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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31. 2020

맛집 대신 우리 집에서 만나자

집에 대한 생각의 변화

대학교 입학을 위해 서울로 이사를 온 지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 값에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도, 꿈도 꿔본 적도 없다.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만치 집 값이 비싼 서울에서, 월세든 전세든 내 한 몸 누울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이제는 월세 방 한 칸도 얻기가 하늘에 별따기지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발품을 팔아 내 몸 하나 누일 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6개월에서 길면 2년,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나는 집을 옮겨야 했다. 첫 서울 생활은 30여 년이 된 주택 집 반지하를 개조해 만든 반지하 원룸이었다. 마당으로 난 큰 창문이 있어서 반지하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마철이면 옆의 하수구가 역류해 복도에 물이 차거나 방에 곰팡이가 금세 끼곤 했다. 지긋지긋한 반지하 생활은 1년이면 충분했다.


두 번째 이사 간 자취방은 학교 정문 술집 골목 주변의 곱창집 2층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 때문에 볕은 잘 들지 않았고, 책상, 침대, 행거만으로도 꽉 차던 5평 남짓의 원룸이었지만 2층이라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밤 12시가 넘도록 집 주변은 늘 시끌벅적했고, 집 주변은 만취한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잠들어버리거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 그만이니까. 이 곳에서 2년을 살았다.


졸업할 때까지 살던 마지막 자취 방은 입학 후 처음으로 얻은 전세 원룸인데, 주택가 깊숙이 위치한 다세대 주택의 원룸이었다. 시끄러움에 질려 주택가로 이사했다. 너무 좁아 일부로 침대도 들여놓지 않았지만, 전세를 구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책상, 냉장고가 차지하는 공간 외에 이불을 깔고 누우면, 냉장고에 내 발바닥이 닿았다. 졸업식을 위해 엄마와 동생이 올라왔는데, 세 명이 누울 수 없어 동생은 외박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 혼자 지냈기 때문에 좁은 건 상관없었다.


세 곳 모두 딱히 이웃과의 교류는 없었고, 방에는 한낮에도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오늘의 날씨는 늘 흐림이었다. 반지하거나 여러 건물에 둘러싸여 조망권을 침해받았으니. 평균 4~5평에 이르던 자취방은 혼자 살기에 '나쁘지는' 않은 공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좋은 공간도 아니었다. 때문에 평일 주말 상관없이 눈만 뜨면 재빨리 씻고 학교나 카페로 나갔다. 10년 전부터 카공족(카페 공부족) 생활을 시작했다. 내 집이었지만, 편히 쉴 수는 없었던 평균 5평의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본능에 충실해 나는 집을 탈출했다


"대도시에 살고 소득이 낮을수록, 집에서 한 개인이 머무는 정주공간이 좁아진다. 이 좁아진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도시 곳곳의 카페가 커피값을 받고 공간을 제공한다". 유현준 건축가가 쓴 <어디서 살 것인가>를 읽는데 딱 내 이야기인 것 같았다. 심지어 요즘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카공족을 모시기 위해 카페를 독서실 형태로 꾸미거나, 공유 공간으로 꾸며 좌석을 대여하기도 한다. 카페에 오래 머무르는 시간이 긴 카공족의 객단가가 더 높기 때문이란다. 오래 머물러 미안한 마음에 하나라도 더 시키는 그 모습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스웨덴에서의 지내는 2년 동안 나는 카페 유랑자 생활을 접고 집순이가 되었다. 그곳에서 집은 탈출하고 싶은 곳이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곳이며,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애정을 갖고 꾸민 곳이다.



2016년 스웨덴에 도착하자마자 집 계약을 위해 학교 하우징 오피스에 들린 날이 아직 생생하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들뜬 채 관계자에게 재잘재잘 댔다. '방이 너무 크고 깨끗해! 창도 정말 크고, 햇빛도 잘 들어와. 안에 화장실과 샤워 공간도 따로 있어. 공용 주방도 꽤나 깨끗하고 정말 넓어'. 방정맞게 떠드는 나를 본 관계자는 엄마 미소를 지으며 '많은 아시안 학생들이 처음 방을 보고 놀라곤 해. 너랑 비슷한 반응이야'라고 말했다. 우리 학교에는 아시아 학생 중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 인구 과밀화된 곳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평균 4~5평의 공간에서 살다가 주방을 제외하고도 평균 7평의 나만의 공간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기뻤던 우리들. 기쁨과 동시에 마음 한편이 쓸쓸해졌다.


스웨덴에서의 생활도 월세 생활이었지만 집은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이었고, 월셋값을 하는 곳이었다. 한 개인의 온전한 생활을 위해 확보된 공간 덕분에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었다. 관계자는 스웨덴에서는 법적으로 한 개인이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방 사이즈와 창의 크기 등이 정해져 있어 무작정 개미 소굴처럼 작게 지을 수 없다고 귀띔했다. 간이 벽으로 나눠져 있는, 창문도 들어오지 않던 고시원 생활을 하다 공황장애에 걸린 덴마크 친구가 떠올랐다. 당시 7년 차 프로 자취러인 내게 침대, 책상, 책꽂이, 옷장, 신발장, 행거, 암체어, 스탠드 등 필요한 가구를 놓고도 여유 있는 공간이 생기는 자취방은 처음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집에서 나오기 바빴는데, 처음으로 내 방을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집은 잠만 자는 공간에서 비로소 생활공간이 되었다.


스웨덴  친구네 집에 초대받은 저녁, 홈파티가 일상인 스웨덴


스웨덴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은 집이 중심이었다. 학교-집-체육관 이 단순한 루틴의 반복은 굉장히 지루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삶의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코리도(Koridoor)라 부르는 아파트에 살았다. 학생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적게는 6명, 많게는 12명의 학생들이 주방, 다이닝룸, 세탁실을 공유하는 곳인데 우리나라에도 많이 생긴 셰어하우스랑 비슷하다. 계속 자취만 하다가 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공유하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히려 공유하는 공간은 타인과 자연스레 연결될 기회를 주었다. 계획하지 않아도 주방에서 우연히 만난 코리도 친구와 저녁을 먹거나, 오랫동안 못 본 친구를 세탁실에서 우연히 만나는 등의 작은 연결이 일상을 더 풍요롭게 해 주었다. 공부할 곳을 찾기 위해, 친구를 만나기 위해, 파티를 하기 위해 새로운 곳을 늘 찾을 필요가 없었다. 길 한 복판에서 휴대폰을 한 손에 들고 '조용한 카페, 맛집, 파티룸 '를 녹색창에 입력해 찾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고, 공간을 사기 위해 굳이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었다.


스웨덴에서의 집은 끼니를 해결하고, 잠을 자고, 공부를 하는 생활공간일 뿐만 아니라 생일 파티, 송년회, 신년회 등 많은 사회적 교류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집은 외부인을 품으면서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관계를 맺는 작은 사회로 변신했다.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행복을 느끼는 이 모든 것이 집에서 가능했다. 행복을 느끼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구나.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는 시간은 스웨덴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 스웨덴식으로 말하면 라곰이고, 덴마크 식으로 말하면 휘게고,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소확행인 균형 잡힌 삶과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자취 생활 8년 동안 요리도 친구를 집으로 초대한 적도 거의 없는 내겐 큰 변화였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을 타인에게 내주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공간을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일은 생각보다 매력적일이었다. 책장에 꽂힌 책, 냉장고에 붙여진 자석, 곳곳에 걸린 액자, 화장실에 놓인 샤워 제품과 디퓨저, 바닥에 놓인 카펫 등 개인의 취향이 녹아있는 물건을 통해 나는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취향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더욱이, 집안 곳곳에 놓인 사진이나 엽서는 상대와 더 길고 깊은 관계를 만드는 매개체였다. 오래전 사진과 엽서를 통해 상대의 과거로 여행을 하고, 현재의 모습에 닿는 행위는 과거로부터 현재라는 물리적인 시간을 연장해주기도 하지만, 서로를 한 층 더 깊게 이해하면서 미래로 우리의 만남을 이어 주기도 했다. 집이 크든 작든, 화려하든 소박하든 간에 집은 그 자체로 한 사람을 들여다보는 가장 개인적이고 소중한 공간인 동시에, 개인과 개인을 잇는 사회적 교류의 공간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여전히 나는 남의 집에 살고 있지만, 사는 동안 그 공간을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커피를 사고, 냉장고에 과일과 채소를 채웠고, 아늑한 조명을 들여다 놓았다. 스웨덴에서처럼 외식을 줄이고,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다. 집에 친구를 초대하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나만의 시간을 갖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요리를 해 먹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혼자 또는 함께하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집만큼 편안하고 조용한 곳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공간의 크기와 상관없이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차분함만으로 마음이 편해진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나의 하루가 안정된 느낌이다. 집을 잠만 자는 공간으로 인식해온 내게,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낸 스웨덴 생활은 집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앞으로 내가 어디에 살든 집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가끔은 소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편의시설이나 교통을 조금은 양보하더라도 인간답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이제는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었다. 스웨덴에서 돌아온 후 나는 집에서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서구 덴마크 친구네에서 함께 보낸 하루의 끝 버섯 로제 파스타를 요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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