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Sep 13. 2020

눈치없는 사람이 될래요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왜 많은 한국 사람들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거라 생각해?'

지난주 영국인 남자 친구가 던진 질문은 내 머리를 한대 친 것도 모자라, 여전히 가슴 한편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다.

Fleeing South Korea 다큐  캡처

저녁을  준비하던 중 남자 친구는 자신이 한국에 오기 전 가장 충격적으로 봤던 한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이하 다큐) 소개하며 질문했다. 알 자지라 방송이 3년 전에 방영한 'Fleeing South Korea'라는 다큐로,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꼭 4년 전 '헬조선 탈출과 북유럽 정착'을 목표로 유학을 비하던 내 이야기 같았다.  


다큐는 주로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난 어린 학생부터 안정적인 직장이나 사업 또는 축적한 부를 포기하고 미국 이민을 준비하는 중산층 가족과 한의사까지, 다양한 나이, 성별, 경제적 능력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 다큐 속의 미국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취업 비자를 받기 위해 프로그래머, 간호사, 한의사 등 안정적인 직장을 다 포기하고 미국의 한 농장에서 단순 노동직으로 일할 절차를 밟고 있었다.


남자 친구는 높은 교육 수준과 특출난 기술이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를 다 버리고, 그저 이민을 떠나기 위해 농장에서 일할 결심을 했다는 것이 꽤나 충격적이라고 했다. 물론, 6개월만 농장에서 일하면 합법적으로 미국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긴 하지만, 어렵사리 성취한 것을 다 포기하고 단순 노동직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 평범한 결정은 아니다. 그럼에도 해외 이민 박람회에는 농장 취업 비자를 받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댔다.  다큐에서 나는 북유럽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엿볼 수 있었는데, 이 사람들 역시 우리나라에서 성실하고 평범하게 삶을 꾸려내는 사람들이었다. 문득 4년 전 이민을 진심으로 고려하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바뀐 게 있을까?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떠나고 싶게 만드는 걸까?

20대 중반 졸업을 앞둔 시점 나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살기로 결심했다. 사회는 나를 N포 세대라고 불렀다. 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로 태어나 90년 대를 활짝 열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왔다. 하지만,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하고 취업, 연애, 내 집 마련, 결혼, 꿈 등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한 N포 세대 중 하나가 되었다. 한창 꿈 많은 나이 20대에 커리어 개발, 연애, 결혼, 자아실현 등 인생의 중요한 '셀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돈 또는 시간의 부족과 사회적 압력을 이유로 포기한다고 우리는 N포 세대가 되었다.


'탈출하고 싶어'. 무기력한 현실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 사회에서 살다 보면 내 삶은 포기와 불행으로만 가득 찰까 봐 두려워 20대의 나는 자꾸 다른 나라로 나갔다. 더 나은 사회에서 살면 더 이상 포기하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 무렵 유시민 작가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접했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마음에 드는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들 각자는 이 나라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자유가 있다. 내가 이 나라를 싫어한다고 해서 누가 나를 해치지는 않는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둘 있다. 하나는 다른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강제로 다른 나라에 가서 살아야 했던 한국인도 많았지만, 스스로 이민을 선택한 사람도 많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자발적 이민은 존중해야 마땅한 삶의 설계이며,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실존적 선택이다. 모든 지구인에게 그렇게 할 자유와 권리를 무제한 부여한다면, 지금 당장 수십억 명이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 마음에 들도록 국가를 바꾸는 길이다. 이것 역시 존중해야 마땅한 실존적 선택이다. 다른 국적을 취득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한국인이 이 길을 걸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나라 밖으로 간 분들도 적지 않았다. (이하 하략)

 - '국가란 무엇인가' 서문 中/ 유시민


작가는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두 가지 대안으로 자발적 이민을 선택하거나 국가를 바꾸는 길을 제시하는데, 나는 떠나는 것을 목표로 했다. 2011년 해외여행을 시작으로 36개국을 여행하고 4개국에서 살며 내가 살고 싶는 나라를 탐색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또 다른 화성을 찾는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긴 여행의 끝에 북유럽 스웨덴에 2년간 자리를 잡았다. 평등, 탄탄한 복지, 뛰어난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국가 중 하나인 곳. 스웨덴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 커리어 등 인생에서 중요한 이 다양한 형식으로 존중받고, 제도적으로 지원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는 곳에 따라 다른 생각과 형태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구나. 


일부러 국내외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려 시간을 쏟았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한 시간들. 평생을 살아온 한국 사회로부터 거리를 두자 나는 한국인으로서가 아닌 나로서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시선을 조금씩 기를 수 있었다. 사회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내 경험과 신념에 근거한 삶의 주춧돌을 쌓는 기초공사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왜'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됐다.


'우리는 왜 불행할까?' '나와 내 친구들은 왜 포기해야 할까' '왜 여기선 당연한 것이 한국에선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의 바다를 떠다니다 문득 '우리는 인생의 많은 선택들을 암묵적으로 강요받은 게 아닐까'하는 결론에 닿았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기엔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란 우리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크다.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해 신경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그래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고, 대부분 남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다 보니 불행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 삶의 의미와 나다움에 관한 책들이 특히 한국에서 인기 많은 이유가 아닐까.'


6년 간 한국에서 산 영국인 남자 친구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눈치 사회에서 찾았다.


눈치 사회에서 눈치 없는 사람이 되자

스웨덴 사람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휴일을 즐기는 모습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스웨덴에 살면서 스웨덴 사람들이 스웨덴에서 살기 때문에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각자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개인의 다양성을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인정해 주며 공동체 문화가 잘 자리 잡은 사회. 행복에 관한 저명한 연구자 서은국 교수는 그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의 핵심은 나다운 삶과 내 사람들과 양질의 시간을 보내는 데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개인주의는 행복을 증대시키는 문화적 특성이며, 행복의 결정적 열쇠는 일상에서 맺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달려있다. 제도는 당장 바꾸지 못해도 내가 어떻게 매 순간을 살아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저자는 특히 한국인이 물질적 풍요 속에서 행복감의 빈곤을 느끼는 이유를 건강한 사회적 관계의 결핍에서 찾는다. 집단주의 문화 안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신경 쓰며, 공동체 생활이라는 명목 하에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해왔다. 물질주의 사회에서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는 행복의 기준이 되었고, 가족과의 저녁 식사 대신 야근이나 회식은 당연하게 여겨질 때도 흔하다. 내 삶에 대한 평가를 타인에게 던져버린 것뿐만 아니라, 행복감을 분출하는 건강한 사회적 관계도 없으니, 삶이 메마를 수밖에.


긴 여행과 이주의 끝에 나는 행복이란 눈치 없는 삶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 삶에서 내가 배우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내 욕구를 채워 가다 보면 결국 죽음의 끝에 나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 하고 눈을 감지 않을까.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 충족 되지 않은 욕구를 파악하고, 그 충족 되지 않은 욕구가 외부적 요인 때문인지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인지 분명하게 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나를 둘러싼 모든 외부적 환경; 가족, 주변 사람, 회사, 사회 등으로부터 거리를 두는데서 시작한다. 나에겐 다양한 문화적 관점에서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매일 나다운 삶을 위해 노력할 것. 용기 있는 개인들의 개인주의자 선언이 조금씩 퍼지면, 우리 사회도 합리적인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조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 무엇보다 너를 먼저 생각해. 너의 삶이잖아'. 가끔 인간관계, 가족, 사회 등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내 중심을 잃을 때면, 늘 남자 친구는 내 마음을 먼저 챙기라고 힘주어 말한다.


한국에 온 지 3년이 지났다. 헬조선 탈출을 꿈꾸던 나는 한국에 살고 있는 지금 더 이상 불행하지 않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타인의 시선이나 말로부터 상처 받지 않고, 상처 받더라도 훌훌 털어내 버리며, 내 삶과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되 그들을 존중하려고 노력한 점, 그게 바로 행복의 기원이었다. 나이, 성별, 전통적 가치관 등 나를 짓누르는 사회적 압력 속에서 오늘도 나는 각개 전투를 벌인다. 내가 가진 무기는 내가 살고 싶은 삶과 삶에서 지켜내고 싶은 가치, 그리고 솔직함뿐이지만 자유로운 삶을 위해 승전보를 울리기 위한 유일한 무기라 믿는다. 

요즘의 낙, 등산

우리 다같이 나로서 살아갈 용기를 매일매일 조금씩 키워나가자.내 삶이 변하고, 내가 사는 사회가 변하는 첫걸음이니까. 내 삶을 타인에게 뺏기지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도 말고 그저 각자 눈치 없는 사람으로, 각자의 행복을 함께 찾아가자. 

이전 14화 나는 불편한 삶을 살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