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에서 20년 동안 살고 있다
#2. 서늘한 만남, 뜨거운 안녕
나는 중대장이다. 관리자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는 최초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중대의 책임자로서 휴가권, 징계권, 평정권, 의사결정권, 명령권등을 가지고 부대를 지휘한다. 권한과 함께 책임도 막중하다. 중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사람에 관한 것이든 임무에 관한 것이든 그 책임은 중대장에게 있다. 임무 수행을 잘하면 중대장이 지휘를 잘 한 것이고, 잘못하는 일이 생기면 중대장이 자질이 부족한 탓이다. 결국 어떤 임무를 더 잘 수행하려고 애쓰는 노력과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람과 일을 살피는 것의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한다.
균형을 맞추면서 성과를 낸다는 것이 말이 쉽지 진짜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중대장은 처음이지 않는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보직인데 엄청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나 때문에 부대가 주눅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기 위해서 부대를 둘러보았다. 모든 시설들이 대체로 낡고 관리가 필요한 상태였다. 그 모든 건물들 중에 유독 낡디 낡은 음산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 건물은 뭐죠?'
'아, 여기는 봉안소인데... 봉안소 아십니까? 그게 좀 그렇지 않습니까? 예전부터 터부시 되던 곳이라 필요할 때만 개방하는 곳입니다. 손을 좀 보기는 해야 하는데'
봉안소장이 말끝을 흐리며 쭈뼛거리면서 문 손잡이를 잡았다. 열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듯이, 이걸 보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것 같다는 듯이,...
찌든 때가 가득 앉은 양철 출입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습한 공기에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곰팡이 냄새와 함께 낡은 시멘트 블록 건물에서 스며 나오는 축축한 습기에 심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아...이거 너무 관리 안한 거 같은데요? 낡은건 이해하겠는데 환기 좀 시키고 그러시지..."
"여기 건물에 창문이 없습니다."
"에이...창문 없는 건물이 어딨어요?"
"여기가 봉안소 아닙니까? 영혼들이 빠져나간다고 창문 없이 출입문만 만들었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면서 휙 둘러보니 진짜로 창문이 없었다.
"그럼 문이라도 좀 열어놓지...왜 잠궈두고 있어요?"
"여기는 좀... 평소에 열어두기는 .. 그냥 뭔가 좀 찝찝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유골이 들어올때만 문을 엽니다."
"저기 저 철창은 뭐예요?"
"아. 저기에 원래 적군 유골이 있었는데 예전에 모두 적군묘지로 옮기고 그냥 철창만 남아 있는 겁니다. 적군 유골이라고 한국군이랑 같이 두면 안된다고 철창을 만들어서 그 보관했다고.... 저도 듣기만 했습니다."
죽어서 가루가 된 사람도 적군이니 철창속에 가두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 참 이해가 될 듯 안될 듯 했다.
보니 그냥 봐도 허술하기 그지 없는 베니아 합판 선반위에 옥빛 항아리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저 항아리들은 뭐예요?"
"유골함입니다."
그제야 그 항아리의 형체가 정확히 눈에 들어왔다. 죽은 사람의 유골을 곱게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서 담아둔 항아리, 그것이다.
"여기 원래 임시 봉안소잖아요? 최근에 사망사고도 없었던 걸로 아는데 왜 유골함이 여기 있는 거예요?
"장기보관 유골입니다. 가장 오래 보관 중인 유골은 20년 이상 된 것도 있습니다."
"20년 이라고요?왜 그렇게 오래 부대에 있는거죠?"
"뭐, 유가족 입장이 다양하겠지만, 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집은 찾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깥에 납골당에 모시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군에 있으면 시설이 좀 낙후되긴 했지만 관리는 해 주니까 그냥 찾아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연락처도 바뀐 부모님들도 있고..."
박 00 이병, 20년 동안 우리 봉안소에 머물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골. 20년 전에 강원도 모 부대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손으로 써 내려간 아주 낡은 기록이 남아있다방문자 기록은 없다. 처음 인수할 때부터 가족들이 동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유골이 인수될 때 가족의 서명이 있어야 하는데 박이병은 가족 란에 부대장의 이름과 서명이 들어가 있다. 가족 란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름이 있었지만 부대장이 대신 서명을 했다. 가족이 인수를 원하지 않았다.라고 적혀 있었다. 박 이병이 봉안소 식구가 된 그 후로도 수 많은 군인들이 여러 이유로 사망을 하고 봉안소에 잠시 머물렀다가 현충원으로 가거나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박 이병은 이제 부대가 집이다. 돌아갈 곳은 없지만 머무를 곳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것인가 싶었다.
군에서 사망하는 경우 전공상 심의를 거쳐서 현충원 또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훈련, 전투, 임무 수행 중 사망 등으로 직무상 사망이 확실한 경우는 바로 현충원으로 모셔지지만 사인이 불분명한 경우는 정확한 조사와 전공상 심의가 진행되는 동안 유골은 우리 부대에 임시로 보관된다. 가족들이 원하는 경우 가족묘지나 납골당으로 바로 옮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전공상 심의 결과를 수용하지 않거나 가족이 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경우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유골로 남아서 봉안소에 머무르게 된다.
글씨로만 보았지 처음 대면하는 봉안소였다. 군에 단 하나밖에 없는 봉안소는 그렇게 남루한 모습으로 많은 숙제를 던져주며 내 앞에 나타났다. 솔직히 부대의 업무, 교육, 훈련을 하고 부대원들을 아무 일 없이 전역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 아마도 살아있는 사람 챙기기도 힘들어서 봉안소를 돌보는 일은 우선순위가 뒤로 밀렸을 것이다. 나 역시 봉안소 관리를 우선 순위 앞으로 가져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