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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May 26. 2023

우리가 너의 곁에 있을께

#7. 서늘한 만남, 뜨거운 안녕

한 달 동안 정성을 기울였던 봉안소 리모델링을 끝내고 우리는 작은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작은 제단을 만들고 깨끗한 하얀 천을 덮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쌀밥을 짓고, 품질이 좋은 사과와 배를 사고, 초코파이와 담배를 사서 작은 제사상을 차렸다. 나를 비롯해 몇명의 간부들과 평소에 봉안소 관리를 맡고 있는 병사들만 참여하는 작은 추모행사였다. 정성스럽게 향을 피우고 담배 한개피는 불을 붙여서 맛있게 피우시라고 놓아드렸다.


얼굴도 모르는 이 사람들이 어떤 사연 때문에 군에서 목숨을 잃었는지, 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긴긴 세월 우리 부대에 남아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짜피 우리와 함께 한 세월이 있으니 이제는 이 곳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시라고 그리고 우리가 정성을 기울였으니 좀 알아주시라고 그래서 우리 부대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무사히 전역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작은 정성이 이미 세상에 없는 그들에게 무슨 큰 위로가 될지 알 수가 없었지만 부모도 가족도 찾아주지 않는 박이병과 그의 친구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성을 기울였다. 봉안소 리모델링이 끝난 후 부터는 새로운 유골이 들어오지 않아도 매일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향을 피웠다. 돌아가신 분들의 생일이 되면 축하인사를 건네고 쵸코파이와 담배를 사서 영전에 올려드렸다.


다른 음식들 보다 달콤한 쵸코파이와 알싸한 담배를 가장 좋아할 것 같았다. 눈물 젖은 초코파이를 먹어보지 않은 병사들이 어디 있을까 싶어서.... 훈련소 화장실에 몰래 초코파이를 숩겨두고 자다가 일어나서 한입에 마구 집어넣다가 목에 걸려서 콜록거려 본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작은 것으로도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리모델링이 끝나고 우리의 추모식도 끝나고 누구도 손대기 싫고 발걸음 하기 싫어하던 곳이 아주 깨끗하게 바뀐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중대의 위상도 높아져갔다. 그리고 얼마 후 부대를 방문했던 사령관님은 본인이 진작에 신경을 썼어야 하는 부분인데 중대에서 이렇게 정성을 기울여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위령제를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위령제...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

우리나라의 전통 신앙인 불교에서는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다. 죽어서도 속세를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는 죽음들을 위로하는 것이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라 믿는다. 어릴 적 절에서 스님들이 염불을 하면서 목탁을 두드리고 뒤에 사람들이 절을 하고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다. 불상 옆에 작은 나무에 이름이 쓰여져 있는 것들을 보았다. 그 나무가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둔 것이고 그분들은 죽어서 절에 모셔진 것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 분들은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절에서 대신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라는 것도 들었다. 


다행히 불심이 깊으신 사령관이 다니시는 절에서 위령제를 해 주기 위해서 스님과 여러분의 신도들이 부대에 들어왔다. 봉안소에는 부대에서는 차려내지도 못할 멋진 제사상이 차려졌고, 가족들도 찾아오지 않고 수십년째 혼자 지내온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해 향을 피우고, 헌화를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밖에서 오신 몇몇 어머니들은 봉안소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봉안소 내부에서 추모의 시간이 끝나고 법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스님들의 바라춤이 시작되었다. 바라춤은 불교 의식무용인 작법무作法舞의 하나로 불법을 찬양하는 의미와 함께, 나쁜 기운을 물리쳐 도량을 청정하게 수호하고 의식에 참여한 이들의 내면을 정화하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그 섬세한 춤사위가 스님의 맑은 눈과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그렇게 처연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바라춤을 추시는 스님의 옷깃이 휘날릴 때 마다 마음속에 가득한 원망의 마음들도 다 날려가는 것 같았다. 봉안소에 살고 있는 그 분들의 한도 하늘로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바라춤을 보고 있는 우리들도 봉안소에 살고 있는 그분들도 모두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라춤을 바라보며 두가지 기원을 올렸다. 매일 저녁 무거운 발걸음으로 후문초소를 향해 걸었던 장병들의 발걸음이 좀 가벼워지고 더이상 봉안소를 무서운 곳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 이후로는 봉안소에 새 식구가 들어오는 일이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두가지 소망을 담아 머리 숙여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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