는 복잡하거나 난감한 임무가 떨어질 때 신경 쓰기 어려울 때 나오는 지시이다.

쉬운 건 아주 자세하게 어려운 건 간단하게 지시하는 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낫다.

어려운 일은 하다 보면 변수가 많아서 자세하게 지시를 받으면 오히려 일하기가 힘들다.

차리리 알아서 이상 없이 잘하라는 말이 편하다.


'와... 미치겠다. 아니 왜 여기다 옮긴다는 거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대대장실에서 뒤 돌아 나와서 이층 계단을 두 계단씩 숨 가쁘게 달려서 2층 사무실로 달려가면서 이미 고구마 천 개는 집어삼킨 답답함과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대한 예측들로 나도 모르게 저절로 욕을 쏟아붓고 있었다.


"안소장 빨리 오라고 해!! 빨리"


심장아. 제발 진정해라. 팔딱팔딱 뛰는 심장소리에 놀라며 진정을 못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초조하게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영화 실미도를 통해서 알게 된 그 실미도 사건, 최근에 부대 근처에서 실미도 사건 유해발굴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건의 주인공들로 추정되는 유해가 내일 우리 봉안소로 들어온다. 지금까지 많은 분들을 봉안하고 현충원으로 봉송해 왔지만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서고 없던 두통이 생기는 기분이다. 민감한 사건이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아직까지 그들의 신분이 군인인지 민간인인지도 정의되지 않았고 이건 잘해도 본전이고 못하면... 아니지 그런 일은 생기면 안 되지...


'이런, 젠장. 하느님, 부처님, 성모마리아 님!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니, 그만큼 했으면 됐지, 아직도 부족한 거예요?'

'거기 봉안소 대장님!! 박 이병!!! 아, 이러면 반칙이잖아!! 잘해 준다면서!!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하나의 오점도 없이 준비해도 결코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엊그제 전입 온 이등병도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티끌만큼의 오차라도 발생한다면 아... 상상도 하기 싫다.


'자... 정신 차리자.. 서두르지 말고, 생각해. 생각해. 침착해'

봉안소장이 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끊임없이 되뇐다. 마음은 조급하고 다급한데 자꾸 한숨이 나와서 손도 발도 움직일 수가 없다. 침착하게 빨리 생각을 정리하고 임무를 나누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한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임무하달 시간 오전 11시, 임무완료 24시간 후 내일 오전 11시, 유가족 출입시간 오후 2시

1. 임시 봉안시설 설치

2. 유해 보관장소와 유가족 참배장소 분리

3. 참배장소 제단 설치

4. 유해 보관장소 선반 설치

5. 봉안시설 외부 출입 통제를 위한 경계병 배치

6. 유가족 대기용 천막 별도 설치

7. 우발상황 발생 대비한 또 다른 준비


이 많은 일을 부 총 출동해도 부족한 상황인데 당장 다른 일들을 하고 있는 병력들을 다 여기에 투입시킬 수도 없고 결국 이 일의 시작과 마무리는 나와 봉안소장의 몫이다. 아무리 평정심을 찾으려 해도 그게 안된다. 갑자기 영화 속에서 울부짖던 배우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유가족들이 얼마나 가슴에 맺힌 한이 많을 텐데 그냥 군부대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분통이 터질 텐데 땅속에 묻혀있던 뼛조각으로 돌아온 것을 바라보는 그 심정이 어떨까 감히 상상해 본다. 지금 군복을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냥 죄인이 된 기분이다. 자꾸만 한숨이 새어 나온다. 해야 할 일이 진짜 산더미 같이 많고 시간이 부족하고 일을 할 사람도 부족하다는 것이 지금 나의 현실인데 그것보다 내일 그 유가족분들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더 숨이 막힌다.


"걱정 마십시오. 이거 뭐 밤새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셀프 파이팅입니다! 뭐 하다 보면 끝이 나겠죠. 우린 잘할 수 있을 거야. 그죠?"

"네! 뭐 어찌 안 되겠습니까? 까짓 껏 하면 되죠"

우리는 또 정예 최소 인원만 투입하기로 하고 총 7명으로 임시 봉안소 제작팀을 만들었다.

"오늘 밤을 새울 수 있으니까 간부들 시간 되면 다 퇴근하고 이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다른 부서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잘 관리하세요. 이 시간 이후 나에게 전화하지 마시고요."

"팀원들! 미안한데, 오늘 이 작업은 완료될 때까지 휴식하기 힘들 거야. 잠은 못 잘 수 있고, 대신 야식은 맛있는 걸로 먹자. 내일은 쉬게 해 줄게. 힘들겠지만 한번 해 보자."


다행히 손가락이 안 펴질 만큼 많이 춥지 않아서 땅이 잘 골라졌고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봉안소장과 정예요원들은 뚝딱뚝딱 빠른 속도로 기둥과 가벽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모델하우스처럼 큰 기둥과 가벽을 세워서 비바람이 불어도 천막이 무너지지 않게 만드는 기초 작업을 하는 과정이다. 천막 크기에 맞추어 틀을 만들고 절반으로 나누어서 앞쪽은 제단의 형태를 만들고 뒤쪽은 선반을 만들어서 발굴된 유해를 보관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었다. 새벽 4시. 까맣게 지새웠다... 짙은 검은색 하늘에 달만 덩그러니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내일 갈 테니 잘 만들어 놓아라~~~' 이러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다 함께 비어 있는 내무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혹시라도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소식이 들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부스스 눈을 떴다.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냥 괜히 기대해 본다.

'지금도 봉안소 식구들이 많은데 군 복무하고 있는 우리 부대원들에게 심리적으로 별로 좋지 않을 텐데..'

새벽까지 작업할 때만 해도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아침에 임시 봉안시설이 떡 하니 지어져 버린 것을 보니 한숨만 푹 푹 푹 나온다. 한숨 쉬고 있을 시간도 없는데 한숨이 자꾸 나온다. 아휴, 에휴....


기초공사가 끝난 골조위에 천막을 씌우고, 쌓인 먼지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내부에 하얀 천을 둘렀다.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서 절반은 제단을 만들고 절반은 유해를 보관할 선반을 만들었다. 주변에는 접근을 통제하는 경시줄을 둘렀다. 임시 건물이지만 누가 들어오더라도 정성을 다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온기를 불어넣는 일이 남아있다. 잘 익은 사과와 배를 사 와서 올리고, 향을 피웠다. 겨울이라 무릎 꿇고 절하는 유가족들을 위해 방석과 온풍기도 가져다 두었다.


11시, 사열을 하러 오는 대장님이 보인다.

"짧은 시간에 이 정도 만든 건 기적이야 그렇죠? 그래도 뭐 하나는 지적받을 거예요, 스트레스받지 말자고요"

"예~ 알겠습니다. 설마 다시 지으라고는 못하시겠죠. 자잘한 일은 그냥 후다닥 하면 됩니다."

봉안소장 박 상사는 늘 그렇게 나에게 힘을 주고 있다. 이 사람과는 무슨 일이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부하와 함께 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밤을 지새우고 쪽잠을 자고 부스스한 얼굴로 부디 사열이 얼른 잘 끝나기를 기원하며 피곤한 눈을 힘주어 치켜뜨고 서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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