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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ul 20. 2024

이민의 성패를 가르는 이것

언어 장벽, 문화 차이, 외로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으로 절대 돌아오지 마라!", "매국노다". 일면식도 없는 익명의 누리꾼들이 <호주 청년들이 한국에 돌아오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의 내 기사와, 국내 부자들이 세금 및 자녀 교육 환경을 이유로 이민을 선택한다는 관련된 기사에 남긴 댓글이다. 지지를 하든 비판을 하든 모두 개인의 자유지만, 개인적으로는 근거 없는 감정적인 비난의 댓글을 보면 조금은 안타깝고 그분들을 보듬어 주고 싶다. 결국 삶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세계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전 세계인의 성장 소설 데미안에 내가 가장 아끼는 구절이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올해 7월 4일 뉴욕포스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이삿짐 업체인 퍼스트 무브 인터내셔널이 구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민하고 싶은 나라는 캐나다고, 그 뒤를 이어 호주가 2위를 차지했다. 따뜻한 날씨와 세계적인 교육 및 공공의료 시스템이 호주 이민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한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코로나 이후 급증한 이민자 때문에 시드니, 멜번 등 호주 여러 도시에서도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 사람들이 호주 이민 문을 두드리고 있다. 워킹홀리데이, 결혼, 유학 이유로 이주하는 사람도 있고, 별생각 없이 여행을 왔다가 호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여유로움에 반해 이민 목표를 세우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누구는 호주 이민에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한다. 이민 성패는 어디달려 있는 걸까?


이민의 성패를 가르는 이것

지난 5월 2주간 떠난 호주 여행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45년째 호주에 살고 계신 여러 교민을 만났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 중 하나는 서호주 퍼스에서 만난 '피오렌' 님과의 만남이다. 환갑 넘어 퍼스로 이민을 오셔서 주도적인 삶을 살고 계시는 멋진 어른. 여행 전 한 온라인 교민 커뮤니티에 교민 분들을 만나고 싶다고 올린 내 글에, 흔쾌히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며 연락하라는 댓글을 남겨주신 덕분이다. 지난 5월 말, 서호주 퍼스의 한 근사한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피오렌님을 만났다.


퍼스에서 피오렌님이 사주신 근사한 저녁

피오렌님은 아들과 딸을 20대 때 호주로 유학 보낸 후 20여 년을 떨어져 살다, 자녀분들의 초청으로 11년 전 호주로 오셨다고 했다. 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 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인생의 후반부에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와서 새 삶을 꾸려 나가실 용기를 낸 것 자체가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정말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본인만의 삶을 꾸려나가고 계시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60년 간 평생을 치열하게 가족들을 위해 살다가, 호주에 와서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노후를 즐기니 너무 좋아요. 운전면허도 땄고, 영어도 배우고 있고, 태권도, 승마, 낚시, 여행 등 살기 바빠 못한 운동과 여가 활동도 호주 와서 원 없이 다하고 있어요. 저는 호주가 정말 좋아요.


누군가에겐 딱히 밤문화 없고 심심한 천국일 수 있지만, 깨끗한 공기와 청정 자연환경도 가까이서 누릴 수 있고, 전 세계 음식도 곳곳에서 맛볼 수 있어요. 퍼스로 이주하는 한국 교민이 생기면, 제가 직접 모시고 1주일에 한 번은 꼭 같이 영어 공부하러 나가고, 제 친구들도 소개해줘요."


희생과 도전, 좌절과 인내 다시 도전으로 점철된 인생 선배70여 년의 삶을 들으며, 마음이 벅차올라 정말 눈물이 났다. 한국이든 호주든 상관없이 주어진 환경에 불평불만하기보다, 내 삶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당신이 다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해 오신 이야기. 물론 이민하는 나라에 가족이 있다는 것은 심리적 안정을 주지만, 우리는 모두 가족 밖 독립적인 생활을 꿈꾸는 개별적 존재이기도 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계속 도전하며 나아간 한 어른의 역사는, 진정 인간이 자유와 책임을 다하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두 시간 반 동안 피오렌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언어 장벽, 문화 차이, 친구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 고립 등 이민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회복탄력성'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과 이주는 실패의 연속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감정적으로 의지하고 진심 어린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인연을 찾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고국에서 쌓아온 모든 사회 문화적, 사적인 자산을 버리고 감정, 에너지, 시간을 들여 0부터 다시 모든 걸 쌓아야 한다. 부딪히고 거절당하고, 또다시 도전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민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내가 평생 쌓아온 '회복탄력성'일지도.

 

멜번에서 만난 한 친구는 호주에 여행 왔다 이민을 다짐하며 돌아가는 한국 친구들이 많다고 했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적다고 했다. 언어 장벽, 사회적 관계의 부재가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물론, 언어 장벽, 문화 차이, 외로움으로 인한 힘듦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기댈 수 있는 곳이 없더라도, 매일 일상에서 '회복탄력성'을 쌓아 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것이 내겐 간절한만큼 누구나 이민의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으로 보였다.


우리 DNA 새겨진 이주의 역사

호주 멜번의 빅토리아 마켓 - 전 세계 음식이 모여있다.

어디 살든 이민은 자발적으로 내 삶을 재설계하는 길이다. 100여 년 전부터 수많은 한국인이 한국 밖에서의 삶을 선택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옮겨갔다. 그 인류가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정착하고, 문명을 이루고, 현대 국가를 형성해 살고 있지만,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가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 DNA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아탈리는 저서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에서 21세기를 '유목민의 시대'로 규정한다. 더 나은 삶의 환경, 일자리, 정치적 망명 등 여러 이유로 인류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21세기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나고 자란 영토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문화나 이념, 종교 믿는 바에 따라 규정된다고 말한다.


타지 생활이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호주에서 한국인 포함 다양한 이민자를 만나며, 이민을 선택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본능적인 DNA에 충실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은 선택의 문제 도망자라거나, 매국노거나 비난받을 선택은 아니라 생각한다.


오히려 새로운 곳에서 겪을 수많은 좌절이 눈에 그려지더라도,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택해 떠난 전 세계 모든 유목민들에게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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