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봉안소 옆 후문초소 근무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는 귀신 출몰설까지 돌면서 봉안소 안에 들어가 보지도 않은 새로 전입 오는 이등병들도 그냥 봉안소는 무섭고 가까이 가기 싫은 곳이 되어 버렸다. 똑같은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솔직히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고상하게 정신교육이라는 걸 시켜봐도 소용이 없다.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봉안소는 귀신들이 살고 있어서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곳이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곳이다.
근무를 편성하는 것은 행정보급관 고유의 권한이다. 귀신출몰설과 더불어 현실적으로는 행정보급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후문 근무에 편성된다고 확정설도 있었다. 행정보급관은 FM중의 FM이다. 그 많은 병사들 근무 순번을 다 적어가면서 꼼꼼하게 근무를 편성한다. 절대 행정병에게 시키는 법이 없었다. 말 안 들으면 후문 근무라니 진짜 억울해서 펄쩍 뛸 일이다. 행정보급관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대장님! 자꾸 애들 하자는 대로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후문초소 옆에 가보니까 휴지가 엄청 많던데 그거 날아가는 거 보고 귀신타령하는 겁니다.
군인이 명령에 복종하는 게 기본이지 뭐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가 있습니까?'
'아... 맞아요. 그 말이 당연히 다 맞는데요. 그래도 이 상태로 계속 밀어붙일 수는 없으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리고 솔직히 봉안소 건물도 너무 낡았고 진짜 좀 손을 보긴 해야 될 것 같은데..'
또 시간이 자꾸 흘러갔다. 한숨만 나오고 중대원들 얼굴을 볼 때마다 편지 쓰라고 말만 하고 뭐 해주는 거 하나도 없는 무능한 중대장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아주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이제는 내 꿈에도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내기 시작했다. 중대원들도 나타났다.
'간부들 좀 모여보세요. 봉안소 대책회의 좀 합시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봉안소장 박상사, 행정보급관, 소대장 등 중대의 수뇌부들이 모두 모여서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냥, 놔 두시죠. 다른 할 일도 너무 많은데...'
'뭐 이렇게 된 거 그냥 싹 수리해 보시죠?'
그렇게 설왕설래하다가 결국은 리모델링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뭘 하든 돈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가진 돈이라고는 중대운영비 고작 20만 원 정도가 전부였다. 그나마 그것도 중대에 있는 정수기와 프린터기 렌탈료를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었다. 우리는 진짜 특단의 조치를 하기로 했다. 부대 앞 철물점을 찾아갔다. 철물점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외상으로 가져오고 싶다고 말을 했고, 부대 사정을 뻔히 잘 아는 아저씨는 흔쾌히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우리는 너무 기뻤다. 당장이라도 봉안소를 달려가서 공사를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재료는 어떻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봉안소 손대려면 대대에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 허락을 안 하시면 어떻게 하죠?'
'에이, 대대에 뭐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한다는데 뭐라고 하시겠어요?'
'옛날부터 대장님들은 부정 탄다고 봉안소 손대는 거 싫어했잖아요.'
'일단 몰래 시작하고 절반쯤 해 놓고 보고 드리면 어떨까요? 뭐 그 상태에서 하지 말라고는 못하실 텐데'
'중대장님! 크게 야단맞을 수도 있습니다.'
'뭐, 어차피 맨날 욕 들어 먹는 게 일인데 뭐 하나 더 보탠다고 큰일이야 나겠어요?
'그리고 대대장님은 그쪽으로는 순찰 거의 안 오시니까 들킬 일도 없어요.'
'까짓 껏 한번 해 보시죠. 뭐 지금보다는 좋아지겠죠'
쑥떡쑥떡 콩떡콩떡 이렇게 해서 우리들의 비밀 작전이 시작되었다.
귀신이 출몰하는 후문 근무초소를 없애달라는 마음의 편지에 대한 중대장의 답장
우리 중대는 살아있는 여러분과 돌아가신 분들이 같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무서운 마음이 드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근무를 서지 않겠다는 것은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이 사라질 수 있도록 봉안소 환경을 개선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손으로 직접 그분들이 계시는 곳을 청소하고 새롭게 만들면서 봉안소가 결코 무서운 곳이 아니고 그 안에 계시는 분들도 무서운 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관리해야 할 곳입니다. 여러분이 잘 이해하고 따라와 줄 것이라 믿습니다.
거창하고 거룩하게 말을 했지만 결국 봉안소 개선 작업에 동원(?)되는 인원들에게 포상휴가를 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겨우 설득해서 조용하고 확실하게 리모델링할 수 있는 정예 멤버를 선발하고 봉안소장 박상사를 중심으로 리모델링 작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