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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봄 Apr 23. 2023

내가 쉴 우리 집은 부대였습니다

#1. 서늘한 만남, 뜨거운 안녕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오직 내 집 뿐이리


군 복무를 하는 동안 병사들의 집은 부대이다. 먹고 자고 쉬고 동료들이 있는 곳, 우리 부대에는 130명의 병사들과 죽어서도 부대에 머물고 있는 제 2의 부대원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과 같이 나도 우리 중대가 있는 그 부대가 집 이었다......

 



숨 쉬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덫에 걸린 들짐승처럼 거친 숨을 내쉬며 차라리 올무에 스스로 조여 죽어버리고 싶은 때가 있었다.  서른 세 살 내 가슴들어찬 돌덩이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돌아갈 곳도 없고 되돌아 나올 수도 없는 미로 속을 돌고 돌고 또 돌고 있는 기분이었다.


딸아이를 친정어머니 손에 키우면서 친정아버지와 남동생을 아내 없고 엄마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한 죄의식은 감정의 밑바닥을 받치고 있었고, 주말부부 월말부부로 살다가 해외 파병을 가서 연락도 잘 닿지 않던 남편은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원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군으로 살아오면서 감수해야 했던 차별과 정서적 학대는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미친 듯이 부대와 일에 몰입하는 것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출근하는 것이 두려울 만큼 매일 발생하는 새로운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고  '중대장이 여군이라서... 여자가....'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던 상급자가 있었다, 행여 나로 인해 부대원들이  피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하며 상급자의 비위를 맞추려는 감정 노동은 또 다른 고통이 되었다.


어두운 감정들에 나는 침식되고 있었다.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발바닥에 땀 나고 머리에 쥐나게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늘 부족한 사람이었고 늘 죄송하고 늘 미안한 사람이었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준 사람은 가족도 친구아닌 부대원이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점점 말라가는 나를 위해 자판기 커피를 건네주고 눈물로 호소하는 나를 이해해 주고 끝까지 나의 편에 서 간부들과 130명의 병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죽어서도 부대에 머물고 있는 제 2의 부대원 박 이병을 포함한 혼령들이 있었다.




'너희는 살아있잖아.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놔도 앞으로 잘 돌아간다며!! 스무 살 넘었잖아. 어린애처럼 굴지 말고 상황 피악 좀 하고 부대에 집중 좀 하고 말 좀 잘 들어라. 내가 너희 때문에 살이 쫙쫙 빠진다고!!'

'중대장님! 원래 살 안 찌시는 체질 아닙니까? 저희가 잘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말로만 잘하지 말고 진짜 잘하면 안 될까?'

'썰!수고하십시요'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로 우리의 경제를 이끌어가는 직장인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그들, 영혼이 되어서 부대를 지켜주던 박 이병과 그의 동료들, 들과 함께 했던 많은 시간들 중 봉안소의 추억을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그들과 함께라서 모든 것이 가능했고 모든 날들을 견딜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중대장님! 저 000인데요. 지금 000랑 같이 있어요. 기억하시나요?'

'야!! 어떻게 전화를 했어? 와... 신기하네... 당연하지. 다 기억나지!'

'기억 못 하실 줄 알았어요. 하하하 그때, 우리가 중대장님 속을 참 많이 썩였는데...래도 그 때가 좋았어요'

'힘들었지 뭐가 좋냐? 나 속썩인거 아니까 다행이다.'

'하하하하, 이제 우리도 진짜 어른이예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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