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삶이 과연 편한 삶일까?
편리한 삶이 정말 편한 삶일까?
한국 사회는 굉장히 편리하게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전 9시 - 오후 6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회의 전반의 다양한 서비스는 굉장히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과 시간적 여유다.
사실 어느 나라든 돈이 많으면 살기 편리하다(그렇다고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라 생각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돈은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가치교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금을 내던 시대를 지나 요즘은 휴대폰을 한 번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손쉽게 호화스럽거나 유익한 서비스와 물품을 획득한다. 이런 편리함은 생각보다 빨리 단순한 우리의 일상 속에 곳곳에 침투하여 소비를 하는 줄도 모르게 소비를 이끈다.
대부분 지구에 사는 경제 활동 인구의 삶은 닮아있다. 노마드라이프가 대세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전 9시 - 오후 6시 일을 하고, 회사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주말엔 여가 활동을 하며 보낸다. 한 개인의 진정한 자유 시간은 퇴근 후와 주말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으로 늘 제한적이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는 굉장히 달콤하다.
때문에 맛있는 음식은 지천에 깔려있고, 좁은 집을 벗어나 안락한 여가 시간을 보낼 카페가 즐비하고, 곳곳에 쇼핑할 거리와 유흥 거리가 가득한 우리나라의 환경은 바쁜 현대인에게 천국일지도 모른다. 회사 일에 지친 내 에너지와 부족한 시간을 아껴주는 서비스들을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국에 온 많은 외국인들도 이런 편한 서비스에 감탄을 하고 간다.
이렇게 편리한 한국의 환경은 스웨덴에서 돌아오고 나서 더욱 부각되었다. 그렇다면 스웨덴은 어떨까?
서비스도, 행정처리도 느리고, 맛있는 음식도 많지 않고, 외식은 비싸고, 직접 해야 할 일이 많은, 불편함이 많은 나라다. 거의 매일 도시락을 싸서 직장이나 학교에 가고, 장보고 요리하는 일이 일상이며, 무언가 고장이 나면 직접 해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 않으면 주머니가 금세 털리기 때문에. 그런데 이 삶이 정말 불편한 삶일까? 한국에 살아본 스웨덴 친구는 이 삶은 스웨덴 사람에게는 불편하지 않은 삶이라고 했다. 다만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불편함을 많이 느낄 뿐. 모든 건 상대적이다. 내가 살면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한국인으로 내가 느낀 불편함.
자극의 상대성과 변하지 않는 것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욕구 불충족의 존재다. 흥미롭게도 스웨덴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대한 동경이 크다. 오늘날 스웨덴 대학에서 교환학생 유학지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미국이다. 넓은 대륙, 다양한 인종과 문화, 거기서 발생하는 역동성, 다른 기후 등 미국은 스웨덴과 너무나도 다르다. 아메리칸드림. 기회의 땅 자본주의 사회 미국으로 향하던 타이타닉호에 사고로 3등 칸에서 가장 많이 죽은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접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스웨덴이 찢어지게 가난하던 1900년대 초,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당시 1백만 명의 스웨덴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미국 사회에 대한 환상이 큰 젊은 스웨덴 친구들도 있다. 스웨덴이 가지지 못한 다양한 경험과 자극을 제공하는 사회. 어릴 적부터 디즈니 영화와 다양한 미국의 방송을 보고 자란 영향일까? 많은 스웨덴 친구들은 우울하고 조용한 스웨덴을 떠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떠난 사람들 중 대부분 아이를 낳을 시기에 돌아온다고 한다. 평등하고, 자연을 더 가까이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받으며 키울 수 있는 교육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한 수업 시간에 스웨덴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더군다나 이 모든 교육이 무료니 돌아오질 않을 이유가 없다.
이를 보면 자극의 강도는 우리가 어떤 인생의 시기에 있느냐에 따라, 어떤 환경에서 살아봤느냐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환경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본질은 결국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고, 미시적인 개개인의 행복이 존중받는 사회를 많은 사람들이 원한다는 것이다. 구조와 집단의 가치로 개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우주를 존중해주는 것. 순간적 욕망은 충족되면 쉽게 휘발하지만, 변치 않는 것은 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스웨덴은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도록 기본권을 보장하고, 평등을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지원하고자 노력해왔다.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불편함이 많은 스웨덴에서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욱 편안하게 느꼈던 이유다. 내가 누리는 서비스는 느리고 비싸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것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또한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내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 이 점에서 내게 스웨덴 생활은 조금 덜 재밌고,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심리적으로 자유롭고 만족스러웠다.
오늘날 스웨덴 복지 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스웨덴 전 총리 올로프 팔메의 말이 오늘따라 더 가슴을 울린다. 모든 사람이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하는 것을 돕기 위해 국가는 국민의 집이 되어야 한다. 그가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자본에 자유가 억압당하는 것을 목격한 후 국가의 존재에 대해 느낀 바다. 스웨덴이 개인의 개성과 자유, 선택, 취향이 존중받는 사회라는 것은 생활 곳곳에서 2년 동안 피부로 느껴졌다. 이방인인 내가 가장 부러워하던 것 중 하나다.
내 소비 자극 발화점은 변했을까?
사실 스웨덴에 살 때는 너무 조용하고 정적인 사회여서 우울해지거나 외부의 끊임없는 자극이 그리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소비생활에서는 무분별한 소비를 하지 않았고, 할 필요가 없었다. 집-학교 반복되는 일상은 같았지만 좀 더 단순하게 살았고, 스스로 대부분 나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켰다. 집에서 먹고, 파티하고, 여가 생활을 보내고, 강가나 호수에 가거나 도서관을 갔다. 개인적 공간과 공공자원을 많이 활용했다. 다만 외부의 자극이 그리울 땐 외식하고, 문화생활을 누렸다. 스웨덴에도 블랙프라이데이면 쇼핑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가끔의 큰 지출은 부담스럽지 않았고, 한국 물가가 많이 올라 그렇게 비싸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 자극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에 휩쓸려 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생활은 편리했지만 편안함은 적었다. 현실적으로 지출에 대한 걱정, 늘 소음과 군중 속에 둘러싸여 있는 환경, 수많은 자극에 휘둘려 에너지가 소진되고 집중이 깨졌다. 버는 만큼 써야 하지만, 쓰는 만큼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어느새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손쉽게 소비할 수 있는 음식, 물건, 서비스가 나의 소비 뽐뿌를 자극했다.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인간의 욕망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을까? 삶의 욕망이 커지는 것과 소비를 통제하는 것은 정말 어려움을 느낀다. 소비를 장려하는 환경과 수많은 자극에 노출된 나는 이를 통제하는 데 너무나 취약했다.
내가 내는 만큼의 화폐가치와 등가 교환되는 소비는 손쉽고 빠르게 많은 편익을 제공했다. 그래서 자잘한 소비가 진정 필요한 소비이며, 내게 어떤 편익을 주는지, 대체제는 없는지 고민하는 것은 간과했다. 더욱 이 소비가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과 같은 선상에 있는지도.
진정한 YOLO(You Live Only Once)의 정신은 지금 내키는 대로 소비를 하는 것도 아닌, 미래를 담보로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는 것도 아니며, 현재만 생각하며 미래를 내팽개치는 것도 아니다. 아슬아슬한 자기만의 인생이라는 줄타기 위에서 균형을 찾고 지속 가능한 삶을 계획하는 것이 중요함을 많이 느낀다. 우리의 소비가 편리하지만 진정 내게 편안함을 주는지와 소비의 목적을 생각해보는 건, 소비를 조장하는 수많은 자극에 휩싸인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편리한 삶을 살고 있지만, 과연 편안한 삶을 살고 있나? 편리함의 홍수에 휩쓸려 소비의 기쁨을 누렸지만 그 감정들은 휘발성이 강해 이미 날아가고 없었다. 궁극적인 삶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소비에 저항하는 연습이 필요함을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