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봉안소 리모델링이었다. 벽에 가득히 묻은 곰팡이를 박박 문질러서 닦아내고, 유골이 들어올 때만 열리던 문을 매일 아침 활짝 열어서 오래된 건물에서 베어나는 세월의 냄새를 걷어냈다. 아침마다 향을 피워서 공간에는 은은한 향내를 입혔다. 페인트가 들떠있는 곳은 다 갈아내어서 다시 페인트를 칠하고 말리고 또 칠하고 말리는 작업을 몇 번 반복했다. 건물 주위에 제자리를 모르고 자라나고 있던 풀들을 싹 다 베어내고 돌을 깔았다.
청소와 페인트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 부대 금손 목공반장은 합판을 잘라서 유골 봉안용 수납함을 제작했다. 가로세로폭이 30cm 크기인 칸이 40개인 큰 선반이었다. 지금 10위가 모셔져 있는데 50위까지 봉안할 수 있게 크게 만들었다. 처음엔 너무 큰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근무하는 동안에 최대 40위까지 봉안을 했으니 기왕 만드는 거 크게 만들자는 계획은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돈이 많이 없어서 부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합판과 목재들로 작업을 했고, 마지막에는 크림색 시트지를 붙여서 색깔을 바꾸고, 전면에는 나무무늬 몰딩을 붙여서 겉으로만 봐서는 합판이나 목재들은 전혀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적군 유골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는 철창은 건물에 시멘트로 부착되어 있어서 도저히 분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공간을 가리는 벽을 세우고 흰색 천을 둘러서 봉안소 운영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창고를 만들었다. 이 정도만 해도 180도 달라져 보였다. 정말 말끔해졌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처럼 깨끗해진 모습에 모두들 기분이 좋아졌다. 현역 군인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부대의 내부에 있는 봉안소라는 특성과 비전문가인 부대원들의 땀과 정성으로 이 정도로 깨끗해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지만 봉안소장 박상사와 나는 한 끗이 정성을 더해 그곳을 명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마지막 디테일이 정말로 중요하다. 음식에 마지막 데코레이션인 소스 한 방울의 장식, 그릴드 스테이크에 살짝 뿌려진 후추와 로즈메리, 멸치볶음 위에 얹어진 통깨, 잘 꾸며진 무대를 비추는 조명, 인테리어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그림 한점과 향기를 더해주는 디퓨져, 카페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음악, 패션을 완성시키는 구두와 핸드백, 검은색 원피스에 감동을 더하는 스카프와 브로치 이런 것들은 본질과는 관계가 없지만 그 디테일이 명품을 만들어낸다.
원래는 평평한 선반 위에 유골함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이었는데 수납장을 만들어서 각 수납장에 1위씩만 보관하게 되었으니 1인 1실이 된 셈이다. 우리는 마지막 디테일로 태극기를 선택했다. 태극기로 유골함을 감싸서 수납장에 보관하면 훨씬 보기도 좋고 유가족들에게도 떳떳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이 우리가 하는 일을 지켜보던 대장님이 처음으로 질문을 했다. '순국한 사람들도 아닌데 태극기까지 감쌀 필요가 있어?'라고...
음... 일면으로는 맞다. 태극기의 존재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으니 충분히 우려가 될 만했다. 그 시절 군에서 태극기라는 물품은 귀하고 귀한 존재였다. 비를 맞아서도 안되고 때가 타서도 안되고 약간이라도 찢어지면 바로 교체해야 한다. 군에 보급되는 양도 적어서 구하기도 힘든 품목이라서 앞으로 들어오게 될 모든 유골을 태극기로 감싸게 된다면 그 양을 다 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을 미리 걱정하신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걱정이었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벌써 물량을 다 확보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하면서 웃음으로 그냥 받아넘겼다.
사실 태극기를 구하느라 진짜 고생을 많이 했다. 태극기를 겨우 구해서 유골함을 감싸고 근조리본을 달았다. 00년 00월, 고) 일병 000, 00년 00월 고) 하사 000, 고) 중위 000이라 써서 정성스럽게 붙였다.
거의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봉안소 리모델링에 투자한 후에 비포, 애프터 사진을 포함하고 지금까지의 경과를 담아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냥 시설 하나를 깨끗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군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그분들에 대해 예의를 다하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해서 노력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 보고서는 부대 내부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결국은 더 상급부대로 보고되면서 나는 보이지 않는 일도 알아서 잘하고,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하는 사람, 죽은 사람까지 챙기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었다. 당연히 이 모든 공은 우리 부대원들에게 돌아갔다. 특히, 봉안소 박상사와 비밀특수 작전을 너무나 잘 수행해 준 우리 병사들은 정말 최고였다.
지휘관이라는 자리는 이런 자리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끼게 한 일이었다. 귀를 열어 잘 듣고, 올바른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방법을 찾고, 신념을 갖고, 의지를 모아서 함께 끝까지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리모델링이 끝나고 보고서가 다른 부대로 전파되면서 그동안 누구도 깊이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에 여러 사람의 시선이 머무르게 되었다. 촉매제가 되었다. 누구도 찾지 않던 그곳은 부대를 방문하는 모든 분들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되었다. 음산하고 후미진 곳, 진짜 귀신이 툭 튀어나올 것 같았던 그곳은 갑자기 핫플이 되어 핫플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우리 봉안소장은 매우 바빠졌다. 그리고 유명인사가 되었다. 중요한 시설을 아주 잘 관리하는 훌륭한 부사관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미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진가가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아.. 중대장님, 이거 괜히 리모델링했나요? 사람들이 자꾸 오니까 또 힘드네요. 으하하하하’
‘좋으면서~~~ 진짜 정말 많이 수고했어요’
낡고 먼지가 쌓인 시설물이 보기 싫었고, 병사들이 귀신이 나온다고 자꾸 편지를 써대는 것도 싫었다. 유가족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건물을 우리가 관리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누가 봐도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시설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한 일이었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고 누군가에게는 변명을 해 가면서 한 일이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은 또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